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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명품 ‘구찌’의 디자인 총책임자 프리다 잔니니

2004년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는 혼란에 휩싸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총괄 디자이너)인 톰 포드가 사의를 표했기 때문. 그가 누구인가. 파산 직전의 구찌를 1990년대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던 패션계의 제왕이었다. 어느 디자이너든 그 뒤를 잇는다는 건 독배를 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사는 일단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대신 유예기간을 뒀다. 그리고 2006년 마침내 여성복 총괄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잔니니(Frida Giannini)를 ‘구찌의 퍼스트레이디’로 점찍었다. 그가 핸드백 디자이너로 구찌에 온 지 4년 만이었다. 잔니니는 세간의 우려를 보란 듯이 잠재웠다. 브랜드의 수익을 50% 가까이 끌어올렸고(2006~2011년),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현대 여성’을 구찌의 새로운 이미지로 정착시켰다. 자신 역시 패션계의 가장 파워풀한 여성으로 떠올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탄탄대로를 걷는 ‘알파걸’의 승승장구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밀라노에서 가을·겨울 컬렉션을 끝낸 그를 만나서도 화제는 ‘옷’보다 그쪽으로 흘러갔다.



일은 진지하게, 방식은 재미있게 하라

밀라노=이도은 기자



첫인상부터 도도했다. 찰랑거리는 금발 생머리, 검정으로 빼입은 옷차림 때문은 아니었다.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짙게 칠한 눈매, 붉은 매니큐어를 공들여 바른 손톱이 강렬해 보였다. 문득 ‘프로는 아름답다. 그녀는 프로다’라는 오래된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그는 실제로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를 종종 꺼내 들었다.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투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컬렉션 직후라 피곤하다면서도 40분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컬렉션이 끝났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다음 주 고향인 로마로 돌아가 해변가에도 가고 승마도 하고, 책도 좀 읽을 계획이다. 생선 요리 같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지금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이번 컬렉션에서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 보였다. 당신과 닮은 느낌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대부분을 컬렉션에 투영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도 한밤중 매 시간 일만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겠나. 결과물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시즌에는 로맨티시즘을 주제로 삼았지만 역시 자신감 넘치는 여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에 빠져들면 희생하는 것이 없나.



 “글쎄. 좋아하는 승마를 자주 못하는 정도? 물론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컬렉션이 코앞이라면 못 한다. 하지만 나는 더 큰일을 위해 그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 솔직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별로 포기했다고 볼 수도 없다.”



●일만 열심히 했다고 세계적 디자이너가 될 순 없었을 텐데.



 “구찌라는 세계적 브랜드를 맡았으니 당연한 일 아닐까(웃음).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디자인 자체에만 빠져 있지 않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궁금해한다. 한국·브라질같이 내가 안 가본 나라에서 매장을 연다고 치자. 이런 게 나한테는 일이 아니다. 한 나라를 알 수 있는 기회고, 직접 그 나라에 가볼 구실도 생기는 거다. 처음 디자이너가 됐을 땐 유럽과 미국이라는 두 시장만 봐야 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도전할 세계는 더 커졌고 갈 곳도 많아졌다. 아마도 향후 패션계가 나를 평가한다면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 물론 아름다운 옷으로 먼저 기억돼야 하겠지만(웃음).”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 건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호기심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듯싶다. 엄마가 미술사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어릴 적 미술관에서 그림 하나를 봐도 그 이면에 무슨 배경이 숨어 있는지 설명해주셨다. 또 아버지가 건축가라 어릴 때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진들을 수없이 보고 자랐다. 재밌는 건 나는 스물아홉이 돼서야 처음으로 집을 떠났고, 이탈리아가 아닌 곳에서 생활했다는 거다. 2002년 구찌에 합류했을 때 톰 포드의 디자인팀이 런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의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잔니니를 두고 어머니는 한 인터뷰에서 “외골수에 자립심이 강해 모든 걸 컨트롤하는 데 병적일 정도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로마의 패션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97년 패션 브랜드인 펜디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여성복 디자이너를 하다 2002년 구찌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이직을 결심했다. 이에 대해 잔니니는 자세히 설명했다. “그 당시 나는 내 커리어를 성장시켜야 할 뭔가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구찌처럼 좀 더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었다. 물론 나 역시 톰 포드를 너무나 좋아했다. 구찌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고 ‘오케이, 난 이미 펜디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았어. 하지만 이제 다음 단계로 옮길 때야’라고 확신했다.” 선택은 옳았다. 그는 구찌에서 2년 만에 액세서리 총괄 디렉터로 승진했고, 2006년부터 구찌의 프리마 돈나가 됐다.



