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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영화로 되살아난 ‘건축계 공익요원’ 정기용

권근영
문화부문 기자
#1. 열 평(33㎡)이 좀 넘을까. 서울 강북의 다가구 주택 거실에 앉아 건축가가 말했다.

 “월세가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머지는 평범해. 아니, 경관이 좋아. 어쩌면 호화스럽기도 하고.”

경관 좋다는 밖에서는 트럭 행상의 확성기 소리만 들렸다. 건축가 정기용(1945∼2011·사진)이 세 들어 살던 집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 3월 8일 개봉)의 한 장면이다.

 “내가 산책하는 곳, 내가 집에 들어올 때 걸어가는 골목, 이 모든 것이 나의 집이다. 집을 이렇게 확장해 생각해야 한다”며 ‘나의 집은 백 만평’이라는 글을 남겼던 그다. 건축을 윤리로 실천한 그의 면모는 죽음을 앞두고 찍은 이번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2. 둥근 창으로 석양이 머물렀다. 뛰노는 아이들 그림자가 스쳤다. 아이들은 양말 벗고 배 깔고 엎드려 책에 빠져들었다.

‘떠들지 마시오’‘음식물을 먹지 마시오’ 등 하지 말라는 글귀로 가득한 통제된 곳이 아니었다. 그 도서관은 배려의 공간, 일상을 바꾸는 공간, 미래를 생각하는 공간이었다. 정기용은 2003년부터 5년간 순천·진해·제주·서귀포·정읍·김해 등 전국 6개 소도시에 ‘기적의 도서관’을 지었다.

 그는 또한 1996년부터 12년간 전북 무주군에서 면사무소·공설운동장·납골당·버스정류장 등 30여 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후배·동료 건축가들은 그를 ‘건축계 공익요원’으로 평가한다. “건축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화두를 갖고 온몸으로 사회적 실천을 한 사람”(건축가 승효상), “건축을 통해 삶을 조금 낫게 만들고자 한 사람”(건축비평가 이종건) 등등.

 #3. 2005년 대장암이 발견됐다.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007년 암이 간으로, 폐로 전이됐다. 치료 부작용으로 성대결절이 왔다. 마이크를 통한 쇳소리로만 말할 수 있게 됐다. 복수(腹水)가 차, 허리에 그걸 빼는 장치를 차고 다니며 찍은 이 영화에서 그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투병 중 책 6권을 정리했고, 영화를 찍었고, 단일 건축전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도 준비했다. 2010년 11월부터 석 달간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감응: 풍토, 풍경과의 대화’전에는 1만여 관객이 들러갔다. "건축가들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건축으로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이다”라던 그다.

 그 월셋집에서 그는 또 말했다. “죽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산다는 게 뭔지, 왜 사는지, 세상이 뭔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건축은 뭔지, 도시는 뭔지 하는 근원적 문제를 곱씹으면서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겠다.”

 다음 달 11일이면 그가 이 땅을 떠난 지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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