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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 황현산, 젊은 비평으로 읽히는 까닭

황현산 교수는 복잡한 문학 이론으로 비평하지 않는다. 그는 “시를 설명하는 방법은 시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는 ‘번역(飜譯)’ 예술이다. 일상의 말을 뒤집어(飜), 시의 말로 풀이하는(譯) 게 시인의 일이다. 고려대 황현산 명예교수(불문학·67)가 번역가이면서 문학평론가인 것은, 그래서 그 무슨 운명인 것 같다.

 그는 먼저 이름난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였다. 한국어로 번역된 적잖은 프랑스 시에 ‘역자 황현산’이란 명찰이 달려있다. 그런 다음 평론이 뒤따랐다. 그의 이름이 문학평론가 명부에 오른 게 1990년, 마흔다섯 때다. 또래 비평가에 비해 늦었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던 건 “번역 작업을 통해 언어 감각을 세심하게 길렀기” 때문이리라.

 그의 시 비평은 젊은 감각과 매끈한 문장으로 한국 문단의 독특한 지점을 차지해왔다. 그는 비교적 치열하게 비평문을 제출했으나, 책을 엮는 데는 인색한 편이었다. 그리고 2012년 2월, 기다리던 그의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이 나왔다. 첫 비평집 『말과 시간의 깊이』(2002) 이후 10년 만이다.

 -비평집이 왜 이토록 늦었나.

 “내가 쓴 글을 다시 읽기 싫어하는 편이다. 내 글의 약점이 자꾸 거슬려서 책을 엮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미흡하나마 한국 시에 대한 고민의 흔적으로 읽어달라.”

 그가 겸언(謙言)을 늘어놓았으나, 『잘 표현된 불행』은 21세기 한국 시단을 조망하는 ‘잘 표현된’ 비평서다. 824쪽이라는 만만찮은 분량을 이리저리 쪼개어 시의 존재론과 시인론, 현장 비평 등을 두루 실었다. 특히 ‘시적 상태’라는 언어의 문학적 찰나를 번역과 평론의 관점에서 폭넓게 파고들었다.

 -번역과 평론의 관계는.

 “현장 비평이 번역가로서의 작업에 생기가 돌게 한다. 또 외국시를 번역하는 것이 비평의 젊은 감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김혜순·최정례·김경환 시인처럼 외국시에 조예가 깊은 시인들이 남다른 시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서, ‘젊은 감각’이란 말에 밑줄 쫙. 일흔을 바라보는 노(老)비평가는 실제 또래 비평가들 가운데 가장 젊은 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또래 문인부터 갓 등단한 문인까지 “옹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시인이라면 가리지 않고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책의 3부에는 고은·이성복·이문재 등 중진은 물론, 최근 한국 시의 첨단에 있는 황병승·김이듬·송승환 등 ‘미래파’ 시인에 대한 정교한 해설이 실렸다.

 이를테면 그의 비평은 한국 시의 전체 스펙트럼을 끌어안는다. 중진 시인들의 내실을 보살피고, 젊은 시인들의 전복을 옹호한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평가로 평가받는다.

 “시를 번역하다 보면 언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된다. 내 세대의 감성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잘 표현된 불행』은 70편의 각기 다른 비평문을 묶었다. 황 교수는 “시적인 상태가 형성되는 지점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다는 데서 책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시는 “말 저편에 있는 말을 지금 이 시간의 말 속으로 끌어당기는 계기”다. 이를테면 일상 언어의 경계를 허물 때 시적 상태가 시작된다. 시는, 그러므로, 어떤 경계의 예술이다. 함민복 시인이 노래했듯,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황현산은 한국 시의 경계에 핀, 비평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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