잔니니가 밀라노에서 열린 2012 가을·겨울 컬렉션에 선보인 의상들. ‘지적인 로맨티시즘’을 키워드로 삼았다.
●톰 포드의 후임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을 때 부담감이 컸을 텐데.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패션계의 영웅이었으니까. 후임이 된 건 한없이 영광스러웠지만 내가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24시간 일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으면서 패닉 상태에도 빠졌고, 위장병도 생겼다. 아마도 모든 이들이 한번쯤 겪었을 가장 괴로운 시간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자신감도 서서히 되찾았다.”



●어쨌든 구찌에서 지난 10년간 초고속 승진을 했다. 비결이 뭔가.



 “일할 때만큼은 굉장히 다면적이다. 나는 물론 디자이너이지만 관리자로서 한 팀을 이끌어야 하고, 시장을 파악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만 일하는 방식만큼은 재미를 가지려 한다.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한판 놀아야지’ 하는 거다. 맨땅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을 그렇게 받아들인다.”



●당신은 어떤 보스인가. 팀원보다 나이가 더 어리진 않나.



 “친한 동료 중엔 동년배가 있지만, 지금 막 들어온 신참이라면 스물 둘, 셋도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선 에너지를 얻고 영감을 받으려 한다. 어떤 식으로든 다음 세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반면 내가 절대로 터프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할 때는 있다. ‘좋아. 이건 옳아, 아니 저건 틀렸어. 오늘 당신은 너무 지각했군’ 등등 말이다. 이런 것들은 보스로서 당연한 일 같다. 누구나 일터에서도 ‘교육’ 받을 필요가 있다.”



●총괄 디자이너로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 내 디자인 철학이다. 사람들이 구찌에 열광하는 이유가 뭔가. 그건 브랜드의 DNA 때문이다. 당연히 디자이너는 과거 구찌의 디자인을 연대기 순으로 살펴보고 여기서 새로운 모양·소재·비율 등을 재창조하면 된다. 이번 패션쇼에서도 나는 뻣뻣한 소재의 핸드백들을 선보였다. 지금껏 내가 만든 부드러운 것들과는 굉장히 다른 디자인이다. 또 하나, 나는 옷을 예술작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 현실 속 사람들이 그것을 입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가끔씩 경영진과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솔직히 난 굉장히 운이 좋다. 내가 하는 일에 방향을 바꾸라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거나 미팅에 들어오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는 드물다. 구찌는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굉장히 존중해주고 그것을 일임하는 편이다. 컬렉션에 대해 내가 설명해야 할 때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특정 시장에 대해 뭔가 만들어내야 하지만 이것 역시 압력을 가한다기보다는 열린 토론이 벌어진다. 내 스스로 상업적인 제품들을 제안할 때도 많다. ‘선수’끼리라면 가장 완벽한 순간 아닌가.”



●당찬 성격 같다. 가장 영향력을 준 인물은 누굴까.



 “물론 부모님이다. 그들은 내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키고 싸우려면 늘 용기를 가져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것이 지금도 인생의 가르침이 되고 있다.”



●이제 당신이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면.



 “겸손해지라는 거다. 가령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재능이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겸손하고 호기심 넘치고 존경심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매일매일이 새롭고 즐겁다. 늘 사소한 것에도 놀라워할 줄 알아야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인생의 보물이기도 하다.”



 그는 2009년 경영진을 설득해 피렌체에 있던 디자인팀을 로마로 옮겼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피렌체는 보석처럼 아름답지만 너무 시골이다. 젊은 팀원들에게 좀 더 활기찬 도시가 필요하다. 일을 마친 뒤 마음껏 즐길 곳 말이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피렌체의 명소인 시뇨리나 광장 앞에 구찌 뮤지엄을 오픈했다. 구찌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하며 보존하고 싶다는 목표에서였다.



●다음으로 주도할 일은.



 “현재로선 없다. 박물관 작업 자체만으로도 할 일이 많다. 올해 말엔 구찌 아카이브의 영구 전시 외에도 특별전을 따로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지난해 우리가 교토에서 했던 것(두 나라의 장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연 교류전)처럼 세계 순회전을 기획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달라. 구찌의 잔니니가 아닌 잔니니의 구찌를 욕심내진 않나.



