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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모드로 빨리 바꿔라, 그래야 ‘마의 5년’ 넘어 30년 순항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삼성증권·중앙일보 공동 주최로 열린 ‘은퇴 투자의 비밀 토크쇼’에는 주말 영하 10도의 매서운 날씨에도900여 명이 참석해 열기를 뿜었다
우리나라 베이비붐(Baby boom) 세대를 상징하는 말 중에 ‘58년 개띠’가 있다. 전후(戰後) 개발독재와 고도성장, 치열한 생존경쟁을 헤쳐온 고난의 세대라는 1958년생의 자조가 담겨 있다. 보릿고개, 초등학교 콩나물 교실과 2부제 수업, 고교 평준화, 대학 본고사 폐지와 졸업정원제, 부동산·주식 투기 광풍, 자녀 조기유학 열풍과 기러기 아빠, 외환위기·금융위기와 정리해고 등등 사회의 틀과 관행을 송두리째 바꾸는 격변을 몇 년 주기로 체험했다.

베이비부머들은 또다시 거대 은퇴계층의 등장이라는 쓰나미에 직면해 불안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산업은행 김양재 팀장은 “은퇴 대란에 대한 경고가 나온 지 오래지만 은퇴를 지혜롭게 대비하는 장년층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퇴 준비나 인식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건 삼성증권이 이달 들어 만 40~59세 중산층 6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도 잘 드러난다. 평균자산 6억2000만원, 평균 금융자산 1억3700만원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들의 은퇴 대비나 마음가짐은 예상보다 취약했다.

‘58년 개띠’로 대표적 베이비붐 세대인 탤런트 조형기(오른쪽 사진 오른쪽)씨가 나와 방송인 조영구(왼쪽)씨의 사회로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한정 연구위원과 노후 문제를 토크쇼 형식으로 풀어갔다.
은퇴를 얼마나 의식하는가 하는 부분을 보면 40대까지 은퇴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50세가 되면서 갑자기 걱정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준비를 코앞에 닥쳐서 하다 보니 부실 창업·재취업이나 사금융·기획부동산 사기피해 등에 많이 휘말렸다. 돈도 경험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모작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것도 무모하다. 은퇴하고 나면 사회적 연줄도 많이 끊기고 주변에서 먼저 직장을 그만둔 ‘은퇴 선배’ 이외에는 변변한 코치가 없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준비되지 않은 은퇴, 정보 부족, 소득의 급격한 감소가 고령 가구의 상당수를 빈곤층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평했다.

설문조사를 좀 더 보면 은퇴자들의 재테크 의식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장상황이 급변했는데도 불구하고 10년 전에 머물러 있기 일쑤다. 여전히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부동산·예금·연금 순으로 기댄다고 답했다. 금리와 집값이 떨어지는 가운데 인플레가 장기화하고 기대수명은 100세를 향해 돌진하는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접어들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금리형 금융상품과 연금형 장기상품, 부동산 투자, 80세 사망 전제의 은퇴설계 등 기존의 은퇴 준비 교과서를 일거에 휴지로 만드는 엄청난 변화다. 우리나라의 은퇴시장은 멀리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예금금리가 연 10%를 훌쩍 넘던 시절에는 은행예금과 부동산이 주도했다.

