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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불사" 위기서 상대 자존심 살려주고 핵전쟁 막은 케네디

쿠바 미사일 위기 40주년인 2002년 10월 아서 슐레진저 박사(오른쪽) 등 존 F 케네디 정부에서 일했던 각료들이 쿠바 아바나의 ‘라 카바나 미사일 위기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1960년대와 유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옛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해 위기를 일으킨 것과 같다.” 2007년 10월,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까지 미사일방어(MD)체제에 넣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위기를 기억하는가? 쿠바 미사일위기는 전 세계를 핵전쟁과 제3차 세계대전의 문턱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케네디와 그의 각료들은 위기관리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9년 새해, 쿠바에서는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한 반란이 성공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90마일(145㎞) 떨어진 곳에 공산정권의 교두보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흐루쇼프는 62년 9월 ‘소련·쿠바 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한 뒤 극비리에 60여 척의 선박을 동원하여 42기의 중거리 미사일과 42대의 장거리 폭격기, 162기의 핵탄두, 5000여 명의 군인·기술자들을 쿠바로 이동시켰다. 10월 14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 서부지역에서 거의 완성단계에 있는 미사일 기지를 촬영했다. 이틀이 지난 10월 16일 국가안전보장회의 비상대책위원회(ExComm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논의된 방안은 세 가지였다. 공중폭격, 육상침공, 그리고 해상봉쇄였다. 직접적인 무력수단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매파와 해상봉쇄를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비둘기파가 팽팽히 대립했다.

케네디 ‘베를린 가설’에 빠져 일부 오판
10월 22일 월요일 저녁 7시, 케네디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차분한 어조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작은 사진) “지난주, 쿠바에서 핵공격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에 있는 확실한 증거를 포착했습니다…미국은 쿠바에서의 미사일 기지 건설을 서반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며, 소련이 미국에 공격을 가할 경우 미국은 소련에 대해 전면전도 불사할 것입니다….” 그러고선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케네디의 표현은 ‘봉쇄’를 의미하는 blockade 대신 ‘격리’라는 뜻의 quarantine이었다)

또한 14일 이내에 쿠바에 설치된 미사일을 철수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소련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흐루쇼프는 소련의 핵미사일 부대에 비상경계령을 내렸고, 쿠바로 향하고 있던 선박들에 멈추지 말고 계속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크렘린 최고간부회의를 소집해선 “이것은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실제적인 해상봉쇄는 10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이때 20척의 소련 선박이 정선명령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미 해군은 봉쇄선을 지나려는 소련 선박에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고 통보할 참이었다. 케네디와 그의 각료들이 백악관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며 마른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 절박한 순간에 해군 정보국에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쿠바로 향하던 20척의 선박들이 공해상에서 멈추거나 회항했다”는 내용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올 때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는 “잠시 동안이나마 세상은 멈춰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쿠바에 건설 중인 미사일 기지가 그대로 있었다. 해상봉쇄로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백악관에서는 다시 강경론에 힘이 실리면서 무력으로 쿠바를 공격하자는 주장이 거세졌다. 10월 26일 케네디는 흐루쇼프로부터 한 통의 서신을 받았다.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수하겠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두 번째 서신이 도착했다. “우리는 터키의 미국 미사일 기지도 철수할 것을 원한다.”
이때 쿠바를 정찰하던 미국의 U-2기가 격추돼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 소령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비행기를 격추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크렘린의 지시가 무시된 것이다. 소련에서도 군 통수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강경파에 의해 쿠바에 대한 공중폭격이나 상륙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틀 후인 월요일을 D데이로 정해 대통령의 명령만 기다리는 상태였다.

