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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예외 없이 불신의 악순환...개도국 문제에 선진국형 권위 붕괴 겹쳐

‘한국 사회 대논쟁’ 참석자들이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웅(서울대)·장수찬(목원대)·원숙연(이화여대)·정용덕(서울대) 교수· 최상연 정치 에디터·조대엽 고려대 교수. 토론은 15일 중앙일보사에서 이뤄졌다. 최정동 기자
정용덕(서울대) 교수=정부 불신이 우리만의 문제인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지난 25년간 ‘정부가 너무 불신 받고 있다’는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올해로 민주주의 이행 25주년을 맞은 우리야말로 정부 불신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의 신뢰나 불신이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고, 국정 운영이나 국가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내외 트렌드는 어떤 것인지를 논의해보자.

최상연 정치에디터=상식적으론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고, 민주화가 진행되면 정부 신뢰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질수록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정부 기관 중에서도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청와대와 국회가 꼴찌에서 1, 2위를 다툰다. 치열한 선거를 거쳐 직접 선출한 정부를 국민은 왜 그토록 불신하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것일까. 한국 정부가 ‘저 신뢰사회의 악순환’에서 탈출할 방법은 뭘까란 문제도 따져봤으면 좋겠다.

(왼쪽)이준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언론학 박사. 서울대사회과학대학 기획부학장. 한국방송학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했다.39말과 권력39등의 저서가 있다.(오른쪽)장수찬 미국 미시간주립대 정치학 박사. 아태정치학회 회장·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39한국NGO와 정부39등의 저서가 있다.
장수찬(목원대) 교수=정부 신뢰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아도 굉장히 낮다는 거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조사한 바론 우리가 아시아 15개국 중에서 가장 낮다. 대략 4~4.8% 수준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민주화된 국가들이 대체로 낮다. 일본·대만·홍콩이 10~20%대로 하위 그룹이다. 그중에서 한국은 위험할 정도로 낮다. 다른 하나는 정부 지지율의 휘발성이 강하고, 하락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신뢰도 하락이 정체된다. 시민사회의 참여와 개입이 확대되면서 정치 효능감이 생겨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악순환 구조 속에 있다.

원숙연(이화여대) 교수=중국 추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에델만 트러스트 조사에선 중국 정부의 신뢰도가 1등인데 75%였다.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전통적으로 정부 신뢰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이 70% 정도인데 그보다 높다. 같은 조사에서 일본은 낮고, 미국도 하락 중이다. 중국이 미·일보다 민주적인 나라는 아니다. 왜 그럴까. 중국의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선 정부에 대한 기대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돼 그 부분이 충족되면 신뢰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가 진행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떻게 되고 있지’라거나 ‘내 목소리는 어떻게 내야 하지’란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민주주의는 정부 신뢰란 측면만 놓고 보면 ‘무덤’인 셈이다.

(왼쪽)원숙연 영국 노팅엄대 행정학박사. 한국조직학회 부회장. ‘신뢰의 개념적 다차원성과 영향 요인의 차별성’ 등의 논문이 있다.(오른쪽)조대엽 고려대 사회학 박사.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장. 한국 정치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39한국의 사회운동과 NGO등의 저서가 있다.
이준웅(서울대) 교수=견해가 다르다. 민주화와 정부 신뢰는 데이터로 확인된 게 없다. 민주화된 북유럽이나 유럽 여러 나라의 정부 신뢰가 높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하기 나름이다. 중국 정부의 신뢰도가 높다는 건 나눠 먹을 게 많은 성장기 사회에서 정부가 계속 베풀 게 많아서다. 중국은 급속한 성장기에 있고 정부가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당연히 신뢰를 받는다. 하지만 성장이 끝나 제로섬 게임이 시작되면 정부가 얼마나 공정하게 자원을 배분하고 법 질서를 집행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서유럽 주요 국가들은 그런 걸 잘 처리해 신뢰를 얻었다. 우리 사회는 성장이 끝났지만 정부가 자원의 배분 문제 등에서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고 합리적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편을 들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나라다. 불신이 불가피하다.

