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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도쿄 ‘미소녀 천국’서 만난 40대 오타쿠 아저씨 그를 떠받치는 건 책방과 존중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본 도쿄에서 며칠을 보냈다. 금요일 저녁 이케부쿠로 지구에 갔다. 아키하바라와 함께 일본 만화 팬들의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소녀 취향물이 많아 손님 대부분이 10·20대 여성이었다. 물건들을 훑어보는데 웬 40대 남성이 눈에 띄었다. 퇴근길인 듯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쇼핑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정 스타일을 찾는지 미소녀 만화책과 캐릭터 상품들을 꼼꼼히 살폈다. 서울에서라면 딸에게 줄 선물이라도 사나 하겠지만 여기선 아니다. ‘모에(萌え)’에 빠진 오타쿠일 가능성이 컸다.

 오타쿠는 잘 알려진 대로 특정 분야나 취미에 심하게 빠져 열중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에는 그 한 경향인데, ‘싹트다·타오르다’라는 단어 뜻처럼 ‘애호하는 뭔가를 볼 때 가슴에 솟는 흐뭇한 감정’을 의미한단다. 예를 들어 ‘안경소녀 모에’라면 안경 낀 소녀 캐릭터에 빠진 것이다. 온갖 분야를 샅샅이 뒤져 그런 캐릭터를 찾는다. 안경 착용의 각종 공식을 찾아내고 공유하며, 관련 상품을 사 모은다. 철도·편의점·기업 같은 무생물을 캐릭터화해 ‘모에’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변태들 아냐?”

 우리나라에서 일본 하위 문화는 종종 ‘변태’로 취급받는다. 성적 개방성과 더불어, 더없이 세분화된 장르마다 집요함으로 완성된 극단적 하드코어 콘텐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온갖 기괴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만화·책·영화가 끊임없이 제작된다. 대중문화의 영역만도 아니다. 수십 년간 고흐의 그림 배경만 찾아다닌 부부, 딱정벌레 수집에 미친 교사, 열쇠 매니어, 종이비행기 매니어, 고문 도구 매니어…. 이들의 자양분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출판 문화다. 이번 여행 중 찾은 진보초의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에서 그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150여 개 책방이 성업 중이었다. 유럽 고가구 색인부터 에도 시대 무사들의 사망진단서 모음집까지. “도서관에 없어도 간다엔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물론 이런 매니악한 취향은 일본에서도 소수 문화다. 그러나 누구도 타인의 ‘작은 우주’를 섣불리 침범하지 않는다. 덕분에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문화 장르와 탄탄한 서브 시장을 갖추게 됐다. 미국과 더불어 지구촌 대중문화의 양대 젖줄이 됐다.

 그런 취향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누군가가 이구아나를, 구체관절인형을, 문신이나 피어싱을 좋아한다면 그 자체로 이상한 눈길을 보낸다. 와인이 붐이면 거기로, 또 사케가 인기라면 그쪽으로 우~ 하고 몰려간다. 내면에서 우러난 게 아닌 백화점에서 구매한 취향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득 될 게 없는 일이다. 개인은 물론 기업마저 자기만의 내러티브 없이는 독창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나만의 취향을 적극 계발할 뿐 아니라 타인의 취향을 한껏 관용해야 하는 이유다.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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