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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재벌 횡포 막을 자, 재벌뿐이다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내 전직이 회계사다. 기름값 원가계산을 해보겠다.” 지난해 2월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한 말이다. 기름값에 거품이 끼어있는지 파헤쳐 보겠다는 의미다. 속내는 올라가는 기름값을 힘으로 내려 누르겠다는 거다.



 시동은 이명박 대통령이 걸었다. “기름값이 묘하다”면서 ‘국민여론’을 들먹였다. 전형적인 정치논리다. 이런 식으로 강압해봐야 효과가 없다는 경제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물가 단속을 지시하고 정부 부처가 호들갑을 떨어도 물가 잡는 데 실패했던 1970년대의 역사도 먹히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름값이 그랬다. 정유사들은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씩 할인한다고 발표했지만 효력은 불과 몇 달이었다.



 엊그제 대통령의 말은 1년 전과 판이했다. “기름값을 일시적으로 깎아봐야 조금 지나면 다시 똑같아진다”고 했다. “일시적으로 얼마 깎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정책이며 효과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본은 왜 기름값이 괜찮은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정부가 물가관리를 과학적으로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라”고도 했다. 과거를 반성한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그런 뉘앙스로 들렸다.



 일본 기름값이 안정적인 건 정유사의 팔을 비틀었기 때문이 아니다. 환율 때문도 있겠지만 핵심은 경쟁이다. 기름 생산과 유통 구조가 우리와 판이하다. 우리는 정유사가 4개지만 일본은 8개다. 메이저 정유사인 엑손모빌도 들어와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값이 싼 셀프주유소와 독립주유소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 이런 걸 배우라는 얘기라면, 대통령의 말은 백번 옳다. 1년 전에 그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국민여론이라는 정치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경쟁이 핵심인 경제논리에 따랐더라면 하는 아쉬움 말이다.



 경쟁의 위력은 대단하다. 자동차산업이 단적인 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일 기아차가 현대차에 인수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현대와 기아, 대우자동차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때만 해도 소비자는 좋았다. 무이자 할부 판매 등 혜택이 많았다. 하지만 현대가 기아를 인수해 독점업체가 되면서 정반대가 됐다. 판촉 경쟁이 사라지면서 무이자 할부 판매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애프터서비스와 리콜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커졌다.



 현대차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시장점유율이 80%나 되는데 경쟁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현대차를 탓할 순 없다. 잘못은 이런 기업결합을 허용해준 김대중(DJ) 정부에 있다. 기름값도 마찬가지다. 정유사 숫자를 늘려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도 시원찮은 판에 오히려 정유사 간 인수합병을 허용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SK의 인천정유 인수 얘기다. 정유사의 독과점은 심화됐다. DJ와 노무현, 둘 다 재벌개혁을 앞세웠던 정부들이다. 그런 정부가 정반대로 재벌들에 엄청난 특혜를 준 거다. 그 폐해는 온 국민이 덮어쓰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은 치열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좋은 제품을 값싸게 쓸 수 있다. 기업 경쟁력이 높아져 나라 경제도 좋아진다. 정부가 담합을 엄벌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인수합병을 허용하지 않고, 진입장벽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다. 독과점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다. 어느 업체든 자유롭게 진입해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양분하던 항공시장에 2005년 애경그룹의 제주항공 진입을 허용한 걸 잘했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후 국내선 항공운임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재벌의 수는 많아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재벌과 맞서 싸울 자는 재벌뿐이라서다. 기존 재벌이 버티고 있는 시장에 다른 재벌이 들어와 ‘별들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못 들어오게 막으면 이미 진입해 있는 기존 재벌만 좋을 뿐이다. 이만한 특혜도 없다.



 이번에 철퇴 맞은 ‘재벌 빵집’을 마냥 비난할 수만 없는 건 그래서다. 빵집을 진작 하고 있는 뚜레쥬르의 CJ와 파리바게뜨의 SPC만 득을 본다. 정치권에서 남발하고 있는 재벌 규제를 위험하다고 보는 이유다. 재벌 숫자를 늘리는, 그럼으로써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보다 앞서는 건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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