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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동백꽃 빨갛게 타오를 때면 청산도 봄동 파랗게 물이 오르죠

올해는 봄꽃들이 언제 꽃을 피워야 할지 헷갈렸을 듯하다. 겨우내 날씨 변덕이 유난히 심했기 때문이다.



남도의 봄 전령사로 유명한 전남 순천 금둔사의 홍매화며, 완도 삼두리 해안의 동백꽃은 이미 지난 1월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 입춘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는 한파에 주춤했던 남도의 꽃들은 추위가 지나간 지난달 말 두 번째 개화기를 맞았다. 상황봉까지 이어진 완도수목원에는 아직 남아있는 잔설을 뚫고 복수초와 풍년화가 꽃잎을 피웠다. 눈 따위에 지지 않겠다는 듯, 꼿꼿한 기백이 올해도 어김없이 봄을 연 것이다. 완도 옆의 작은 섬 청산도는 지난해 가을 씨를 뿌린 작물들이 꽃보다 먼저 봄소식을 알렸다. 앙증맞은 청보리, 마늘 싹과 수확기를 맞은 봄동이 논밭마다 푸르름을 한껏 채웠다. 남도에 날아온 봄기운을 따뜻한 고봉밥처럼 푸짐하게 담았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올해는 봄동이 풍년이었다. 그런데도 봄동의 몸값은 뛰었다. 겨우내 한파 탓에 시금치 작황이 나빠지면서 봄동을 찾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산도 아낙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늙은 아들도 노모를 따라 넉넉하게 미소를 지었다.


# 완도, 설중화로 물들다



“꽃 마중 가실랍니까?”



완도수목원 오찬진(47) 박사가 넌지시 물었다. 지난달 21일 꽃구경은 틀렸다 싶었다. 상황봉에 위치한 완도수목원 일대가 눈보라로 휩싸인 날이었다.



 오 박사는 상황봉 정상 가까이에 복수초가 피었을 것이라고 했다. 산중턱부터 도로를 벗어나 수풀을 헤치며 20여 분 올랐을까. 동백나무·후박나무 등의 상록 활엽수가 빽빽했다. 국내 최대 난대림지란다.



 뭔가 밟은 듯해 ‘아차’ 하며 발을 들어올렸다. 복수초였다. 하얀 눈밭에 샛노란 복수초 20~30송이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낸 설중화(雪中花)의 기백이 느껴졌다. “예쁘지요잉? 복수초는 다년생 풀인디, 첫 꽃을 틔우기까지는 6년이 걸리지요. 근디 사람들이 뿌리까지 자꾸 파가서 큰일이에요잉.” 꽃과 나무를 벗해온 오 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1 햇살처럼 환하게 꽃핀 복수초. 복수초는 복과 장수의 상징이라 일본에서는 새해 복을 비는 선물로도 주고받는다. 2 ‘완도 팔경’으로 꼽히는 동백꽃. 탐스럽게 피어난 꽃송이가 여인의 붉은 입술을 닮았다.
 계곡을 따라 하산하니 관목림에 핀 오렌지빛 풍년화가 발길을 붙잡았다. 대개 3월에 피는 풍년화는 꽃잎이 잘게 갈라져 있었다. 손톱만 한 꽃인데 향이 짙었다. 봄기운을 한껏 들이마셨다.



 완도수목원 인근 삼두리 해안에는 20㎢ 넘는 넓은 땅에 천연 동백림이 펼쳐져 있었다. 상황산 자락을 따라 동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산에서 자란 ‘산 동백’의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붉고 흰 꽃망울들이 아롱아롱 맺혀 있었다. 봄이 더 깊어져 동백이 절정에 이르면, 산이 온통 붉게 타오르는 것 같다고 한다. 동백이 ‘완도 팔경’임을 새삼 확인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용정보 완도수목원(061-552-1544)의 탐방로는 걷는 게 원칙이다. 모두 돌아보는 데 3시간가량 걸린다. 오전 9시~오후 6시.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완도 군외면 삼두리 천연 동백림은 완도 관광안내도에 ‘동백자연학습장’으로 표시돼 있다. 77번 국도를 따라 동백이 군락을 이룬다. 군외면사무소 061-550-6322.



# 물 오른 청산도 봄동



3 활짝 잎을 연 봄동. 봄꽃보다 싱그럽다. 4 청산도 양지리에 층층이 계단을 이룬 다랑논
청산도는 논밭부터 봄이 찾아든다. 유채밭에도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싹이 한 가득 움텄다. 해풍을 맞아 맛이 뛰어나다는 육쪽마늘과 청보리는 겨우내 키가 한 뼘 넘게 자랐다.



 청산도는 예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섬이지만 농작물이 풍족하다. 장보고(?~846)가 완도 청해진을 건설할 때 청산도를 식량 보급처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산지가 많은 섬 특성상 계단식으로 개간한 다랑논이 대부분이다. 또 청산도에서만 볼 수 있는 ‘구들장논’이 있다. 구들장논 전통은 이곳에서 3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구들장을 놓듯 돌을 탄탄하게 쌓고 표면에 흙을 50㎝가량 깔아 논을 만든 것이다. 다랑논처럼 계단식이다.



 양지리 김광신(68) 이장도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구들장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물기 흥건한 밭에서 얼어버린 배추를 보며 혀를 찼다. “얼갈이배추가 습기에 얼마나 약한데. 구들장논은 물 빠짐이 좋아 절대 저럴 일 없소잉.”



