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어설픈 마술은 이제 그만 !

정진홍
논설위원
#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엔 ‘멍게아저씨’라고 불리던 이가 있었다. 손수레에 해삼과 멍게를 잔뜩 싣고 와서는 골목 어귀에 진을 친 후 즉석에서 듬성듬성 썰어낸 해삼과 멍게를 초장과 함께 내놓고 파는 일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 걸러 멍게아저씨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흩어져 놀다가도 어느새 그가 장사를 하는 골목 어귀로 어김없이 몰려들곤 했다. 그렇다고 해삼과 멍게를 사먹으려고 그리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이들 호주머니가 너무 궁했다.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아이들이 멍게아저씨 주변에 모여든 진짜 이유는 다름아닌 ‘마술’ 때문이었다.



 # 멍게아저씨가 보여준 마술은 엄밀히 말해 진짜 마술은 아니었다. 그저 손가락 속임수였을 뿐이다.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직사각형 형태로 직각이 되도록 만든 후 왼손 엄지를 아래로 굽히고 거기에 오른손의 엄지를 직각으로 교차시켜 잇댄 후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덮고 나서 오른손을 왔다갔다 이동시키면 마치 왼손 엄지손가락이 잘렸다가 붙었다가 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것 아니지만 당시엔 그것이 너무 신기해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멍게아저씨 주위를 빙 둘러싼 채 넋놓고 그것을 바라보곤 했었다. 물론 아이들의 이목을 온통 집중시킨 마술이 끝난 후 멍게아저씨는 해삼과 멍게를 썰어 한 접시 내놓는다. 멍게아저씨가 한턱까지 내는 셈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흙 묻은 손으로 게걸스레 그것들을 집어서 초장에 적신 후 게 눈 감추듯 입에 넣고 흩어지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삼삼하다.



 # 젊은 마술사 이은결은 뒤늦은 나이에 해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친 후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에 가게 됐다. 그리고 거기서 크나큰 눈망울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아프리카의 순진한 아이들 앞에서 온갖 기구를 활용한 세련되고 매끈한 마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다지 놀라지도, 감동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좋아하고 열광한 마술은 다름아닌 손가락을 이었다 붙였다 하는 식의 단순한 마술이었다. 사실 그것은 마술이라고 말할 만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프리카 아이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마치 내 어린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이 멍게아저씨에게 홀딱 빠졌던 것처럼!



 # 지난 주말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충무아트홀을 찾았다. 이은결의 마술쇼 ‘더 일루션’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헬리콥터를 타고 등장한 마술사 이은결은 2시간 넘게 정말이지 화려한 마술의 세계를 선보이며 관중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눈물 나게 만들고 기립박수까지 치도록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손을 이용한 일종의 그림자 마술이었다. 그날 이은결이 보여준 마지막 마술이었던 그것은 그 어떤 기구도 없이 오로지 환등기 앞에서 손가락의 동작만으로 아프리카의 초원과 석양을 재현해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주제곡인 ‘서클 오브 라이프’가 울려퍼지며 스크린 위로 아프리카의 초원이 펼쳐지고 그곳에서 온갖 새와 동물들이 넘나든다.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야말로 진정한 감동의 마술이었다. 나를, 아니 모두를 울릴 만큼….



 #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은 장치나 도구 혹은 기술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의 산물이고 동심의 파장이다. 자고로 선거에 앞선 공천(公薦)은 권력의 판을 새로 짜는 정치의 마술이다. 거기엔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구민과 국민이 축제 같은 선거로 들어온다. 그러나 4월 총선에 앞서 이뤄지는 여야의 공천 과정에서 감동은커녕 잡음과 파열음만이 넘쳐난다. 서울 종로에 나가겠다는 사람을 과천-의왕에 공천하겠다는 생각이나, 부산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사람을 부천에 공천하겠다는 발상이나 정말이지 범인들로서는 알 수 없는 요지경 속인 공천판이다. 이런 어설픈 마술이 판을 깨고 있다. 단 한 곳이라도 좋으니 세상을 감동시키는 진짜 마술 같은 공천은 불가능한 것인가?



정진홍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