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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페덱스 리포트’ 대학 땐 C학점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여전히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귀 끝을 스치는 칼바람을 마주하며 ‘오늘처럼 추운 날, 따뜻한 목도리가 아닌 부채를 선물로 받는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봤다. 중국 고전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고사가 있다. 말 그대로 여름 화로, 겨울 부채라는 뜻이다.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이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비유할 때 회자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깊은 뜻이 있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 해도 젖은 것을 말릴 수 있고, 겨울의 부채라 해도 그것으로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용지물이 유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어딘가 방치돼 먼지 속에 쌓아 두고 있는 물건이 있다면 사실 쓸 데를 못 찾은 까닭이요,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탓이다. 천하에 백해무익하다고 생각되는 모기의 유충은 수중곤충이나 물고기들의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같은 사물을 보되 쓰임새 있는 물건으로, 혹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 모두가 생각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사물 자체의 본질이나 가치와는 별개로 보는 사람의 사고가 이를 규정짓는 것이다. 보는 사람의 시선이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면 유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용하다. ‘개똥도 약에 쓴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쓰임에 따라서는 요긴하게 쓰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千里馬)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늘 있지 않다’. 중국의 대표적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말이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명마(名馬)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그 명마를 알아보는 백락(말의 좋고 나쁨을 잘 감정하고 매매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는 뜻이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말도 백락을 만나지 못하고 필부의 부림을 받는다면 평생 소금수레만을 끌다가 삶을 마감하고 마는 것이다.

 사물의 가치를 식별할 수 있는 혜안(慧眼)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굳이 찾아 헤매지 않더라도 현대판 하로동선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여름 더위에 거위털 점퍼나 모피를 파는 의류업체, 난방으로 인한 전력사용량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한겨울에 에어컨 광고를 하는 모습이 그렇다.

 차별화된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프레드 스미스는 대학생 시절 ‘1일 배달 서비스’에 관한 리포트를 썼다. 지도교수는 “개념이 재미있고 리포트의 구성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아 C학점 이상을 줄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운송회사 ‘페덱스(FedEx)’를 설립했다. 천재는 알파벳을 가르치면 단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의 구조를 연구한다고 한다. 생각이 다른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사회 통념적 사고에서 일탈한 새로운 생각이 환영받기는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거절당하고 배척받기 십상이다. 한여름에 화로를 선물하는 이를 반기지 않고, 한겨울 부채 선물이 달갑지 않은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장자(莊子)』에 ‘하충불가이어어빙(夏蟲不可以語於氷)’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만 사는 벌레가 어찌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있으랴’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여름모기가 겨울을 나는 세상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여름에 부채 선물만을, 한겨울에 화로 선물만을 고집하면 변화는 없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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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