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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한인 징용해 판‘땅굴 박물관’일본에 뺏길라

이영근 평화박물관장이 일제가 판 벙커 통신실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나 일본인들 손에 넘기더라도 전시품의 유출은 막을 겁니다.”



제주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

 일제시대 일본군의 지하벙커를 복원해 만든 제주 평화박물관(제주시 한경면 창수리)의 이영근(59) 관장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일본군의 만행과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은행 빚을 포함해 75억원을 들여 만든 박물관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일본 국가기록원과 재력가들이 두 차례 박물관을 찾아와 값은 부르는대로 줄 테니 넘기라고 하길래 기분이 나빠 그들의 명함을 내던지며 거절했죠. 그런데 최근 경영난이 심각해져 매각해야 할 상황인데, 국내에선 나서는 사람이 없고 일본 기업과 재력가들이 매수 의사를 밝혀 왔어요. 컨설팅 회사를 통해 일본 서 너 곳과 현재 막바지 협상 중입니다. 소유권을 넘기더라도 제가 관장을 하며 관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게 변수입니다.”



 이 관장은 일본인이 박물관을 인수하면 소장 자료를 일본으로 가져가거나, 일제시대와 관련한 자신들의 입장을 보여줄 전시공간으로 꾸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어렵게 모아온 자료의 유출을 막고, 박물관의 틀을 바꾸지 못하도록 ‘월급쟁이’를 자처한 것이다.



 이 관장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박물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곳에 끌려와 2년6개월여 동안 지하벙커를 만드는 일에 동원됐습니다. 햇빛을 보면 시력을 잃을 지경이 돼 평생 집안에만 있어야 했어요. 그러다 ‘평화를 위한 일을 해야 하는데…’ 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평화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을 열었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할 물품을 모으기 위해 주변에 이사 가는 집이 있으면 빠짐없이 찾아가 일제시대와 관련한 자료라면 모조리 받아 왔다. 8년간 ‘저인망식’ 수집활동을 벌인 결과,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위안부 모집 방침을 담은 ‘통보’의 원본과 구 일본 공군 조종복 등 희귀자료를 다수 입수할 수 있었다.



 박물관이 소유한 일본군 땅굴의 길이는 2㎞가 넘는다. 국내에서 일제가 한국인을 징용해 건설한 땅굴이 보존된 곳은 이 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한때는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가 돼 해설사 등 직원 7명을 두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이라곤 이 관장 부부가 전부다. 2008년부터 내방객이 급격히 줄면서 수익구조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가, 안보, 평화와 같은 무거운 테마로는 관람객을 끌어오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 관장은 “국가가 없다면 또다시 굴 속에 들어가 땅을 파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물관 인근에선 해군기지 건설 반대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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