조대엽(고려대) 교수=정부 신뢰는 민주화란 문제보다 복합적 요인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니 더 큰 사회 변동의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국내적·세계적으로 역사 국면의 전환이 있었다. 냉전과 국가주의 패러다임이 탈냉전과 시장주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정부만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화된 권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영향보다 더 큰 사회변동의 흐름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용덕=유형화가 가능하겠단 생각이 든다. 한국·중국과 같은 발전도상국가형 스타일은 경제성장의 속도로 나눌 수 있겠다. 선진국은 정치 문화의 차이가 있다. 미국은 원래 국가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출발했다. 그러나 유럽은 국가의 조정 역할에 기대감이 있지 않나.

이준웅=동의한다. 영·미의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국가는 최소한의 간섭에 머문다. 사회 구성원의 편을 들지 않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는다. 하지만 유럽의 조합주의적 접근은 사회 구성원이 국가에 참여하고 국가는 공정하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는다.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이뤘지만 국가 역할을 비합리적이고, 연고주의적으로 보는 요소가 강하다. 국가가 자꾸 편을 드는 게 문제다.

원숙연=경제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경제환원론은 경계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기 전 일본은 굉장한 호황이었는데 정부 신뢰는 낮았다. 지금 러시아도 호황이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다. 경제 외에 국민의 기대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북유럽은 조합주의적 성격에 따라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정책 결정이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떨어지는 방식이 아니다. 국민이 스스로 참여해 목소리를 낸다. 공동체 기반이 살아 있는 셈이다. 제도적으론 과정의 공정성이 유지된다. 우리나라는 과거엔 국가의 가부장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알고 싶어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는데 정부가 못 따라가고 있다.

장수찬=정부가 불신을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근대성의 문제다. 근대화의 핵심은 중앙 집권화된 국민 국가가 법적 질서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공정성과 공평성이 나온다. 근대성 문제가 해결된 북유럽은 법적 지배를 거쳐 평등으로 확고하게 갔다. 하지만 이탈리아처럼 근대화를 거치지 않고 탈근대화된 경우는 아직도 법적 지배의 문제가 남아 있고 정부의 신뢰도가 낮다. 우리가 그런 경우다. 법의 지배라는 근대성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사회 엘리트의 부패는 아직 줄어들지 않았다. 부패가 여전하니까 정보가 확산될수록, 참여가 확산될수록 불신이 확대되는 악순환의 구조에 있다. 게다가 한국은 지금 고속성장을 끝내고 탈근대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이해가 다양화됐는데 국가가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다.

조대엽=정부 불신을 얘기할 때 단순하게 참여란 포괄적 개념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욕구와 불만의 표출 형태가 다양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란 지배의 수단이다. 유사 이래 불만 없는 정부는 없었다. 불만과 욕구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느냐의 문제가 중요한데 90년대에서 2000년 초까지는 그런 욕구가 조직화된 시민단체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그 이후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네트워크가 확장돼 기존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방식이 시작됐다. 정부가 모두 포괄할 수 없다.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수밖에 없다.

정용덕=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책이 나왔는데 미국의 정부 불신은 언론 탓이란 게 결론이다. 정부 성과는 웬만했는데 언론의 비판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의 문제도 있다. 정부가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다. 과연 우리 대통령과 행정 관료의 국정 운영 능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일까. 신뢰를 잃었다는 점을 그런 능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측면에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조대엽=특정 정권과 정부에 대해 신뢰나 불신을 말하는 건 대체로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돼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국민의 삶은 내리막길이다. 서민의 아픈 부분과 관련해 정책적 선택이 이뤄져야 했는데 엉뚱하게 4대 강 개발 등으로 갔다. 리더십의 문제가 굉장히 크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생긴 불신의 문제는 대부분 정치적 능력의 미숙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 출범 후 6~7개월 동안 정부와 시민사회의 갈등을 숫자로 따져봤다. 이념과 정책, 행위 수준으로 나눴는데 행위, 그것도 소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갈등의 대부분 원인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소통을 너무 훼손한 측면이 있다.

