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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8인의 반역자들

정선구
산업부장
두 손에 보리 한 줌씩 쥐고서야 쌀가마니를 들 수는 없는 노릇. 큰 걸 얻으려면 한 줌밖에 안 되는 것쯤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의 욕심이 어디 그런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쌀밥과 소찬(素饌)에 족할 줄 모른다. 굳이 고기 반찬을 찾고, 여유가 있을라치면 삼합에 햇매생잇국 잘하는 남도 맛집 기행에도 나선다.

 하긴 이왕 세상에 나왔을 바엔 대박 한번 터뜨리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다. 그런데 이에는 순서가 있는 법.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게 먼저다. 이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불편한’ 말이지만, 엄연한 ‘진실’이다. 여기에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 최효종의 말을 보태자.

 “부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1년 365일 내내 숨만 쉬고 일만 하면 돼요~.”

 그러면 그냥 부자가 아니라 이건희·정몽구 회장 부럽지 않겠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보면 이 ‘불편한 진실’은 딱 들어맞는 얘기다. 최근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에게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그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종의 학교 모토랄까, 스탠퍼드에는 세 가지 학풍이 있습니다. 첫째 스터디(study), 둘째 워크(work), 셋째 겟 리치(get rich).”

 말 그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부자가 되라는 뜻인데…. 스탠퍼드를 중심으로 실리콘 밸리가 형성된 것을 보면 수긍이 간다. 한 예로 IQ 테스트를 만든 루이스 터먼의 아들 프레더릭 터먼 스탠퍼드대 교수는 휼렛패커드(HP)와 야후의 창업을 부추겼다. 평범한 스탠퍼드 학풍이 부의 상징 실리콘 밸리 거부들을 배출했으니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평범함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실리콘 밸리에는 ‘8인의 반역자들(traitorous eight)’이 있었다. 1957년 쇼클리반도체를 뛰쳐나와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설립한 8명을 말한다. 쇼클리반도체는 그 유명한 윌리엄 쇼클리가 세운 회사다. 그는 벨연구소에서 디지털시대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트랜지스터를 만든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성격이 매우 괴팍해 직원들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참다 못한 직원들이 역심(逆心)을 품고 사표를 쓰고 나왔는데, 이들은 훗날 쟁쟁한 사업가로 성장한다. 앤디 그로브와 함께 인텔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 평면형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집적회로 구현을 가능케 한 진 호어니, 벤처투자가로 명성을 날린 유진 클라이너 등등이다. 초창기 이들이 세운 페어차일드로부터는 60여 개의 벤처기업도 탄생한다. 인텔도 그중 하나다. 실리콘 밸리는 1938년 HP가 설립되면서 생겨났지만, 20여 년 뒤에 나온 8인의 배신자들이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이 품은 역심은 욱하는 마음에서 나오긴 했지만 과감한 도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현재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그랬다. 지난달 소프트뱅크코리아의 문규학 대표는 이런 문제를 냈다.

 “IBM·모토로라·라푸마·캐논·레고·20세기폭스·포르셰·텍사스인스트루먼트…. 자, 여기서 무언가 공통점을 발견하셨나요?”

 대단한 기업들이긴 한데, 정보기술(IT)·자동차·영화·장난감 회사들이 엉켜 있질 않은가. 무슨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한참 머뭇거리자 나온 문 대표의 답.

 “모두 대공황이 한창일 때 창업한 회사들입니다.”

 남들이 움츠러들 때, 남들이 낙심하고 있을 때, IT 기초를 세우고 아이 장난감을 만들고 영화산업에 뛰어들고 반도체 왕국을 꿈꾸고 자동차를 디자인한 것이다.

 이제 설날이 지났으니 진짜 흑룡의 해가 됐다. 용은 풍요로움과 권력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동물이다. 용에는 다섯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으뜸은 황룡이요, 황룡과 대적할 만한 용이 적룡과 흑룡이라고 한다. 특히 흑룡은 황룡에게 반역을 꾀하는 역신(逆臣)으로 알려져 있다. 감히 왕에게 반역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스탠퍼드 학풍대로 살아온 사람에겐 ‘반역’하기 딱 좋은 해다. 열심히 공부하고 1년 내내 숨만 쉬며 일해온 인재들에게 지금 필요한 게 바로 과감한 도전이다. 뭐든지 출발하게 하는 힘은 역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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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