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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7) 대한생명 <1> 불발된 외자 유치

대한생명 부실의 전모가 드러난 것은 1999년 3월이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특별검사 결과 대생의 순자산 부족분이 2조9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한다. 사진은 2월 1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가운데). [중앙포토]

돌아보면 외자(外資)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외환위기로 무너진 한국은 외자에 목을 매었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외자가 되레 기업 발목을 잡기도 했다. 대한생명에 투자한다던 미국 보험사 메트라이프의 10억 달러도 그랬다. 역시 처음엔 축복처럼 보였다. 조흥은행에 들어온다던 1억 달러며, 대우자동차에 투자한다던 GM의 70억 달러, 코메르츠의 2억5000만 달러처럼 말이다. 최순영 대한생명 회장이 자랑스럽게 이 소식을 전한 건 1998년 5월이었다.

 “메트라이프가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달에 DJ가 미국을 가는데…’.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해외 방문엔 부록처럼 그 나라 관련 투자·유치 발표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급조된 프로젝트는 자주 말썽을 일으킨다. 그때 메트라이프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다.

 “축하합니다. 빨리 잘되면 좋겠네요. 마침 대통령이 다음달에 미국엘 가시니.”

 최 회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큰 선물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안도했을 것이다. 당시 그는 큰 구설에 시달렸다. 회사 임원 한 명과 폭로전이 벌어져 “거액의 회사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가 금융감독위원장실을 찾은 데는 외자유치 건 외에 다른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해명과 양해.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관여할 사안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외 자금 도피가 사실이면 검찰이 수사할 문제다. 감독이라면 보험감독원이 잘하고 있으려니 했다. 솔직히 그땐 보험사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은행 처리에도 바빴다. 보험사는 장기 상품이 중심이다. 1~2년 새 자금이 빠져 휘청거릴 일이 거의 없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험시장은 나중에 보겠다’는 게 내 전략이었다. 금감위원장을 맡으며 증권감독원·은행감독원장은 겸임했지만 보험감독원은 이정보 원장에게 따로 맡겨놓고 있었다.

 이후 나는 한동안 대한생명을 잊는다. 위기의 냄새를 맡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98년 5월 보험감독원의 경영 실적 평가에서 대한생명은 최우수등급을 받았다. 보험감독원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평가였다. 보감원 인력을 끌어다 은행 구조조정에 투입할 때였다. 은행 경영평가처럼 회계법인을 투입해주지도 못했다. 보험시장은 그만큼 뒷전이었다. 내 책임이다.

 간혹 신경 쓰이는 일이라면 메트라이프와의 협상이 신속히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최 회장을 둘러싼 잡음이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었다는 점 정도였다. 여름 이후 외자 유치는 최 회장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검찰은 7월 “최순영 회장의 자금 도피 의혹에 대한 수사는 외자 유치가 마무리될 때까지 유보하겠다”고 공식 발표한다. 외자 유치를 방해했다는 비난을 듣기 싫었던 것이다. 그만큼 외자가 만능일 때였다. 그러던 9월, 추석을 앞두고 최 회장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메트라이프 건은 조만간 마무리됩니다. 걱정마십시오.”

 조바심이 나서였을까.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와 “걱정 말라”고 말한 것은. 검찰은 수사망을 조이고 있다. 메트라이프와의 투자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외부에선 몰라도 자신은 눈덩이 같은 부실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대생의 부실 경보를 처음 접한 건 98년 12월 초. 여름에 이미 대생 실사를 마친 메트라이프 측이 구두로 이런 제안을 해왔다. “대한생명은 순자산을 3조원 정도 까먹었다. 우리가 10억 달러를 투자하면 정부가 5000억원 정도는 손실 보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99년 1월 14일. 메트라이프 테렌스 레넌 부사장은 나를 공식적으로 찾아와 황당한 ‘통보’를 했다. “정부가 순자산 부족액을 메워준다는 조건으로 지난해 연말 대생과 출자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실사 결과 대생의 순자산은 마이너스 3조40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3조원이 넘는 돈을 대생에 쏟아부으란 얘기다. 자기네들은 1조원 남짓을 투자하면서 말이다. 고려할 가치도 없다. “구조조정 없이는 공적자금도 없다”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약을 들먹일 필요도 없었다. “미국 정부라면 그런 요구를 받아줄 것 같은가.” 옆에 있던 김기홍 부원장보가 언성을 높였다.

 “손실 보전 없인 손을 떼겠다.” 메트라이프는 강하게 나왔다. ‘도대체 부실이 어느 정도이길래…’. 상대의 부실을 부풀리는 건 협상의 기본이다. 하지만 부풀리기도 정도가 있다. 우량 보험사라면 그렇게 심한 평가는 못할 것이었다. 김기홍에게 “대생 특별검사를 당장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사전 준비를 거쳐 2월 18일로 예정했던 특별검사는 11일 최 회장이 자금 도피 혐의로 구속되면서 일주일 앞당겨졌다. 검사에 들어간 지 열흘쯤 됐나. 김기홍이 중간 검사 결과를 보고한다며 내 방을 찾았다. 보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생은 다 썩었습니다.”


등장인물
▶김기홍(55)


미국 조지아대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외환위기 당시 국내 몇 안 되는 보험전문가 중 한 사람. 나는 99년 1월 갓 마흔의 충북대 교수이던 그를 금융감독원 보험 담당 부원장보로 파격 발탁한다. 이후 KB국민은행 수석부행장을 거쳐 현재 사모펀드인 파인트리파트너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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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