보복하고 확전할 것인가? 하지만 케네디는 냉정하고 신중했다. 그리고 소련의 타협안 중 첫 번째 안을 받아들인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곧 소련의 대답이 날아왔다. “우리는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겠다.” 1962년 10월 28일이었다, 전 세계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흐루쇼프의 답신을 받은 케네디는 방송에서 위기의 종식을 알렸다. 전문가들은 만약 당시 핵전쟁이 벌어졌다면 6분 내에 2500km 반경의 미국 본토가 초토화되었으며, 미·소 양국에서 1억 명, 유럽에서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위기 처리과정에서 주목할 두 가지 교훈을 보자. 첫째, 최종 결정권자는 고정관념에 빠져서 그릇된 판단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케네디는 인지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베를린 가설(假說)’ 혹은 ‘베를린 프레임(frame)’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만의 가설이나 틀에 빠지면 벗어나기 어렵다. 똑똑할수록, 합리적일수록 이런 틀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케네디는 “베를린은 서구의 고환이다. 서구 국가들을 비명 지르게 하고 싶으면 나는 베를린을 쥐어짠다”고 외쳤던 흐루쇼프의 말에 주목했다. 베를린에서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쿠바 사태를 일으켰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흐루쇼프는 쿠바와 베를린의 사안을 별개로 생각했으며 사태 기간 중 단 한 번도 베를린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케네디는 마지막 회의에서까지 베를린 프레임을 버리지 못했다고 하니 한번 각인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둘째,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서로에게 겁을 먹고 있었다. 훗날 재클린 케네디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케네디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침실에서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카스트로 역시 흐루쇼프를 ‘겁쟁이’라고 몰아붙였다. 결국 겁쟁이가 조금 덜한 겁쟁이에게 진 셈이다. 겁 없이 덤빈다고 해서 용기가 아니다. 오히려 겁은 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아랫사람 궁지로 몰면 위태로움 닥쳐
손자병법 군쟁(軍爭) 제7편에 보면 여러 경우에서 가장 현명하게 적을 다루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적이 높은 곳에 있으면 위를 향하여 싸우지 말아야 한다(高陵勿向). 언덕을 뒤에 두고 있으면 거슬러 오르면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背丘勿逆). 거짓으로 달아나면 좇지 말아야 한다(佯北勿從). 사기가 왕성한 적은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銳卒勿攻). 병사를 미끼로 유인해서 싸우고자 해도 싸우지 말아야 한다(餌兵勿食). 손자의 이런 말들은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무턱대고 적을 향해 공격할 것이 아니라 처한 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대처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바로 뒤에 쿠바 미사일위기와 직접 관련되는 아주 중요한 어귀가 나온다. 돌아가려는 적은 막지 말아야 한다(歸師勿<904F>). 적을 포위했을 때는 한쪽 구멍을 터주어야 한다(圍師遺闕). 적이 궁지에 몰려 있으면 너무 모질게 다루지 말아야 한다(窮寇勿迫). 한 마디로 쫓기는 사람을 너무 궁지로 몰아넣지 말라는 말이다.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 사람을 너무 몰아세우면 어떤 돌출행동으로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흐루쇼프는 그 전해에 유엔 석상에서 신발을 벗어 단상을 내리치는 등 돌출행동을 보였던 사람이 아닌가. 케네디는 마지막까지 흐루쇼프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한 후에 미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흐루쇼프에게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굴욕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 흐루쇼프가 미국으로부터 커다란 양보를 쟁취했다고 자만하고 싶어 하거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둡시다. 그것은 패자의 특권입니다.” 결국 케네디는 흐루쇼프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상생(相生)의 길을 돌파구로 찾았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사람을 너무 몰지 말라고 하는 궁구물박(窮寇勿迫)은 궁구물추(窮寇勿追)와 같이 사용된다. 또 다른 말로 조궁즉탁(鳥窮則啄)이 있다. ‘새가 쫓겨 막다른 곳에 이르면 도리어 상대방에게 대들어 쫀다’는 말이다. 순자에 나오는 이 말에는 울림이 있다.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노나라 정공(定公)을 모시고 있을 때였다. 정공이 그의 마부 동야필(東野畢)의 말 부리는 솜씨를 칭찬했는데 안연이 수긍은 하면서도 동야필이 앞으로 말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정공은 몹시 언짢았는데 안연이 물러가자 주위 사람에게 '군자는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더니 이제 보니 군자도 남을 비방하는군'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동야필이 말을 잃어버렸다. 정공이 안연을 불러서 어떻게 미리 알았는지 묻자 안연은 이렇게 대답했다.

“새가 궁지에 몰리면 쪼고, 짐승이 궁지에 몰리면 할퀴며,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거짓을 부리게 됩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아랫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서도 위태로움이 없었던 자는 없었습니다(鳥窮則啄 獸窮則攫 人窮則詐 自古及今 未有窮其下而能無危者也).” 토머스 홉즈는 “인간의 두려움은 결국 만인에 대한 무차별의 공격성으로 표출된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해소할 길이 없을 때 사람은 막다른 길에서 이성을 잃고 무차별 공격과 돌출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경고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어떤 경우든 사람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가지 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라. 위기일수록 진정한 용기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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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