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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한 밥집도, 흘러간 강물도 그에게는 시다

논산 백반집     - 문태준



신작집 『먼 곳』 펴낸 문태준



논산 백반집 여주인이 졸고 있었습니다



불룩한 배 위에 팔을 모은 채



고개를 천천히, 한없이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왼팔을 긁고 있었습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이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나붓나붓하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값을 쳐 술잔 옆에 놔두고



숨소리가 쌔근대는 논산 백반집을 떠나왔습니다



문태준은 묻혀있던 우리말을 발굴해 고운 시어로 둔갑시키는 데 능통하다. 그러나 그는 요즘 확장에 관심이 많다. “한국 서정시의 폭을 넓히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태준 시인이 헤벌쭉 웃고 있었습니다. 마흔둘 시인의 웃음이 하도 해맑아서, 덩달아 웃음이 번졌습니다. 인터뷰용 사진을 찍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배우 유해진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자주 듣는 얘기”라며 시인은 끔뻑끔뻑 잘도 웃습니다. 시인의 웃음이 ‘나붓나붓’ 날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는 고작 이런 묘사에 그치는데, 시인이라면 달랐을 겁니다. 그의 시적 감수성은 극도로 예민해서, 어떤 장면을 고스란히 빨아들여 시로 뱉어내곤 합니다. 그가 4년 만에 펴낸 『먼 곳』(창비)은 그런 시적 순간으로 충만한 시집이지요.



 괜히 그를 ‘한국 서정시의 적자(嫡子)’라고 부를까요. 시인은 지금껏 미당문학상 등 여섯 개의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서정은 도처에 있고, 도저한 순간에 서정의 노래가 와르르 쏟아집니다. 이를테면 ‘논산 백반집’에서 졸고 있는 저 여주인처럼. <시 참조>



 시인은 논산 백반집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입니다. 여주인은 손님이 있건 말건 잠을 청합니다. 시인은 여주인의 축 늘어진 고개에서 수양버들 가지를 떠올렸지요. 저 늘어진 모습에 여주인의 고된 생애가 담겨있으리라. 시인은 괜히 뭉클해져 가만히 술값만 치르고 가게를 나섭니다. 범박한 일상에서도 시인의 서정은 늘 작동해서, 끝내 근사한 시 한 토막 쏟아냅니다.



 “어떤 장면이 시가 되어 전면적으로 몰려올 때가 있어요. 말이나 단어, 장면 등이 어느 순간에 빛이 터지듯 환해지는…. 악흥(樂興)의 순간이랄까, 그럴 때 시가 태어나는 거죠.”



 『먼 곳』의 정서는 실은 즐거움보다는 쓸쓸함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악흥이란, 시인의 것이 아니라 시의 것일 테지요. 말하자면 즐겁고 흥겨운 것은 시인의 정서가 아니라, 시의 언어적 기운입니다. 시가 지닌 언어의 악흥으로 비극적 삶을 뚫고 가는 것. 그게 문태준 시의 전략이지요. 시인은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속화(俗化)를 더디도록 하는 게 시일 겁니다. 삶이란 대개 비극적이지만, 인간의 선심이랄까 고유한 진심을 그나마 보존해주는 것이 시가 아닐까요.”



 시인의 고유한 진심이란, 비극처럼 되풀이되는 인간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 테지요.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란 시에 그 진심이 잘 스며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생(一生)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누가 있을까, 강을 따라갔다 돌아서지 않은 이/강을 따라갔다 돌아오지 않은 이/…’



 시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삶이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듯 모든 걸 내던지고 떠나게 마련이라는 것. 사뭇 복잡한 인간사라는 게 실은 저 단순한 이치인 것이지요.



 “인간의 생애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듯 허망한 반복이에요. 일견 비극적이더라도 그런 형편을 긍정하면,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고맙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제 서정의 영토를 확장시킬 모양입니다. 이 시집에는 말을 아름답게 조각하는 대신, 말을 감춰버려 서정의 공백을 넓힌 시들이 눈에 띄지요. 시인은 “말을 최소화함으로써 시적 대상에 가까워지는 시작(詩作)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거니와, 이런 시에서 그 흔적을 봅니다.



 ‘관을 들어 그를 산속으로 옮긴 후 돌아와 집에 가만히 있었다/또 하나의 객지(客地)가 저문다/…/”(‘망인(亡人)’)



 시인은 객지란 말에 저승과 이승을 중첩시켰습니다. 죽은 자에겐 저승이 객지이고, 산 자에겐 이승이 객지일 테니까. 이런 축약의 언어가 문태준의 서정시가 바라보는 ‘먼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태준의 서정은 이번에도 지독했습니다. 그의 시는 서정의 폭약으로 펑펑 터집니다. ‘늙은 어머니가/마루에 서서/밥 먹자’(‘어떤 부름’) 부르듯, 다정한 시어로 우리를 부릅니다. 이 다정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에 박수를 아낄 생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영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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