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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민주를 흔들 때

아무리 뜯어봐도 짭짤한 장사다. 3% 정도의 정당 지지율로 4·11 총선(총 300석)에서 15석쯤 건진다면 말이다. 이정희·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가 이끄는 통합진보당 얘기다. 정치 전문가들은 선거연대 효과까지 감안할 경우 민주통합당이 145석 안팎을 얻어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새누리당은 125석 안팎, 자유선진당은 8∼9석, 무소속 10석 안팎이 된다는 것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통합진보당이 19대 국회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구도다. 잘하면 원내 교섭단체(현재 20석 이상) 기준도 바꿀 수 있다. 물론 선거 판세는 조변석개(朝變夕改)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족집게 예측’을 한다는 건 신의 영역이다.

다소 성급한 예측 결과를 보면서 문득 2000년 총선이 생각난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발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정치 9단인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은 국회의원 숫자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권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은 돈과 사람과 조직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가 한나라당 133석(득표율 39%), 민주당 115석(35.9%), 자민련 17석(9.8%)이었다(외환위기 여파로 당시 국회 의석은 273석으로 줄었다). 당시 여성계 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에겐 생생한 기억일 것이다.

자민련은 DJ 정부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자 아킬레스건이었다. 1997년 대선 승리를 안겨준 원동력이었지만 내각제 개헌이 물 건너가고 JP와 자민련의 권력 파이가 작아지면서 파열음은 커져갔다. 자민련을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로 만들기 위해 의원 3명을 꿔주는가 하면, 각료 임면(任免)과 햇볕정책 등을 놓고 힘 겨루기가 팽팽했다.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은 DJP의 이별곡이었다. 이후 DJ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에 빠져 만신창이가 됐다. ‘노무현 돌풍’이 아니었다면 정권 재창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돌고 도는 게 정치일지 모르겠다. 새천년민주당의 맥을 이은 민주통합당이 다시 ‘선거연대’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한명숙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야 수도권 박빙 지역에서 승리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한 대표가 과반 의석은커녕 원내 제1당도 확보치 못한다면 ‘총선 책임론’에 시달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이겨야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결전을 펼칠 수 있다. ‘7석의 진보당에 89석의 제1야당이 휘둘린다’는 비판에 귀 막고 눈을 감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고용 없는 성장과 신(新)양극화 시대에 과연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의 급진노선을 따를 수 있을까. 향후 10년의 최대 화두가 세계화·복지·통일이라면 민주당은 그것을 뒷받침할 성장 엔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헨리 포드는 일찍이 “5%가 아닌 95%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샐러리맨들이 1년 수입으로 살 수 있는 보급형 차량을 대량 생산한 이유다. 영국 노동당의 11년 집권을 주도한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이라는 구호로 중도세력을 공략했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좌(左)로의 행진이 아니라 20∼30%에 이르는 부동층을 어떻게 포용하느냐다. 더 걱정되는 건 통합진보당이 받고 있는 ‘반미·종북’ 의혹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재협상과 폐기(종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야권 통합의 명분으로 삼는 데 대해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던진다. 미국에 재재협상을 요구한 것처럼 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한 다른 나라가 재협상을 요구해 올 경우 거기에 응하겠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야권연대가 이뤄진 만큼 민주당의 정치적 책임은 훨씬 무거워졌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가 정체성을 뒤집는다면 총선 이후 후폭풍은 훨씬 거세질 것이다. 좋은 사례가 DJP연합의 붕괴다. 속사정이야 복잡했지만 겉 명분은 바로 DJ 정부의 햇볕정책이었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의 ‘대북 퍼주기’ 비난을 수용해 JP가 DJ 정부에 등을 돌린 모양새였다.

정치는 유권자뿐만 아니라 미래와의 약속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보여준 것은 구호가 아닌 실천이었다. 한명숙 대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최소한 반미·종북의 ‘위장 진보’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5%의 진보가 95%의 민주를 흔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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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