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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0조원 뿌려 제2 대공황 불씨 끈 ‘소방수’

현대사회에서 금융권력은 사실상 정치권력을 능가한다. 모든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돈은 시공을 초월한 위력을 지닌다. 그런데 돈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유대인이다. 독일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계는 세계 최초로 국제 금융망을 구축하고 아울러 유럽 주요국 통화권을 장악했다. 로스차일드의 미국 대리인이며 유대인인 파울 바르부르크는 록펠러가와 J P 모건가, 그리고 상원의원 넬슨 올드리치와 합작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인 1913년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 연준)를 발족시켰다. 미국과 유럽에선 약칭 FED로 부른다.

FRB는 미국의 입법·행정·사법부 다음 가는 제4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만큼 입법부·행정부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된 기구다. FRB는 명칭에 ‘연방’이 붙어 있어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럽 유대계 상업은행도 참여하는 다국적 민간 금융기관의 연합체다.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권하고 이자율을 조정하는 미국 중앙은행이 민간기구란 게 의아하게 느껴진다. 민간의 자율을 존중하는 전통에 따라 이런 제도가 정착된 것이란 설명이 따르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은 부분은 있다.

수능 거의 만점, 최고 엘리트 코스 밟아
초대 FRB 의장은 재무차관 출신의 유대인 찰스 해믈린이었다. FRB 태동의 막후 산파인 바르부르크는 이사를 거쳐 부의장 자리에 올랐다. 4년 중임 임기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14년 임기의 이사 7명은 상원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요식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이것은 의전적 절차일 뿐 인사 추천은 물론 정책의 입안과 집행 모두 FRB 내부에서 결정되며 행정부와는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는다. 연준은 발족 이래 현재 벤 버냉키(사진) 의장까지 모두 14명의 이사회 의장이 재임했다. 버냉키와 그의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을 포함한 역대 의장의 절반 정도가 유대인이다. 폴란드-독일계 유대인 그린스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임명돼 4명의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했다. 역대 이사진에도 유대계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버냉키는 1953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 오거스타에서 우크라이나계 정통파 유대인 가계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토라 강독을 비롯한 유대식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는 만점에 가까운 수능 성적을 받았고 미국 최고 엘리트 코스를 달렸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MIT에서 경제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원, 뉴욕대 그리고 프린스턴대 등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경제공황·디플레이션 전문가인 그는 2002년 FRB 이사로 영입됐다. 2006년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직에 위촉된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FRB 의장에 임명됐고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연임됐다.

취임 후 1년 반이 지난 2007년 말 버냉키는 초대형 금융위기를 맞았다. 비우량 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야기된 초유의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아프간·이라크전 등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인공적 경기부양 목적의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 야기된 위기다. 버냉키는 이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버냉키의 잘못이라기보다 9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안고 있던 각종 병폐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전임자 그린스펀의 유산이기도 하다. 또한 민간에 대한 간섭을 극도로 자제한 방임적 신자유주의의 실패 사례다. 이 사태의 해결책으로 미국 정부와 FRB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2조8000억 달러(약 310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파산 위기의 대형 투자은행을 상업은행으로 전환시키는 편법도 썼다. 부실 투자은행과 보험사의 뒤처리를 위해 막대한 구제금융이 투입됐다. 모기지 회사 지분의 80%가 국유화됐다.

버냉키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월가’는 그가 최소한 ‘제2의 대공황’을 예방한 공로가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버냉키는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전임 그린스펀과는 달리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린스펀이 선문답 같은 애매한 간접화법으로 간혹 시장에 혼란을 야기시킨 것과는 달리 버냉키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소통을 선호했다. 그리고 원칙과 합의를 존중했다. 다만 지나치게 신중한 자세는 의사결정에 실기를 초래한다는 비판도 따랐다.

부시가 임명하고 오바마가 연임시켜
버냉키는 지난달 25~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RB 산하 기구로 우리 금융통화위원회와 유사한 기능 수행)가 끝난 뒤 향후 경제운용에 관한 전망을 내놓았다. 인플레 억제와 고용 증대는 단기간 내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론을 피력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기대되는 2013년 하반기까지는 현재의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버냉키는 현 상황에선 획기적 처방이 없음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2011년 FRB가 추진한 일명 ‘트위스트 오퍼레이션’(단기채권 매각과 장기채권 매입으로 자금 유입과 투자증대 유도)도 별 효험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트위스트 작전’은 FRB를 극도로 불신했던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단 한 차례 써먹은 후 용도폐기된 변칙성 조치다. 경제공황 문제의 대권위자로 알려진 버냉키도 결국 공황과 유사한 현 미국 경제의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결정적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론적으론 위기에 강하지만 정작 위기엔 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는 세인의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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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