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무대 뒤에서 30년 … 누가 어떤 옷 입었는지 다 기억하죠

무대의상의 달인 국립극장 김경수 의상실장. 그는 “승무를 출 때는 작은 주름은 없애고 큰 주름은 통통하게 잡아야 저고리가 날씬하게 날아간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통상 한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서울 장충동 남산 국립극장. 한국 공연문화의 중심지다. 이곳 대극장(해오름극장) 무대 뒤편 의상실. 관객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이곳을 30년간 지켜온 이가 있다.

 국립극장 김경수(58) 의상실장이다, 임금이 입던 곤룡포에서 1970년대 교련복까지 켜켜이 쌓인 무대 의상을 하나하나 매만져왔다. 한국 생활사의 또 다른 압축파일인 셈이다. 그간 김 실장의 손을 거쳐간 의상은 2만 벌이 넘는다. 참고사항 하나. 의상실 창고에 있는 옷들은 일단 김씨의 손을 거쳐야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벌써 30년이다.

 “1982년 5월 2일 국립극장에 입사했다. 신설동에 있는 라사라 양재학원에서 수선과 바느질 등을 배우다 극장 직원의 추천으로 의상실에서 일하게 됐다. 옷 만지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30년이 흘렀다.”

 -창고에 몇 벌이나 있나.

 “2011년 말 기준으로 대략 8000벌 정도다. 2000년에는 의상실에 1만8000벌이 있었다. 그 해 (국립)발레단과 (국립)오페라단이 독립해 나가면서 무대 의상과 무용복을 떼줘서 1만2000벌로 줄었다. 이후 합창단이 독립하고 2005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 5000벌 가량을 민간 위탁 방식으로 정리했다.”

 -한복도 많이 보이는데.

 “90년에 처음 한복을 배웠다. 라사라 양재학원에서 배웠는데 6개월 마스터 과정이었다. 직장 때문에 매일 학원에 갈 수 없어서 선불을 내고 1년 동안 다녔다. 우리 것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삼·도포·두루마기·저고리 등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김 실장은 지독한 스타일이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다 다리를 다쳐 며칠간 병원에 입원한 것을 빼곤 지각 한 번 없이 매일 남산으로 출근했다. 그는 다리미질 판 뒤로 걸려 있는 의상을 쓰다듬으며 “천 조각 하나 버릴 것이 없는데…”라고 했다. 열 손가락 아프지 않은 게 없든 그에게는 옷이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무대의상은 세상에 한 벌밖에 없는 게 많다. 다들 고유한 생명이 있다”고 했다. 유행이 지난 의상도 언젠가는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떤 종류의 옷들이 있나.

 “임금님이 입던 옷, 장군들이 입었던 가죽 갑옷을 비롯해 각설이들이 입는 무대 의상도 있다. 공주의 예복인 활옷.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입던 녹원삼(綠圓衫). 거지부터 임금까지 모든 계층의 입을 수 있는 옷들을 갖췄다. 군복·교련복 등 추억이 담겨 있는 옷들도 있다.”

 -의상을 빌릴 수도 있다고 들었다.

 “국립이니까. (웃음) 의상도 당연히 대여가 가능하다. 비싸거나 일부 관리가 필요한 의상을 제외하곤 누구나 대여할 수 있다. 기성극단, 대학동아리, 공연동호회 등에서 옷을 대여해 간다.”

 김 실장은 ‘걸어 다니는 데이터베이스’로 통한다. 1650㎡(약 500평) 규모의 창고에 가서 시험(?)해 봤다. 가장 비싼 의상 중 하나라는 가죽으로 만든 장군복을 누가 입었는지 물었다. 그가 답했다. “적벽가에서 창극단 단원들이 입었는데 조조와 관우 역을 맡은 주인공이 입었던 옷이다. 왕기석·남상일·이영태씨가 입었다. 배우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내 일 중 하나다.”

 -배우 이름이 왜 중요한가.

 “의상은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에겐 ‘제2의 피부’와 같다. 얼굴이 큰 배우가 있고 어깨가 좁은 배우도 있다. 다들 체형이 다르다. 얼굴이 큰 배우들에게 입힐 의상은 다리미질을 할 때 주름을 최대한 없앤다. 그래야 배우의 얼굴이 조금 작아 보인다. 대본을 꼭 읽어보고 리허설장에 들어간다. 객석에서 보면 아무리 멋진 의상도 체형과 조명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대본도 읽나.

 “같은 장군 의상이라도 작품 분위기와 시대에 따라서 다른 의상이 필요하다. 작품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의상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하고 다를 것이 없다.”

 공연계에선 “필요한 의상을 찾지 못했다면 국립극장 김 실장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말마저 있다. 그의 머리 속에는 배우들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체형이 기록돼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돌아가신 허규(1934~2000) 전 극장장님하고 어가(御駕)행렬을 재현한 적이 있다. 1987년 1500여 명이 창경궁에서 출발해 동대문을 돌아서 오는 행렬을 재현했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의상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화여대 등을 다니면서 교수님들의 고증을 거쳐 의상을 만들었다. 만든 옷을 가지고 극장장실로 올라가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러 번 퇴짜를 놓으셨다. 그때 의상 공부를 많이 했다. 재현 하루 전에는 창경궁 근처 여관방에 옷을 가득 쌓아놓고 같이 잤다. 아침부터 옷을 다려서 입히고, 돌아오는 행렬을 볼 때의 기분은 말할 수 없었다.”

 -힘든 일은 없었나.

 “배우들 중에 일부는 배역이나 무대와 관계없이 ‘약혼할 사람이 온다’ ‘시부모가 온다’며 무조건 예쁜 옷만 고집하기도 한다. 안 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기어코 자신이 가지고 온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갈 때도 있다. 요즘은 의상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들어 오는 경우가 많은데 무대에 맞게 조금 바꾸자고 하면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기 옷에 대한 자존심이 있기도 한 것이고. (웃음)”

 국립극장에서 ‘김 실장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면 의상실장이 아닌 ‘리베로(다양한 포지션에서 활동하는 선수)’로 활동한다. 특이한 의상이 보이면 기증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조명감독을 찾아가 밝기를 조절해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인의 열락(悅樂)이란 이런 걸까.

 “제가 골라준 의상을 입은 배우가 무대 조명과 함께 어울리다 빛을 내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보면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구나’라고 생각해요.”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