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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인들

지난 토요일 늦은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고 나는 길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여자 한 분이 내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다. “강남 교보문고에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 나는 열심히 길을 알려준다. “50m 앞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 100m쯤 가면 붉은 건물이 나오는데 그 빌딩 지하에 있습니다.” 여자는 내가 알려 주는 길 설명은 건성으로 들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이 여자도 『1Q84』의 아오마메처럼 중년의 남성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스타일일까? 아니면 달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까? 여자는 고개를 갸웃한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얼굴에 흐르는 기가 참 독특하세요. 혹시 예술 쪽으로 일하지 않으세요? 그림을 그린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여자의 질문도, 여자 옆으로 또 한 명의 여자가 와 서는 장면도 어쩐지 낯익다.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처럼. 그렇다. 그들은 도를 묻고 다니는 도인이다.
돌아보면 도인의 접근법도 진화해 왔다. 처음에 그들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들은 길 가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질문의 칼을 뽑아들었다. “도를 아십니까?”

당황한 사람들은 쩔쩔매며 그 칼을 피하기도 하고 막기도 했지만 더러는 단도에 찔리기도 했다. 경험은 바보의 가장 좋은 학교며 반복은 바보의 가장 좋은 선생이다. 10년쯤 지나자 사람들은 누가 다가와 도심공항터미널이나 도봉산 가는 길을 묻느라 “도”라는 말만 꺼내도 빠른 걸음으로 피해버렸다. 그렇게 도를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의 뒤통수를 보면서 도인은 반성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자신들의 접근법을.

도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도’를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질 만한 다른 보이스로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메이커 보이스가 아니라 컨슈머 보이스로 말이다. 도인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상이 참 좋습니다.” “훌륭한 기가 흐릅니다.” “조상 중에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 계시죠?” “금은보화를 품고 태어난 분이세요.”

이제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도인은 천천히 결정적인 순간에 품고 있던 도를 꺼내면 된다. 혁신이란 그런 것이다.
하루살이의 천적은 시간이다. 따지고 보면 시간은 세상 만물의 천적이다. 혁신도 시간 앞에서는 타성의 녹이 슨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길 가는 사람에게 다가와 기, 복, 관상, 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결국엔 도를 꺼내든다는 것을. 건네는 말의 종류가 아무리 다양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도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분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누가, 그것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다가와 말을 꺼내기만 하면 무조건 손사래를 치면서 조깅이라도 하는 것처럼 달아났다.

그렇게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도인은 반성했다. 도란 결국 길이 아닌가? 이제 그들은 길을 묻는다. “강남 교보문고에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떤 남자가 길을 가고 있었다. 도인들이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도를 아십니까?” 남자가 답했다. “압니다.” 도인들이 다시 물었다. “도가 무엇입니까?” 남자가 말했다. “제가 도입니다. 이미 도입니다.”
그랬다. 남자는 외화번역가 이미도 선생이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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