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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영부인들 환호하며 싸간 한국 음식은…"

새하얀 앞치마, 높은 조리모자. 한눈에 셰프(주방장)란 걸 알 수 있다.



[j Focus]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총괄 셰프 하영철
싱싱한 ‘한국의 봄’, 만찬 식탁에 올릴 겁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야 늘 신경이 쓰인다지만 요즘은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D-16일.



 하영철(48)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총주방장은 오는 26~27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정상 만찬 총괄 셰프다. 참석하는 각국 정상만 53명.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26일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다음날 아침·점심까지 차리는 게 그의 임무다. 어떤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는 다짐에 표정이 살짝 굳는다. “세끼 다 통역기 끼고 일하면서 드시는 식사예요. 회의 주제가 워낙 심각하잖아요. 그러니까 더더욱 소화 잘 되고 맛있는 그런 음식을 내드리고 싶어요.” 어떤 모습을 상상한 걸까. 순간, 그의 얼굴에 말간 웃음이 번져난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이제 준비는 다 됐겠네요.



 “99%는 됐죠. 메뉴도 거의 다 정해지고 1인분 음식량을 몇g 늘릴지 줄일지 등 아주 미세한 부분만 남았어요.”



●메뉴가 제일 궁금해요.



 “그렇죠.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은 완전히 공개할 수가 없어요. 대신 ‘애피타이저-수프-메인 요리-디저트’ 순서고 메인 요리는 한우 안심(최상급)이라는 건 말씀드릴게요.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갈비살도 있고요.”



●의외로 간단하네요.



 “대통령께서 직접 ‘검소하게 하라’고 지시를 주셨어요. 북한 문제도 있고, 국제정세도 그렇고 화려하게 할 때가 아니니 딱 3~4가지 코스 정도면 된다고요.”



●그래도 만찬의 컨셉트 정도는 공개해 주시죠.



 “(웃음) ‘한국의 봄’이에요. 메뉴는 양식이지만 그린 컬러와 봄철 팔도의 제철 먹거리를 이용할 계획이에요. 대부분 유기농으로 쓸 거고 친환경과 건강·웰빙에 중점을 둘 겁니다.”



●양식 메뉴로 우리 봄의 정취를 나타내기가 쉬울까요.



 “한국의 제철·지역별 특산물과 함께 모든 외국 분이 좋아하는 아보카도·아스파라거스·마스카포네 치즈 등을 사용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글로벌 식자재들도 치즈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한국에서 나오는 걸 사용해요. 아스파라거스도 양평에서 유기농으로 나오거든요.”



 이번 ‘수라상’에서 선보일 특별한 요리법 중 하나는 한우 ‘드라이 에이지드 비프(Dry aged beef)’다. 고기가 든 비닐팩을 공기가 통하게 연 다음 영상 2도에서 숙성시키는 ‘건식숙성’법이다.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한국에서는 1~2년 전부터 인기가 높다. 호텔 안에서 직접 이렇게 고기를 숙성시킨다.



●건조 숙성하면 더 맛있나요.



 “기호의 문제죠. 다만 공기와 닿아서 수분이 날아가니까 피 냄새보다는 고기 자체의 풍미가 더 많이 나요. 숙성을 더 시킨 만큼 소화도 잘 되고요.”



●한우가 ‘와규(和牛)’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가요.



 “이제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한우가 좋다는 걸 알아요. 저희 호텔 고기만 해도 외국인들이 다 감탄해요. 품질 면에선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조리사 경력 25년. 1987년 지금의 호텔에 입사한 이래 수많은 명사와 해외 국빈들이 그의 요리를 맛봤다. ‘남북 정상회담 답례 만찬(2007)’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2010)’에도 참여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총괄 셰프로 지명받은 것도 그런 신뢰와 운영 노하우를 인정받은 덕이다.



●정상들 음식을 준비하려면 신경이 많이 쓰이겠어요.



 “그렇죠.(웃음) 음식 선호도 조사를 정말 철저히 해요. 개인별로 특별히 좋아하고, 꺼리는 게 있는지도 분석하고요. 이번에도 여러 종교·문화권에서 오시는 만큼 한우 코스 외에 생선 코스와 채식 코스 메뉴를 따로 준비했어요. 그리고 새로운 시도보다는 식품의 안정성이 최우선이에요. 상태가 가장 좋은 제철 재료를 써야 하니까 구매 시기도 딱 맞춰야 하고, 수시로 원산지에 가서 검수도 철저히 하고…. 그런 부담 자체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그 부담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정상 만찬에서 실수도 나오나요.



 “나오면 안 되죠. 저희 호텔 사례는 아니지만 지난 G20 만찬 메뉴 중에 신선로가 있었는데, 몇 개가 냄비 밑 화통에 불이 꺼진 채로 나갔다고 해요. 그런 실수를 막으려고 자체적으로 10번 정도 시연을 해봤어요. 동선부터 아주 작은 모든 동작 하나하나까지요. 눈 감고도 할 수 있게 말이죠.”