장수찬=정부 신뢰란 게 4개 정도의 카테고리와 연동된다. 정치·경제·사회·절차적 성과다. 노무현 정부가 잘못한 건 경제 성과다. 그래서 신뢰가 하락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치와 절차적 성과가 잘못됐다. 정치적 성과라는 건 시민 자유 보호와 민주주의 가치 질서의 문제다. 절차적 성과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공정하고 공개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통 방식도 개발하는 등 적극적이어야 했는데 두 부분에 문제가 있다.

이준웅=행정부는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제도다. 국가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공동체가 접하고 있는 위기를 국민에게 설명해주고, 왜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납득시켜 줘야 한다. 이게 중요한 기능이다. 한때 우리나라 공공조직 가운데 신뢰도가 높았던 게 시민단체다. 국가가 수행하지 못한 설명을 대신 수행하니까 그런 거다. 시민사회가 나서서 어디가 잘못됐고, 예산 책임은 누구 문제고, 이런 것들을 대신 설명해줬다. 최소한 납득할 수 있으니까 신뢰가 올라간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설명 책임을 일부 대신한 것이다. 서로 다른 이념이나 화해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정부가 일일이 나서 조정할 순 없다. 다만 이념과 생각, 태도가 다른 상대방에게 정부로서 공정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거나 공평한 법 적용이 이뤄진다는 점을 끊임없이 설득했어야 하는데 현 정부는 부족했다.

원숙연=정부 신뢰와 관련해선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정부가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5개국 국민이 답한 게 있다. 첫째는 국민 요구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느냐, 둘째는 투명하고 개방적이냐, 셋째는 자주 그리고 정직하게 소통하느냐는 것이다. 소통이란 게 잘 설명하는 것보다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소통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국민과의 대화 이벤트를 만드는 것을 실패했다는 게 아니다. 설명을 잘하는 게 과학적 논리로 설명하는 게 아니다. 감정적 의무가 먼저다. 과학적 논리는 그 다음이다.

최상연=소통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아예 서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 측면도 있지 않나. 이미 자기들의 노선을 정해 놓고 이쪽저쪽을 갈라놓는 측면은 없을까. 미국 사회 역시 지난 25~30년 사이에 신뢰가 계속 낮아졌다. 같은 기간 미국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양극화됐다. 우리 사회에도 내 프레임 속에서 저쪽 프레임의 얘기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장수찬=미국 정치에서 성공적인 정부는 1932년 루스벨트 당선 이후 케네디, 존슨까지 뉴딜 동맹이 자리 잡았을 때다. 80년 레이건이 당선되고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을 때도 그랬다. 그것은 뉴딜 동맹에 대한 반성이다. 정부에 대한 ‘승인’이 두 경우에 가장 높았다. 구조적으로 보면 정치 동맹이다. 다른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입장을 가진 그룹들이 선거 연합을 통해 통치 연합을 만들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지역주의 투표가 강해 선거 연합이란 게 지역적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통치로 들어가면 사회·경제적인 정책 연합으로 가야 한다. 이게 불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선거 연합과 통치 연합의 거리가 너무 크다. 우리 시민들의 삶의 토대나 지형은 굉장히 계층적으로 분화돼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화는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준웅=미국에선 이데올로기 양극화가 불신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념 분화는 최근 일이다. 지난 15~20년간의 일이다. 그 전엔 이익 동맹이었지 이념적으로 좌우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오며 이념 분화가 생겼다. 좌파나 우파란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 게 최근 일이다. 그런 걸 만들어내는 데 언론이 기여했다. 그 전엔 정치 연합은 있었지만 좌파나 우파라고 부르진 않았다.

