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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50) 투신사 <2> 나는 적극적 시장주의자

1999년 8월 12일 금융감독위원회는 투신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대우채 환매제한’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한다. ‘당장 찾지 않고 기다리면 6개월 뒤엔 원금의 95%를 보장한다’는 게 골자다. 숱한 논란 속에 강행된 이 조치로 수익증권 환매 사태는 일단 진정된다. 사진은 대우채 95% 환매 첫날인 2000년 2월 2일 환매 상담을 받고 있는 투신사 창구의 모습. [중앙포토]


엄낙용. 그는 원칙주의자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돌아보며 눈치 보는 법이 없다. 그 성격이 제대로 나오는 걸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가 재정경제부 차관이던 99년 8월 12일, 여의도 금융감독위원장실에서 언성을 높일 때였다.



 “위원장님, 이런 비법적(非法的) 조치가 어디 있습니까.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그날 저녁, 나는 ‘대우채 환매제한 조치’를 전격 발표한다. 엄낙용은 이를 막겠다며 온 것이다. 많이 늦었다. 결정은 이미 7월 말에 났다. 청와대 서별관에서 관계 장관들이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때 강봉균 재경부 장관과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도 엄 차관과 비슷한 소리를 했다.



 “시장 원칙에 맞지 않는다-.” 말은 맞다. 그 조치의 핵심은 이렇다. ‘대우 회사채가 들어간 수익증권은 당분간 환매할 수 없다. 당장 돈을 찾겠다면 대우채는 장부가격(원금)의 50%만 내준다. 3개월 뒤에 찾으면 80%, 6개월 뒤엔 95%를 준다’.



 “당장은 찾지 마라. 6개월만 기다리면 원금을 거의 보장해 주겠다.” 이런 뜻이다. 대우는 침몰하고 있었다. 이미 7월 중순부터 대량 환매 사태가 시작됐다. 하루 평균 2조원이 넘는 돈이 투신사에서 빠져나갔다. 250조원 투신 시장 전체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막기 위한 극약 처방이 ‘대우채 환매제한 조치’다. 사실상 원금 보장. 외환위기 내내 금감위가 강조했던 ‘자기 책임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엄낙용은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수익증권을 산 사람들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 왜 투신사가 다 떠안습니까.”



 부담을 고스란히 금융회사에 지우기로 한 것은 맞다. 대우 채권이 섞인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가 80%, 이를 굴린 투신사가 20%를 떠안게 했다.



 “개인투자자에게도 책임을 지워야지요.” 강봉균 당시 재경부 장관도 서별관 회의에서 들고 나온 논리다. 원칙대로 하자. 말은 쉽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 그러나 당시 상황은 달랐다. 증권사 창구에선 “예금과 마찬가지”라며 수익증권을 팔았다. 원금 손실 위험을 전혀 알려주지 않고 판 명백한 불완전 판매다. 금융당국도 그렇게 하도록 방치했다.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은 은행 예금 들듯 수익증권을 샀다. 그런 개인에 책임을 묻는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뿐인가. 시장이 나빠지자 투신사들은 수익증권을 제멋대로 주물럭거렸다. 큰 기관이 가입한 펀드에서 불량 회사채를 빼서 일반인들이 많이 투자한 펀드에 집어넣었다. “대우 회사채는 없다고 해서 투자했는데 왜 대우채가 들어 있느냐”라고 항의하는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불법 편·출입. 이건 일종의 사기요 범죄다. 증권·투신사에 ‘원금 보장’의 책임을 지운 건 그래서다.



 “상의하지 말고 통보하고 와라.” 실무를 맡은 김석동 당시 금감위 과장과 강병호 금감원 부원장이 증권·투신사 측과 이 문제를 협의하러 나갈 때 내가 한 말이다. 업체들이 반발하면 불법 편·출입한 죄를 물어 형사고발할 계산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책임을 지워야만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예상대로 증권·투신사는 크게 반발하지 못했다. “정 안 되면 정부도 도와주겠다”고 하니 이내 잠잠해졌다.



 다시 금감위원장실. 엄낙용은 내가 들은 척을 않으니 내 곁에 있던 김석동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공무원이란 사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치를 만드느냐. 내가 그렇게 가르쳤느냐”며 면박을 줬다. 얼굴은 김석동을 보고 있지만 말은 나를 향한 것이다. 김석동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환매제한조치의 큰 그림을 그린 게 김석동이다. “투신 시장 폭발을 막으려면 시간차 환매밖에 답이 없다”는 보고서를 들고 온 것이다. 환매 시차를 6개월로 잡은 건 나다. ‘6개월이면 대우 사태의 가닥이 잡힌다. 그때는 환매에 따른 부담도 줄어든다’. 그렇게 생각했다.



 더 들을 시간이 없다. 나는 엄낙용을 내쫓듯 보냈다. 그리고 바로 대책을 발표했다. 저녁 8시.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증권·투신사에 항의가 빗발쳤다. “당장 써야 할 돈을 왜 절반만 준다는 거냐”“언제 내 펀드에 대우채를 이만큼이나 넣었냐” 등. 하지만 환매 사태는 빠르게 진정됐다. 8월 한 달 21조원이 빠져나갔던 투신시장 환매 규모는 9월 14조원대로, 10월엔 10조원대로 크게 줄었다. 한때 ‘11월 대란설’이 투신 시장에 떠돌기도 했다. 원금 80%를 보장해 주는 90일 환매 시점이 11월이란 점 때문이다. 하지만 90일이 돌아온 11월에도, 180일이 돌아온 이듬해 2월에도 대량 환매 사태는 없었다. 시장이 회복되자 투자자들의 불안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뇌관이었던 부실 대우채는 11월 말 금감위가 내놓은 고수익 고위험 ‘하이일드 펀드’에 섞여 소리소문 없이 처리됐다. 이를 만든 강병호는 이것으로 공적자금이 20조원 이상 절약됐다고 추산했다.



 나를 ‘관치금융의 화신’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일련의 금융정책 이후 붙은 딱지다.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뜻일 것이다. 오해다. 나도 ‘웬만하면 시장에 맡기자’는 주의다. 다만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관이 나서야 한다. 나서야 할 문제라면 늦어선 안 된다. 숭례문 화재를 보라. 문화재가 깨질까 머뭇거리다 전체를 태웠다. 바로 지붕을 깨부수고 물을 뿌렸다면 전소(全燒)만은 막았을 것이다. 위기상황도 비슷하다. 한발 앞서 개입하면 비용이 적게 든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를 ‘적극적 시장주의자’라고 부른다.



만난 사람=이정재 경제부장

정리=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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