●조리사가 몇 명이나 투입되나요.



 “이번 정상회의는 손님 세 분당 조리사 1명이에요. 정상 외에도 고위급 인사가 160명 넘게 오시기 때문에 조리사만 60명이 훨씬 넘어요. 식음료팀은 물론 따로 있고요.”



●그 많은 인원을 통솔하는 거군요.



 “그렇죠. 총괄 셰프는 주방 아나운서라고 보면 돼요. 스테이크 하나에도 가니시(고명) 만드는 사람, 소스 만드는 사람, 굽는 사람이 다 따로 있어요. 제가 ‘자, 나갑시다!’ 하면 각자 만든 걸 가지고 와서 접시에 탁 담아서 가는 거죠.”



●혹시 마이크나 확성기를 쓰시나요.



 “하하. 그냥 육성으로 해요. 주방이란 데가 냉장고 소음에 달그닥거리고 지글거리고 아주 시끄러운 곳이에요. 그래서 조리사들은 가는귀가 좀 먹었어요. 목소리도 엄청 크고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더라고요. 직업병인 셈이죠.”



 직업병이 생겨도 그는 자기 일을 사랑한다. 스스로 “신이 내린 직업 중에 가장 위대한 직업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북한이 고향인 보수적인 아버지가 ‘남자놈이 요리나 할 거면 아예 집을 나가라’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내 인생은 내 것”이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조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요.



 “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운명인 것 같아요. 당시 재수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 친구분 중에 대학에 계셨던 분이 조리과라는 게 있다고 팸플릿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걸 본 순간 굉장히, 정말 굉장히 끌리더라고요. 원래 이과라서 토목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완전히 뒤집힌 거죠. 1984년 국내 대학(경희대)에 단독 조리과가 생긴 걸로는 입학 1호예요.”



●부모님도 이젠 자랑스러워하시죠.



 “IMF 외환위기 때도 안 잘리고 다니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제 동기 중에 샐러리맨들은 그때 많이 해고됐었거든요. 아쉬운 건 부모님께 제 요리를 많이 해드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지금 가족들을 위해 요리 많이 하시나요.



 “딸이 둘인데 통 대화하고 볼 일이 없더군요. 그래서 매주 주말 아침은 가급적 제가 요리를 해요. 새벽에 운동하고 들어오면서 마트에 들러서 눈에 띄는 식자재를 집어서 그때그때 즉석으로 요리를 해요. 보통 양식으로 수프·파스타·고기까지 다 해요.”



●부인이 정말 좋아하겠어요.



 “아내는 ‘하려면 한 가지만 해라. 설거지가 넘쳐난다’고 별로 안 좋아하던데요? 하하.”



●설거지는 안 하시는군요.



 “호텔에서 조리사들은 조리만 해요. 설거지하는 역할은 따로 있어요. 나눠서 일하는 게 몸에 밴 거죠.(웃음)”



●전공은 양식이지만 한식에도 관심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지금이야말로 한식이 세계로 뻗어나갈 절호의 기회예요. 음식은 문화입니다. 음식만으로 세계화를 이루는 건 아주 어려워요. 입맛은 의식주 중에 가장 늦게 바뀌거든요. K팝이 뜨고 한류가 인기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한식의 세계화가 이뤄지는 거예요. 문화가 먼저 퍼지면 음식은 훨씬 쉽고 빠르게 퍼질 수 있어요.”



●퓨전이 아닌 전통 한식은 세계화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한계는 없어요. 일식과 중식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달리 말하면 이제 질릴 때도 됐어요. 앞으로 세계적으로 더 인기를 얻을 거라곤 생각 안 해요. 반면에 한식은 아주 잠재력이 많죠.”



●정작 국내 호텔들엔 한식당이 별로 없죠.



 “참…심각한 문제예요. 한국 호텔에서 한식당 찾기 어렵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수지가 안 맞아도 어떻게 해서든 명맥을 이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선 SK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님이 한식에 조예가 깊어서 한식당 두 곳을 운영하고 김치사업도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 덕에 외무부 만찬 때도 여기 한식이 많이 나갔어요. 외국 대사들 중에 단골도 꽤 생겼고요. 제 직장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부분은 자부심을 느껴요.”



●특별한 조리 철학이 있나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양식은 양식답게, 한식은 한식답게. 물론 너무 고집하면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으니 세대 문화를 반영해야겠죠. 그래도 기본, 뿌리를 흔들면 안 돼요. 봉골레 스파게티라면 오일과 조개가 들어가야 해요.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면 향신료를 넣을 수도 있고, 장식을 다르게 할 수는 있지만 다른 소스가 들어가면 안 되는 거죠.”



