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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봄을 노래하고,청년은 여름을 동경했다

투코리언즈와 양희은의 앨범. 사진 가요114 제공
고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청춘예찬’이란 민태원의 수필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민망할 정도로 인위적이고 화려한 표현들이 크게 거슬리는데, 시험에 자주 나왔던 것은 아마 이 글이 특별히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밑줄 쫙 긋고 깨알같이 써넣을 거리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수필이란 것을 사유와 통찰력보다는 문체의 화려함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주범’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수필의 첫 부분은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이지만, 그 시절 나에게 ‘청춘’은 듣기만 하여도 다소 ‘구리구리한’ 말이었다. 즉 1970년대 후반 고등학생들에게 ‘이팔청춘’ ‘맨발의 청춘’ 같은 표현은 어른들이나 쓰는 다소 촌스러운 말이었다.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중략)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봄봄 봄봄봄봄”(김용만의 ‘청춘의 꿈’) 같은 노래도 중년 아저씨들이 술집에서 부르는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48> 젊음의 계절

젊은 시절을 ‘푸른 봄’으로 비유해 달착지근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청춘이란 말은 1960년대까지의 대중가요에서 매우 빈번히 사용됐다. ‘청춘계급’ ‘청춘삘딩’ ‘청춘고백’ ‘청춘 브라보’ ‘청춘 목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봄을 젊은이들의 연정이 싹트는 계절로 그린 작품 역시 매우 많다.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타령이 절로 난다/ (후렴) 음 음 음 음// 호미 들고 밭 가는 저 총각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 왔다고 피는 끓어 울렁울렁/ 콧노래도 구성지다 멋들어지게 들려오네/ (후렴)”(강홍식의 ‘처녀총각’, 1934, 범오 작사, 김준영 작곡).
강홍식은 1940~50년대 ‘눈물의 여왕’이라 불렸던 배우 전옥의 남편, 그러니까 배우 강효실의 아버지이자 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다. 이시이 바쿠(石井漠·최승희와 조택원의 스승인 무용가)에게 춤을 배우고 일본에서 영화배우 활동을 했다. 귀국 후 연극·영화·대중가요를 넘나들며 활동했고, 월북 후 북한 최초의 극영화를 감독한 인물이다.
그의 최고 히트곡 ‘처녀총각’은 봄이 되어 공기가 달착지근하게 바뀌면서 젊은이들의 리비도가 치솟는 이 독특한 느낌을 향토성으로 버무려낸 노래로 오랫동안 인기를 모았다. 드라마 ‘여로’의 유명한 캐릭터 영구(장욱제 분)가 혀 짧은 발음으로 늘 부르는 노래도 이 곡이었다.

식민지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대중가요에서 흔했던 봄 노래는 희한하게도 1970년대 청년문화에서 ‘청춘’이란 말이 슬슬 사라지면서 함께 사그라졌다. 이 시기 젊은이들은 ‘청춘’이란 말 대신 ‘청년’이라는 말로 불리기를 원했고,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 주는 계절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 생각했고(노래 ‘겨울 이야기’나 소설 ‘겨울여자’를 생각해 보라), 젊음의 에너지를 맘껏 방출하는 계절은 펄펄 끓는 여름이라 여겼다. 봄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의 상당수는 ‘봄’에 ‘비’를 결합해 달착지근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청년문화 세대는 자신의 젊음을, 달착지근하고 육체적 욕망에 휘둘리는 즐거움을 누리다가 빨리 지나가 버리는 봄 같은 계절로 표현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꽃잎이 떨어지면 젊음도 곧 가리”라는(송창식의 ‘날이 갈수록’) 것쯤은 알지만, 1950년대 젊은이들처럼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올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고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도록 춤을 춥시다”(윤일로의 ‘기타 부기’)라며 말초적 욕망에 휘둘리기는 싫었던 것이다. 오히려 청년문화 세대는 자신의 젊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롭던 사람아 너와 나는/ 눈물을 보이지 말자/ 비바람 치던 날 너와 나는/ 뜨겁게 두 손을 잡았다/ 그대여 그대여 가진 것 없는 우리들/ 그러나 젊었다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투코리언즈의 ‘젊었다’ 1절, 1974, 서양훈 작사, 장세용 작곡).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 주세/ 봄과 새들의 노래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중략) 아하 나는 살겠네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양희은의 ‘행복의 나라로’, 1973, 한대수 작사·작곡).

이 젊은이들은 비바람을 이기고 태양처럼 살고 싶단다. ‘젊었다’는 김도향과 손창철이 만들어내는 파워풀한 음색이 “태양처럼 젊었다”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노래다. 이런 젊음에 ‘청춘’이란 말이 어울릴 수 있을까? ‘행복의 나라로’의 3절에는(우연일지 몰라도)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푸르러요/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고 노래한다. ‘청춘’이 아닌 ‘청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영민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 대중가요 관련 저서로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광화문 연가' 등이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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