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라마르크 용불용설의 ‘패자부활’

한의학에서는 인간을 소우주로 본다고 한다. 엉뚱하게도 나는 이 말을 한의학과는 동떨어진 분자생물학을 배우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이중나선이라 불리는 직경 20옹스트롬(Å·10-10m)의 아주 가늘고 긴 실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 몸은 보통 10조(1013) 개의 세포로 돼 있고 세포 하나의 직경은 종류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100마이크로m(mM·10-6m) 정도다. 하나의 세포에 존재하는 DNA를 모두 합한 총길이는 2m다. 따라서 우리 몸을 구성하는 DNA의 총길이는 2m에 전체 세포 수 1013을 곱한 20조m가 되고 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70번 정도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계산을 보면 어찌 우리 몸 안에 우주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떻게 2m나 되는 DNA가 직경 수 마이크로m에 불과한 세포 안의 핵이라는 구조 속에 엉키지 않고 존재하면서 유전 정보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느냐다. 세포 내에 조밀하게 DNA를 패킹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실제 세포의 핵 안에서 DNA는 엉키지 않게 히스톤이라는 구형 단백질을 감아 직경 10나노미터의 꿰어진 구슬이 계속 연결된 모양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DNA는 히스톤 구슬을 감은 형태로 유전자를 발현시키기도 하고 그 자체가 복제되기도 한다. 또 세포 분열을 위해 복제된 DNA를 더 굵은 직경의 실로 거듭 꼬아 두꺼운 타래를 만들기도 한다. 노끈을 자세히 보면 가는 실 여러 겹을 다시 꼬아 만들어진 것과 유사한 모양이다.

최근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어떻게 DNA가 핵 내에서 패킹되고 그 패킹 방법이 어떻게 외부 환경에 의해 변화되거나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패킹 방법에 따라 동일한 DNA와 그 안에 담긴 유전정보가 발현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분야를 후생유전학(epigenetics)이라 하는데, 풀어 보면 ‘유전학(genetics) 위(epi-)에 있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이는 ‘유전 정보인 DNA 염기서열의 돌연변이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기존 유전학을 넘어 ‘DNA 자체는 변하지 않으면서도 유전자의 발현과 그에 따른 개체의 성질 변화가 다음 세대까지 전해질 수 있는 변화’를 총칭한다. DNA 자체는 변하지 않으면서 그 발현을 조절할수 있는 방법은 그 세포 내에서 그 패킹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DNA 패킹 조절법은 DNA 염기서열 중 ▶시토신에 메틸기를 붙이는 것과 ▶히스톤 단백질에 아세틸기를 떼거나 붙이는 것이다. DNA의 시토신에 메틸기를 붙이거나 히스톤의 아세틸기를 떼어내면 DNA가 더 강하게 패킹돼 그 DNA 부분에 있는 유전자들이 발현되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이 패킹 정보들이 세포가 복제될 때 그대로 딸세포로 전해질 수 있는지, 또 보통은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패킹 정보들이 다 백지화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무엇이 어떻게 DNA 패킹을 조절하는 스위치 정보로 이용되는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현재 명확한 것은 세포 안팎의 환경 변화에 DNA 패킹이 예민하게 반응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일한 DNA 정보를 갖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가 다른 환경과 섭생에 따라 늙어서는 달라진 외모를 갖고 다른 질병에 걸리게 된다. 또 역사적으로 오래 계속된 기아가 자손들의 DNA 패킹을 통해 특정 유전자군의 발현과 건강상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이러한 후생유전학의 결과들은 우리가 DNA, 즉 타고난 본성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환경이 타고난 DNA의 발현을 변화시킨다는 것, 다시 말해 양육에 의해서도 조절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후생유전학이 역사적으로 계속 논란이 돼 온 인간에 대한 ‘본성과 양육’ 논쟁을 과학적으로 직접 연결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후생유전학이라는 용어는 1942년 영국의 에든버러대 교수였던 콘라드 웨딩턴(사진)이 ‘전능한 배아세포가 발생 과정에서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가졌으나 점차로 기능이 한정된 조직의 세포로 분화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그 개념은 ‘모든 유기체는 형태가 없는 것으로부터 특정 형태를 갖도록 만들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까지 소급해 갈 수 있다. 또 다윈에 가려 완전히 틀린 것으로 치부됐던 ‘획득한 형질이 유전될 수 있다’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성도 환경에 의해 획득한 형질이 DNA 패킹 조절로 나타난 형질이고 그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경우에는 맞는 가설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오늘 나의 삶의 방식이 내 DNA 패킹 방법을 통해 나뿐 아니라 내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후생유전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듯싶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