 “전혀. 그렇다면 100% 실수일 거다. 90년이 넘는 브랜드에서 일하는 자체가 대단한 일인데 무슨! 브랜드의 얼굴이 아니라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알파걸 잔니니의 ‘특별한 연인’



구찌 CEO 디 마르코와 사내 연애




알파걸은 연애조차 남다르다. 잔니니의 연인은 다름 아닌 구찌의 최고경영자(CEO)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49). 둘은 2009년 6월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느 사내 커플들처럼 공개가 쉽진 않았다. 일단 그들은 각자 따로 구찌의 모회사인 PPR의 CEO 프랑수아 헨리 피노를 만났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연애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피노는 “이 사실이 외부(주주들)에 어떻게 비칠지 안다. 그렇지만 이 일로 당신들이 얼마나 조심할지도 알고 있다”며 그들의 만남을 지지했다. 디 마르코와 잔니니는 이후 부하 직원들에게도 알렸다. 단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터뜨리지 않았다. 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연애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듯 설명했다. 일대일로 ‘당신에게 폐가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문제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비밀’을 만든 것이다. 이 일화는 지난해 10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를 통해 공개됐다.



 인터뷰 중 잔니니에게 CEO와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물었다. 한마디로 ‘득이냐, 독이냐’는 문제였다. 똑 부러진 대답이 먼저 나왔다. “그가 오기 전 이미 3명의 대표가 있었고 난 언제나 그들과 직접적으로,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관계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회사의 CEO로 생각하는 것과 연인인 마르코로 생각하는 것과 거리상 그다지 차이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진 부연설명. “CEO와 미팅을 준비하거나 따로 e-메일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건 좋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주말을 보내면서 할 얘기를 하면 되니까 말이다. 우리는 둘 다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언제나 회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



한정판으로 내놓은 ‘무궁화 백’



한국인 디자이너 덕분이죠




잔니니가 하는 일은 단지 제품 디자인만이 아니다. 매장을 새로 낼 때마다 건축물의 컨셉트부터 디스플레이·조명까지 크고 작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미 뉴욕·로마·상하이 등 30여 곳의 매장이 그의 손을 거쳤다. 9일 리노베이션을 거쳐 재오픈한 서울의 플래그십스토어도 마찬가지. 3289㎡의 지상 5층, 지하 3층짜리 매장에는 잔니니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숨어 있다. 디자인 컨셉트의 이름도 ‘프리다Ⅰ’이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무궁화를 모티프로 한 한정판 핸드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프리다Ⅰ’의 컨셉트를 설명한다면.



 “외부로부터 건물로 빛이 들어오는 투명성이다. 구찌의 매장은 그 도시와 상호작용하기를 원한다. 가령 당신이 서울 매장에 들어갔다면 창밖을 통해 ‘아, 서울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뉴욕 매장에서 5번가의 노란 택시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한정판 백을 디자인하며 무궁화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한국을 가 본 적이 없어 한국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디자인팀에 한국인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관한 이미지를 추린 뒤 팀원들과 토론하며 무궁화로 정했다. 한국 지사 의견도 들었는데 모두 이 디자인에 굉장한 호응을 보냈고 나도 흔쾌히 작업을 마쳤다. 서울 매장에서 이 핸드백을 본다는 게 너무 기다려진다. 뉴욕·상하이·런던 매장을 오픈할 때도 한정판 백을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히트를 쳤다. 한국에서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4월에 한국에 온다고 들었는데, 뭘 하고 싶나.



 “글쎄. 전혀 배경지식이 없다.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적인 박물관이나 건물, 전통 식당을 들러보고 싶다. 너무 짧은 방문이라 진짜 한국적인 것을 맛보려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알고 가지 않으려 한다. 직접 경험할 때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으니까.”



j 칵테일 >> 평일엔 구찌, 주말엔 캐주얼



스스로 옷을 만들 줄 아는 디자이너라도 쇼핑의 욕망은 있을 터. 잔니니는 자기가 만든 옷만 입을까. 대답은 ‘그때그때 달라요’였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항상 구찌 옷만 입는다. 하지만 나 역시 쇼핑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말에는 다른 브랜드도 입는다. 럭셔리 브랜드를 좋아하지만 때로는 유니클로 같은 캐주얼 브랜드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저지 소재 티셔츠는 비행기를 탈 때 굉장히 편하다. 단 구두·가방 등 액세서리만큼은 언제나 구찌다!”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열정과 사랑이다. 열정은 하루하루 아침마다 생기 있게 깨어날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고 나쁜 기억을 쉽게 잊을 수 있는 특효약도 된다. 사랑은 꼭 연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친구·가족·자녀 등등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사랑 자체가 마음의 좋은 영양분이다. 나는 종종 사랑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난 그런 복잡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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