●요즘엔 조리사가 되겠단 학생이 많죠.



 “조리과 가려면 반에서 3등 안에 들어야 한다더라고요. 영어도 잘해야 하고. 하지만 ‘공부가 싫어서’ ‘취업 잘 하려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중간에 다 도태돼요. 조리사로서 몇 년 후에 뭐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해요. 요즘 지망생들은 참을성이 없어요. 악도 없고 직업에 대한 열정도 부족해요. 365일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직업인데 ‘왜 주말에 못 쉬게 해요?’ ‘식구들과 놀러가야 해요’ 이런 소리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 안타깝죠.”



●열정·인내 말고 조리사의 마지막 자질을 꼽아주세요.



 “바로 그 ‘자질’이죠. 사실 이게 젤 중요해요. 예술적인 감각이 있어야 성공하고 발전해요. 조화·색채·균형 등 감각적인 걸 타고나야 해요. 이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번 정상 만찬 시연을 10번이나 했다는데 결과는 어떤가요.



“맛있어요. 아주~ 맛있습니다.(웃음)”



기억에 남는 명사들



최경주 선수 왔을 땐 못 참고 나와 사인 받았죠




역대 정상회의에 차려진 메뉴들
①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영부인 오찬 요리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온 구절판.
②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만찬 메인 메뉴였던 자연송이와 너비아니 구이.
③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만찬메뉴 중 하나. 바닷가재를 채운 훈제연어 요리.


셰프는 대부분 주방에 머문다. 음식 맛에 감동한 손님이 직접 셰프를 불러 칭찬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하영철 셰프는 “정상 만찬처럼 VIP 손님일수록 반응을 직접 듣기가 힘들다”며 “접시에 음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면서 만족도를 체크한다”고 했다.



그래도 G20 회의 때 한국가구박물관에서 각국 영부인들을 모시고 했던 오찬 같은 경우도 있다. 당시 컨셉트는 ‘조선왕조 500년’이었고 메뉴는 전통 궁중 요리법으로 만든 한식이었다. 전통가구에 맞는 전통문양, 색채 등을 충분히 활용했다. 영부인들은 기대 이상으로 환호하며 좋아했다. 특히 구절판의 인기가 좋아 추가로 구매한 사람도 있고, 심지어 싸간 사람도 여럿이었다. 하 셰프는 “아무리 영부인이라 해도 확실히 여성분들은 다르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그가 자발적으로 손님 앞에 나선 적도 있다.



5년 전 호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델비노’에서 조리할 당시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예약을 했다. 최 선수의 열렬한 팬인 하 셰프는 명단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 선수는 고기 코스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제가 소심한 A형이라 연예인이 오든 누가 오든 나가서 사인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최 선수는 너무 좋아해 결국 사인을 받았죠. 실제로 보니 무척 소박하셔서 더 좋아하게 됐죠. 하하.”



j 칵테일 >> 남이 해주는 음식, 가장 좋아해요



‘요리의 달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하영철 셰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남이 해주는 음식요”라고 말한다. 여전히 조리하는 일을 즐기지만, 25년 동안 거의 매일 ‘남이 먹을 음식’만 하다 보니 누가 뭘 해주면 그렇게 맛있단다.



●그중에 특히 좋아하는 메뉴가 뭐죠.



 “두부요. 처갓집이 경북 영양인데 장모님이 직접 만들어 주세요. 남들은 사위가 온다면 씨암탉을 잡는데, 우리 장모님은 두부를 만드세요. 하하.”



●장인·장모님은 사위 직업을 맘에 들어 하셨나요.



 “솔직히 처음엔 걱정 많이 했어요. 보수적인 지역이기도 하고. 그런데 장인어른이 ‘남자가 직업만 확실하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기분 좋았죠.”



●혹시 싫어하는 음식도 있나요.



 “멸치만 들어간 김치찌개요. 어릴 때 하도 가난해서 김치찌개에 고기를 못 넣었거든요. 그것도 바싹 쉬어빠진 김치로…. 어휴, 지금 생각해도 싫어요.(웃음)”



주요 경력



- 1987년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입사



- 1991년 일본 도쿄쉐라톤호텔 연수



- 1993년 제2회 서울 국제요리 전시회 금상



- 1994년 한국 국제요리 경연대회 은메달



- 1996년 이탈리아 밀라노 팰리스호텔 견습



- 2000년 미국 뉴욕조리학교 CIA 연수



- 2010년 경기관광대학원 외식산업경영학 석사



- 현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총주방장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이죠. 자기 몸이 건강해야 남도 챙기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조리사는 육체적 일이 많은 직업이에요. 항상 칼질을 하든 프라이팬을 돌리든 해야 하니까요.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건강을 챙기는 게 제겐 일종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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