 얼갈이배추는 겨우내 논밭에 심는 배추다. 봄동은 밭이나 정원 등 노지에서 월동하는 배추를 말한다. 봄동은 잎을 활짝 열어젖힌 ‘개장형’인 데 반해 얼갈이배추는 잎을 약간 오므린 ‘반결구형’이란다. 봄동이고 얼갈이배추고 물을 통통하게 머금은 요즘이 맛의 절정기란다. 베어 물 때 ‘아삭’ 하는 식감이 더없이 상쾌하다.



 오래된 돌담으로 유명한 상서리에서 봄동 수확에 한창인 섬 아낙을 만났다.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왔소. 봄동이 얼면 부러지는디, 얼었더라고잉. 봄동 녹을 때까지 원시인처럼 모닥불 쬐며 기다렸당께~!” 아낙들이 와르르 해사한 웃음을 쏟아낸다.



 아낙 한 명이 봄동을 덥석 안겨줬다. “가져가서 된장 무쳐 먹으라고잉. 된장에 무친 봄동 맛이 얼마나 향그로운디. 그거이 봄 냄새랑께.”



●이용정보 청산도는 완도여객터미널(061-550-6000)에서 배를 타고 가면 45분 거리다. 섬 전체에 조성된 ‘슬로길’이 11코스, 100리(42.195㎞)에 달한다. 모두 걸으려면 1박2일 이상 걸린다. 전체 코스를 순환하는 버스도 운행한다. 슬로길에 집착하지 말고 산길이나 논·밭두렁을 헤매보는 것도 묘미다. 청산도 슬로시티 사무실 061-554-6969.



# 두 번 핀 순천 홍매



5 종이처럼 수줍게 말린 풍년화 꽃잎.
“홍매요? 지난 1월 초에 한 차례 피었다가 졌지요. 지금 피는 건 올해 두 번째입니다.”



 전남 순천 금둔사 지허 스님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금둔사에는 여섯 그루의 납매(臘梅)가 붉은 꽃을 틔웠다. 지허 스님이 순천 낙안읍성 조씨댁에서 받아 1980~83년 금둔사에 뿌린 씨앗이 다 커서 거둔 결실이다.



 납매의 ‘납’은 섣달(음력 12월)을 뜻하는 ‘납월(臘月)’에서 따왔다. 말하자면 납매는 1월 즈음에 절정을 이루면서 피는 매화다. 납매는 재래종 매화다. 꽃이 가지마다 만개하는 개량종 매화와 달리, 듬성듬성 핀다. 하지만 나무의 수명과 꽃향기로 따지면 개량종보다 한 수 위다. 특히 납매는 엄동설한을 이기고 피는 꽃답게 향이 진하고 여운이 길다. 아쉽게도 납매는 귀하다. “아마 금둔사 납매가 유일할 것”이라는 게 스님의 주장이다.



 금둔사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순천시 매곡동 박종구(77)씨 댁에도 홍매가 고개를 내밀었다. 작고한 박씨의 아버지가 17~18년 전 심은 것이다. 박씨는 “오랫동안 다듬지 않고 보기만 해서 외형은 보잘것없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지난해 12월 처음 핀 설중매는 얼어서 바스라져 버렸다고 한다. 설 이후 다시 피기 시작해 지금은 7m가 넘는 매화나무의 아래쪽 2m 높이까지 홍매가 만발했다. 봄을 맞은 매화나무는 꽃분홍치마를 새로 두른 것 같았다.



●이용정보 금둔사(061-755-3809) 납매는 언제든지 구경해도 좋다. 하지만 스님이 기거하는 사찰이니 정숙은 필수다. 순천시 매곡동은 순천동천이 흐르고 이따금 기차가 지나가는 호젓한 동네다. 혹여 꽃 마중을 가더라도 주민에게 폐가 안 되도록 주의해야 한다. 매곡동주민센터 061-749-3615.





짭쪼름한 봄 바다의 맛 … 해초가 듬뿍 전복회덮밥



전남 완도는 전복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전복 생산량의 81%가 완도 일대에서 난다. 청정 다도해에서 자란 완도 전복은 맛도 좋다. 양질의 전복이 풍부한 만큼 완도에는 전복 조리법도 다양하다.



 그중 한 가지가 전복회덮밥이다. 갖은 채소류에 탱글탱글한 전복 하나를 통째로 썰어 담아낸다. 여기에 초고추장·참기름을 기호에 따라 뿌리고 밥과 함께 비비면 완성된다. 여기까지는 뭍의 회덮밥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완도에서는 채소보다 해초류를 넉넉히 쓴다는 게 다른 점이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는 이맘때면 어촌 아낙들은 바다로 나가 손수 해초류를 채취해온다. 특히 톳은 지금 한창 물이 오를 때다. 뭍의 아낙이 봄철 푸성귀를 뜯어 나물을 무치듯, 어촌 아낙은 해초로 봄의 식탁을 한결 싱그럽게 만든다. 전복회덮밥에서 왠지 모르게 봄 바다의 맛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완도항 부둣가 횟집들은 대부분 전복회덮밥을 판다. 전복과 함께 성게와 멍게를 넉넉히 담아내는 ‘아시나요’(061-554-3049)가 가장 유명하다. 전복회덮밥(사진) 1만원. ‘바닷가횟집’(061-555-5170)은 다도해를 한눈에 내다보며 전복회덮밥(1만5000원)을 맛볼 수 있다. 완도 읍내에 위치한 ‘전·사·마’(061-555-0838)는 전복해초비빔밥(1만5000원) 외에도 전복을 돼지불고기와 함께 익혀 먹는 전복불고기(1인 1만3000원)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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