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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준 최강희, 기쁨 준 이동국

이동국이 축구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우뚝 섰다. 최강희 감독은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던 이동국을 전북으로 영입해 재기하도록 도왔다. 이동국이 지난달 29일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두 손을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시스]


최강희(53) 감독과 이동국(33·전북 현대). 두 사람은 축구 대표팀의 두 축이다. 최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로 했을 때부터 이동국의 중용은 예견됐다. 최 감독은 취임 전부터 이동국을 “현재 국내 최고의 공격수”라고 평가했다. 이동국도 “오랫동안 최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두 남자 사이의 애틋함.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을 맡고 있던 최 감독은 2009년 이동국을 영입했다. 당시 이동국은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하고 돌아와 성남에서 교체멤버로 뛰며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전북 서포터들이 들고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드디어 봉동 이장님(최 감독의 별명)이 미쳤다”는 소리도 나왔다. 최 감독은 “그렇게 안티가 많은 선수는 처음 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최 감독은 신념대로 이동국을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였고, 다독였다. 이동국의 살아 있는 눈빛을 봤기 때문이다. “부활하겠다는 의지와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최 감독은 “당시 동국이는 쌍둥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나도 결혼하고 애 낳고 나서 책임감을 갖게 되면서 스물아홉에 뒤늦게 대표팀에 뽑혔다. 동국이에게 쌍둥이 아빠인 만큼 두 배로 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며 웃었다.



 입단 첫해 이동국은 동계훈련에서 일본 J-2(J-리그 하부리그)팀·대학팀과 9경기를 하는 동안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최 감독은 “당시 나는 동국이에게 골의 ‘ㄱ’자도 꺼내지 않았다. 능력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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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감독의 기다림과 신뢰는 변화를 가져왔다. 시즌이 시작되자 이동국은 펄펄 날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해 득점상(20골)을 받았고,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으며 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16골·15도움을 기록한 이동국은 생애 두 번째 MVP로 뽑히며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이동국은 K-리그에서 최고의 공격수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대표팀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다.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을 이끄는 동안 2경기에서 60분간 나선 것이 전부였다. 조 전 감독은 “이동국은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최 감독은 “이동국에게 실력을 보여줄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제자에 대한 여전한 믿음을 표현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거두어준 최 감독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을까. 이동국은 이제 대표팀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지난달 26일 최 감독의 A매치 데뷔전이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2골을 넣으며 4-2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운명의 한 판 승부였던 29일 쿠웨이트와 경기에서 후반 20분 결승골을 터뜨렸다. 천근만근의 무게로 최 감독의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을 털어준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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