은퇴를 앞두고 주택담보대출을 다 갚고 퇴직금·저축 등 여윳돈을 모아 은행에 넣어 놓고 매달 꼬박꼬박 이자 받아 생활하면 족했다. 그러다 자녀 출가 등 목돈이 들게 되면 아파트 팔아 평수를 줄이면 해결됐다. 외환위기 이후에 금리가 3분의 1 토막이 되는 저금리 기조가 되자 개인연금·종신보험이 부상했다. 부동산 시장은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와 부동산 불패 신화의 지속으로 여전히 호황을 이뤘다. 그러던 것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저금리·고물가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테크 환경은 펀드 등 수익형 금융상품으로 완연히 옮겨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자산구조를 보면 여전히 자산의 80% 이상은 부동산이다. 나머지 20%의 대부분인 금융자산도 예금·적금이나 보험 같은 안전자산이 대부분이다. 삼성증권 김진영 은퇴설계연구소장은 “정년이 집중된 55세 연령을 기준으로 그 전 5년간 소득 수준이 가장 높고 55세 이후 5년간 소득은 급감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지출은 확 줄이지 못해 생활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조사 결과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 금융회사 프라이빗뱅킹 점포에 상담을 의뢰한 내용을 보자. 재산가도 캐시플로(현금흐름)를 만들지 못하면 하루하루 생계가 불편할 수 있다. 대기업 임원을 하다 은퇴한 50대 후반의 박모씨는 총 자산이 45억원에 달하고 벤츠 승용차를 몰지만 근래 기름값 대기가 버겁다고 한다. 아파트·땅 등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수억원 정도를 은행 창구 권유로 10여 종 펀드에 나눠 들었지만 모두 큰 폭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해 쉽사리 깨지 못하고 있다. 수십억원 자산가도 은퇴 후 마음대로 돈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베이비부머의 평균 순자산은 3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산업은행이 이달 발표한 ‘고령화와 은퇴자산의 적정성’ 보고서는 2억9633만원,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은퇴백서는 3억1842만원으로 추정했다. 다른 수입원이 없다면 3억원으로 국민연금을 받는 60대 전반 연령까지 5~10여 년을 버텨야 한다. 여윳돈을 잘 굴리든지 재취업이나 창업을 해야 한다. 재취업과 자산운용을 동시에 하면 한 달에 150만~2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만들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90만7000원, 피델리티 은퇴백서(2012)상 베이비부머가 예측하는 은퇴 후 최소 생활비는 월평균 156만4000원, 적정생활비는 234만4000원이었다. 신동일 국민은행 서울 압구정 프라이빗뱅킹(PB) 팀장은 “은퇴 계층에는 공격적인 금융상품보다 안정형, 특히 즉시연금이 좋다”고 말했다. 즉시연금은 1억원당 36만여원을 매달 받는다. 3억원이면 월 110여만원이다. 여기에 월 100만원 받는 일자리를 구하면 월 200만원 내외를 마련할 수 있다.

창업 투자금은 가급적 여윳돈의 6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FC코리아 강병오 대표는 “50대 이상 퇴직자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려우니 ‘올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사무직 출신이라면 재고관리·회계 마인드가 필요한 제과점·커피전문점 ▶기술직이라면 손재주를 활용할 만한 실내환경 관리업 ▶영업·서비스업에 종사했다면 외식업·액세서리 전문점 등을 권할 만하다.

특히 금융상품보다 생계형 점포창업이나 기획부동산에 투자할 때 주의가 요망된다. 부실 프랜차이즈 점포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업종에서 창업할 경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생계형 창업이 과잉 상태로 “점포창업은 은퇴자의 무덤”이란 말까지 나온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종업원 5인 미만 창업은 5년 내 생존율이 38%에 불과하다. 음식·숙박업의 생존율은 이보다 더 낮다. 지난해 10월 한국개발연구원(KDI) 창설 4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랜달 존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담당 국장은 “한국의 서비스 업종은 은퇴 후 노년층의 폐기물 처리장(dumping ground)”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기획부동산이나 금융브로커·보이스피싱 등의 희생자도 많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지난해 10월 25~64세 2500여 명을 상대로 금융사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 금융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는 응답이 60대에서 가장 많이(27.9%) 나왔다. 이 재단의 손정국 센터장은 “고령화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데다 퇴직 후 미래 불안에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른 연령대보다 사기를 당할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30m 길이의 롱 퍼팅을 홀 근처에 잘 갖다 붙이려면 홀을 직접 보지 말고 그 궤적을 따라 5m 앞 지점을 잘 찍어 놓고 공을 그리로 보내야 한다. 일단 5년 앞 비전을 잘 세우고 그 여정을 잘 넘겨야 30년을 기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40대 중년도 55세 은퇴를 가정하면 연금이 나오는 65세까지 10년의 기나긴 터널을 잘 버텨야 한다. 모아놓은 돈이 수중에 좀 있다는 것이 기회이면서도 리스크다. 의욕과 근심이 모두 많은 은퇴 직후 5년을 잘 견뎌야 한다.

이는 출산율이 역시 높았던 40세 전후의 2차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해당한다. 인구의 13%에 달하는 현재 만 37~43세(1969~75년생) 600만 명이 그들이다. 지금의 베이비부머들처럼 허둥지둥하지 말고 차근차근 채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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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