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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본 적 없는 시청각장애 남편 "청혼은…"





이 부부 ‘손의 대화’엔 거짓말이 없다
하늘을 나는 ‘우주 판타지’ 소설 쓰는 게 꿈







































그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시청각 중복 장애인이 됐다. 촉각만으로 세상을 느낀다. 그의 아내는 키가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인 1m20㎝다. 세 살 때 허리를 다쳐 척추장애인이 됐다. 남편이 달팽이처럼 느리게나마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눈과 귀가 돼준 아내 덕분이다.



 조영찬(41)씨와 김순호(49)씨 부부 얘기다. 그들은 점자를 손등 쪽 손가락 위에 찍는 점화(點話)로 대화를 한다. 아내가 강의실에서 점화로 강의 내용을 전달해준 덕분에 남편은 지난달 나사렛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이달 같은 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최종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이들 부부의 사연은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이승준 감독)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말 암스테르담 국제다큐 영화제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대상을 받았고,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형광등 갈아 끼우는 것조차 커다란 도전인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이 감독은 “동정의 시선으로 찍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촬영 허가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천안에서 올라온 이들을 만났다. 인터뷰는 달팽이만큼 느리게 진행됐다. 질문을 아내 김씨가 점화로 전달하면 조씨가 육성으로 답했다. 그는 시각을 잃은 뒤 서서히 청각을 잃었기 때문에 말은 할 수 있다.



 -소설가는 시각·청각적 체험이 필요하지 않나.



 “보고 들어야 뭔가 묘사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좌절한 적도 있다. 30대 중반 점자단말기를 받은 뒤 빛이 보였다. 책을 맘껏 읽을 수 있었다.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현실이 답답하기에 질주하고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 머릿속에서 늘 상상의 나래를 편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를 쓰고 싶다.”



 영화에는 조씨의 자작 시가 자주 등장한다. ‘태어나서 한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그가 존재를 의심한 적 없다고 한 별은 자신의 꿈과 희망이다.



-손끝으로 느끼는 세계는 어떤가.



 “촉각은 제한적이지만 가식이 통하지 않는다. 손으로는 가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손을 잡으면 마음이 느껴진다. 촉각으로는 섣불리 전체를 판단할 수 없기에 항상 겸손해진다.”



 그는 한번 악수한 사람의 손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주 나무를 껴안는다. 그는 나무가 자신과 같은 시청각 장애인 같다고 했다. 소통하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기에 늘 남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는 존재 말이다.



 -손끝으로 만져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무, 꽃, 빗방울 등 자연을 만질 때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건 아내의 손가락이다. 아내의 손끝에선 꽃향기와 별빛이 느껴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내의 얼굴을 본 적 없는데.



 “아내는 맑고 순수한 소녀 같다. 1998년 신앙공동체에서 처음 만났다. 사귈 때 연애편지 써달라고 하길래 결혼한 뒤 내 삶으로 연애편지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게 프러포즈였다.”



 아내는 식사할 때 점화로 남편에게 밥과 반찬의 위치를 알려준다. 설거지는 늘 함께한다. 키가 작은 아내는 받침대를 딛고 설거지를 한다.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하는, 빠듯한 살림에서 가장 큰 사치는 돼지불고기다. 고기 요리를 할 때는 동료 장애인을 불러 파티도 연다.



 -부부싸움할 때도 있나.



 “싸움 자체가 안 된다. 손을 잡으면 화가 남들보다 빨리 풀린다.”



 아내 김씨는 살짝 눈을 흘기며 “화나면 점화를 할 때 손톱을 세워 콕콕 찌른다”고 했다.



 -장애를 비관한 적이 많았을 텐데.



 “처음엔 그랬다. 신앙을 가지면서 마음이 치유됐고, 아내를 만나면서 세상이 밝아졌다. 장애가 없었다면 천사 같은 아내와 특별한 사랑을 못 했을 거다. 장애가 선물처럼 느껴진다.”



 조씨의 또 다른 자작시 한 편. ‘사람의 눈, 귀, 가슴은 최면 또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 늙어간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



 -어떤 의미인가.



 “사람들은 돈, 화려함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진실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눈과 귀를 혹사하지 말고, 가끔은 나처럼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고 듣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가장 큰 소원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과 교회를 세우고 싶다. 그리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만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내와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조씨에게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열 번 태어나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그림자가 어딜 가겠어요”라며 수줍어했다. 아내는 그 말은 점화로 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느낌으로 아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점화(點話)=시청각 장애인의 손등 쪽 손가락 위에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하는 방식. 조영찬씨는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 대회에서 만난 일본인 교수로부터 이를 배운 뒤 아내와 동료 장애인들에게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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