조대엽=정부를 비롯한 종교기관·언론·법조계 등 제도화된 권위에 대한 해체 현상, 그리고 제도화된 권위 일반에 대한 불신 풍조, 이런 것들이 확산되는 게 문제다. 언론에 대한 불만도 공정하냐 불공정하냐는 것보다 자신들의 삶의 아픈 내용을 반영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 불신을 극복하는 것은 패러다임 전환밖에 없다. 거대 제도들이 운영되는 방식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1%가 99%의 삶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정부가 봐 줘야 하는데 그걸 반영하려면 지금 우리가 사는 패러다임으론 안 된다. 그게 안 되면 시위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원숙연=신뢰는 인지적인 과정이다.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이념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이란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대기업 프렌들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대기업 쪽에서 모두 동의하는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언론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사람과 사람의 직접 관계라면 신뢰는 접촉을 통해 일어난다. 하지만 정부는 접촉이 안 되는 존재다. 언론이란 매개체가 필요하다. 매개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표피적으로 하는 게 된다.

최상연=일반적으로 공공조직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국가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신뢰를 잃게 되면 갈등이 증폭되고 통치 비용이 증가해 정부 성과는 더 낮아지고, 정부 불신은 확대된다. 정부가 갖는 공공성 맥락에서도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는데 어떤 해결책이 있나.

이준웅=불신이 깊어 큰 문제라고 말했는데, 좋은 기회인 측면도 있다. 신뢰는 희망이란 개념과 비슷하다. 어렵지 않으면 희망이 있을 수 없다.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열망이 있어야 희망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신뢰도 마찬가지다. 불신이 있다는 건 뭔가를 굉장히 말하고 있는 거다. 무관심이 아닌 것이다. 불신을 보이는 것 자체는 청신호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불신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는 어쨌든 힘이 세고, 국가는 누구도 감시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이 끊임없이 의심을 제기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 정부가 제기된 의심에 대해 체계적으로 응답하면 신뢰가 쌓일 수 있다. 오히려 언론이 충분한 역할을 못했을 경우 끊임없는 불신의 재생산이 일어난다.

조대엽=정부란 삶의 요소 가운데 공공성의 수준이 가장 높은 영역이다. 공공적이란 건 사적인 걸 넘어선다는 것이다. 편들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게 중요하다. 공공성의 다른 내용은 모두에게 알린다는 거다. 개방과 소통이다. 대체로 90년대를 기점으로 지구적인 수준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 정부도 그런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운영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가주의이거나 국가지향적, 제도지향적 정치 패러다임으로부터 시민의 삶을 지향하는 패러다임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정부란 제도에 비해 시민적 요구가 팽창돼 있어 정부가 끌어안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원숙연=정부가 신뢰를 회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빨리 바꿔야 한다. 이해집단 간 갈등은 앞으로 계속 심화될 거다. 시민사회가 그것을 자기조정을 하면 좋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중재자는 필요하다. 이해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 요건이 신뢰다. 그래서 법의 권위를 세우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논리보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유연함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 전환이 없다면 정부는 근본적인 저항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

장수찬=불신이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견해엔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불신은 지금보다 더 내려가면 위험하다. 지금의 신뢰 지수는 정부가 정당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내려갔다. 기본적으론 민주주의가 확장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 단기간에 정부 신뢰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자면 역시 법의 지배다. 검찰·법원·경찰·국세청·금감원 같은 엘리트 집단이 제대로만 돌아가도 우리 사회의 불신 수준을 단기간에 떨어뜨릴 수 있다.

정용덕=논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의 정부 불신은 두 가지가 겹쳐 나온다. 근대화 문제가 첫째다.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발전도상국가의 문제다. 거기에 한 발을 걸치면서 탈근대화적 문제가 겹쳐 있다.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권위붕괴 현상과 동일하게 기존 제도에 대한 전반적 불신이 있다. 문제는 현재 수준의 불신이 계속되면 정부의 정당성 자체가 의심받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설득을 통해 신뢰를 확보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지고 법에 의한 지배가 가능해야 한다. 법 집행을 담당하는 정부와 관료, 엘리트부터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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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