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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1. 이것은 건축에 대한 영화다. 건물이란 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화다.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에서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은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주민자치센터(면사무소)를 지을 때 지역 어르신들을 만나 뭘 해드릴까 여쭸다. “짓지 말라”“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라”며 이구동성으로 나무라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이 건축가의 끊임없는 설득에 “그럼 목욕탕이나 하나 지어달라. 집에서 졸졸 나오는 물로 감질나게 씻다가 몇 달에 한 번 봉고차 타고 큰 도시로 나가 목욕한다”고 털어놓았다. 목욕탕 들인 면사무소는 이렇게 시작돼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퍼져나갔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

#2. 이것은 건축가에 대한 영화다. 건물을 짓고, 그곳에 깃들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축가가 주인공이다. 정작 본인은 열 평(33㎡) 될까말까 한 월셋집에 살면서 건축을, 도시를, 사회를 생각한다. 서울 강북의 다가구주택 거실에 앉아 정기용씨는 말했다. “월세가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머지는 평범해. 아니, 경관이 좋아. 어쩌면 호화스럽기도 하고.” 경관 좋다는 밖에서는 때마침 트럭 행상의 요란한 확성기 소리만 들렸다. 내레이션 하나 없이 바깥의 소음까지 그대로 흡수한 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그는 “내가 산책하는 곳, 내가 집에 들어올 때 걸어가는 골목, 이 모든 것이 나의 집이다. 집을 이렇게 확장해 생각해야 한다”며 ‘나의 집은 백만 평’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처럼 거주에 대한 우주적 사고를 토대로 건축을 윤리로 실천한 그는 ‘건축계 공익요원’으로 남았다.

#3. 한편 이 영화는 건축가가 10여 년 전 자기가 만든 프로젝트를 다시 찾아가는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정씨는 1996년부터 12년간 무주군에서 면사무소·공설운동장·납골당·버스정류장 등 30여 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영화에서 정씨는 ‘건축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차 10여 년 만에 이 무주를 다시 둘러본다. 등나무를 가리고 태양열 집열판을 세우는 등 건축가에게 묻지도 않고 함부로 훼손해 놓은 현장을 보고는 분통을 터뜨린다. 건축주가 마침 수리 의뢰를 해온 춘천의 개인주택 ‘자두나무집’에 가선 지친 몸을 잠시 누이다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의 정재은 감독은 지난 2년간 건축 다큐라는 새로운 형식에 매달렸다. 찍으면서도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치고, 편집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는 영화가 건축과 닮은점이 있다고 여기는 그는 큰 건물의 탄생에 집중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2009년 12월 정기용씨와 의기투합해 일주일에 하루씩은 정씨의 일정을 그대로 쫓아다녔다. 그러나 주인공의 병세가 악화되고, 급기야 숨을 거두면서 영화는 애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4. 그래서 사람에 대한 영화가 됐다.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안 것은 2005년.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007년 암이 간으로, 폐로 전이됐다. 치료 부작용으로 성대결절이 왔다. 마이크를 통한 쇳소리로만 말할 수 있게 됐다. 복수(腹水)가 차 허리에 그걸 빼는 장치를 차고 다니며 찍은 이 영화에서 그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투병 중 6권의 책을 정리했고, 영화를 찍었고, 국내 단일 건축전으로는 최대 규모의 회고전을 준비했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2010년 11월~2011년 1월까지 연 건축전에는 1만여 관객이 들러 도시와 삶과 건축에 대해 잔잔한 감응을 얻고 갔다. 죽음 가까이에서, 끝까지 그렇게 자신을 혹사하다 간 이유가 뭘까. 전시를 준비하며 그는 말했다. “건축가들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건축으로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막다른 골목이다. 기로에 선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5. 해서 이것은 삶에 대한 영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영화다. ‘건축 다큐’라고만 규정짓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정기용씨의 1주기(11일)를 맞아 8일 개봉했다.



건축가 정기용(1945∼2011)
서울대 응용미술과와 대학원 공예과를 나와 프랑스 파리에서 실내건축·건축·도시계획을 전공했다. 귀국 후 1986년 기용건축 설립. 2003년부터 5년간 순천·진해·제주·서귀포·정읍·김해 등 전국 6개 소도시에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 도서관’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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