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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여행, 길 위로 나서는 젊음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최근 홍해의 지류인 아카바만의 작은 항구마을에 머물고 있는 한 젊은이와 우연히 트위터를 주고받게 되었다.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서 무언가 힘이 느껴져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군복무를 하면서 유라시아 여행을 꿈꾸었던 그는 전역하자마자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반년 동안 발트해부터 지중해까지 곳곳을 다니다가 지금은 한 달째 이집트의 한 작은 마을에 머물면서 사진 찍기, 스케치하기, 책읽기, 다이빙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달을 이곳에 더 머무른 후 그는 네팔과 인도를 거치는 아시아 여행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누구든 한 번쯤 꿈꾸어 보았던 여행이 아닌가.

 20년 전 나도 혼자 80일 동안 배낭을 메고 유럽을 다녔다. 그땐 다시 못 올 것 같아 많이 보고 많이 찍기에 바빴다. 당시 나와 비교해 그의 여정은 넓고 깊고 여유가 있다. 그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건강하고 명랑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 1년간 길 위로 나섰다. 매일 만오천 보와 스케치 한 장.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보다 천천히 보고 가슴에 담기.” 젊음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이런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는 세상은 더 건강하고, 다양하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사실 학생들에게 해외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비를 모으기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휴학을 하기도 한다. 연휴와 방학에는 배낭을 멘 학생들로 공항은 북새통을 이룬다. 유럽 주요 도시의 기차역에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부모가 주는 돈으로 거리낌없이 값비싼 호텔에 묵는 대학생들도 많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여행은 두 다리에 의존해 길 위로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의 힘은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것뿐 아니라 일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떼어 멀리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데 있다.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찾는 것이다.

 여행을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돈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한 사회학자와 건축가의 대담을 엮은 책에서 새로운 현상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대학생들이 여행에 대한 욕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종종거리며 전 세계를 누비던 일본인들이, 게다가 젊은이들이 여행에 더 이상 흥미를 갖지 못한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

 와세다 대학교 학생들이 1년에 평균 세 차례 정도 여행을 하는데 도쿄 근교의 리조트, 테마파크나 바닷가로 놀러 가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몰고 할인점에 다녀온 것을 오랜만에 활동적으로 보냈다고 하는 학생도 있으니, 근교라도 나가는 것은 정말 큰 여행이라는 것이다. 단체 패키지여행은 간혹 하지만 혼자 배낭을 짊어지고 나서는 것은 힘들어 한다고 한다.

 대담을 한 사회학자의 해석이 흥미롭다. 과거에 젊은이들이 여행을 동경한 것은 일본 사회가 확고하고 안정된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여행률은 취업률과 비례한다고 한다.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행을 갈 수 없고,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한 사원은 불안감 때문에 감히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비슷하게 겪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본보다 심각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그럴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생들은 학점을 관리하고, 외국어도 배우고, 각종 자격증도 따야 하는 등 스펙 쌓기에 바쁘다. 고등학생들도 대학에 가기 위해 경시대회, 봉사활동, 체험활동과 같은 스펙 만들기에 쉴 틈이 없다. 심지어 여행도 기획상품처럼 이력서의 한 줄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 의지와 힘으로 먼 길을 나서는 젊은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미래에는 학력과 학벌보다는 판단력, 추진력, 그리고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미래를 위해 여행은 가장 좋은 투자다.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삶의 축소판이다. 누군가 짜준 삶을 살지 않으려면 내 힘으로 길 위로 나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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