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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선진 금융 도입 명분 사라지고 추가협상 車 부문 4조원 날려

한명숙 대표 등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미 FTA 발효절차 중단 촉구대회 및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에 대한 서한발송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지난해 11월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를 통과한 지 20일쯤 지난 12월 중순. 국회 의원회관 130호에 남희섭 변리사, 이해영 한신대 교수, 이종훈 명지대 교수 등이 모였다. 이들은 정동영 의원의 주도로 만들어진 민주통합당(민주당)의 ‘한·미 FTA 무효화 투쟁위원회’ 자문위원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FTA 발효 중지와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미국 정부에 보내는 방안이 처음 나왔다. 초안은 아이디어를 낸 남 변리사가 만들었다. 이를 놓고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10여 차례 협의한 뒤 문안을 완성하고 이달 8일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달했다. 남 변리사는 “서한은 전체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내용이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카드로 폐기를 언급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서한은 FTA 폐기 요구로 해석됐고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15일엔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다시 폐기 문제를 거론했다. 새누리당은 “정권이 바뀌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데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며 공세를 펼쳤고 민주당 수뇌부의 말 바꾸기를 집중 폭로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FTA 폐기 논쟁은 4·11 총선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의 FTA 폐기론은 논란을 불렀다. 양국 국회 비준까지 끝난 조약에 대해 폐기론을 들고나온 명분은 무엇일까. 민주당의 논리는 ‘상황 변화론’이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 전에 한 약속을 재검토해야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을 듣기 위해 17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만났다.

-어떻게 상황이 달라졌다는 건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FTA를 추진한 바탕엔 미국식 선진 금융제도나 서비스 시스템을 받아들여 국내 금융 서비스를 업그레이드 해보자는 게 있었다. 그런데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미 FTA는 상품·무역뿐 아니라 서비스와 투자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미 FTA는 금융 개방으로 미국 금융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부분이 있는데 미국 금융위기를 야기한 파생상품이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금융 세이프가드를 강화하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차별적 이식이 한국에 미국식 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보스 포럼에서 자본주의 위기를 논하고 그리스 재정위기로 한국의 주가가 내려가는 시대다. 방호막 없는 개방은 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노 대통령 때 그런 상황이었다면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진 않았을 거다. 노 대통령도 2009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변화는.
“양극화 문제가 있다. 2007년까지 양극화는 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FTA로 농ㆍ축산 분야에서 60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자동차나 부품에서 100의 이익을 남겨 농·축산 분야를 지원하면 된다고 봤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추가협상을 잘못해 100이던 이익이 50~60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농·축산 분야 손해를 지원하기 어려워졌다. FTA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다른 나라 사례들에서 입증된 바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익이 줄었나.
“자동차가 그렇다. 2007년 협상에선 발효와 동시에 관세 인하가 바로 시작되게 했다. 그런데 재협상에서 4년 늦췄다. 1년에 1조원 이익이라고 봤는데 4조원이 날아간 것이다. 취임 직후에는 한·미 FTA를 반대하던 버락 오바마가 재협상 뒤에는 ‘일자리가 창출되고, 미국 경제에 좋아졌다’고 기뻐했다. 의장에선 기립박수까지 쳤다. 한국이 퍼주기를 했다는 증거 아닌가.”

-발효가 되기도 전에 재협상과 폐기를 말하나.
“손해를 알면서도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며 사대주의다. FTA 협정문에 따르면 재협상을 상대방이 안 들어주면 통보만으로 6개월 안에 종료된다. 그건 권리다. 그런데 우리가 재협상 요구도 않고 일방적으로 폐기하면 우호가 깨어질 수 있으니 미국과 논의하자는 거다.”
FTA 반대론의 선봉장 격인 정동영 의원은 상황 변화 논리를 약간 다르게 설명한다. “나는 (2007년 FTA를 찬성했던) 원죄를 일찍 인정하고 반성했다”는 정 의원 주장의 핵심은 “FTA로 가면 복지를 못하고 경제 민주화를 못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식을 무조건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은 복지국가가 아니다. 지금 FTA로 가면 완전히 미국식이 된다. 자유무역은 지지하지만 우리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뜯어고치는 건 반대다. 우리에겐 유럽식이 답이다”라고 한다.

"폐기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
정부와 경제계에서는 민주당의 주장을 대체로 ‘사리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으로 보거나 ‘선거를 앞둔 정치 공세’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특히 민주당 집권 후 폐기 주장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황 변화론에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서 한·미 FTA에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인지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대세다.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의 최석영 FTA 교섭대표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은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FTA 재협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국민을 호도하는 얘기다. 우리는 1997년 구제금융 위기(IMF 사태)를 겪으며 많은 제도적 보완을 했다.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쳤지만 우리는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개방으로 인한 위험을 경고하는 얘기로 들리는데, 한ㆍ미 FTA 협정의 조항은 2007년 체결 당시의 개방 수준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개방 수준이 더 진전되어 있다. 그런데도 다양한 안전장치들이 마련돼 있어 별 문제가 없다.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투자자ㆍ국가 소송제도(ISD) 등 10개 항목에 대한 논란은 지난해 끝장 토론 등 방대한 논의를 통해 일단락되었다고 본다. 그중 자동차를 제외한 9개 분야는 노무현 정부 때 맺은 조항 그대로다. 사정이 그러한데 무슨 상황의 변화가 있다는 말인가.”

-양극화 문제 등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나 퇴조하고 있는데 한ㆍ미 FTA는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가 퇴조하니 FTA도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도한 비약이고 단순 논리다. 우리 경제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조 달러인데, 연간 무역 총액도 1조 달러다. 그만큼 대외 의존이 크다. 반면 내수를 통한 성장 가능성은 극도로 제한된 나라다. 무역을 통해 성장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불균형은 정책으로 보정해 나가면 된다. 농수산물의 경우는 워낙 가격 차이가 나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아예 무역을 않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정책적 지원이나 보조금 지급 등의 수단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추가협상으로 인해 이익 균형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는데.
“허구에 가깝다. 추가협상으로 달라진 게 자동차 부문인데 FTA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추가협상에서 결정적 문제가 생겼다면 자동차 업계가 가만히 있겠나.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 부품 관세(4%)는 즉시 철폐된다. 완성차는 4년 뒤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 앨라배마와 애틀랜타에 현지 공장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사용하는 부품은 대부분 한국산이다. 부품 관세가 없어지면 현지 생산하는 완성차의 가격에 반영돼 일본 등에 비해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러니 업계는 하루라도 빨리 발효되게 해 달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설령 추가협상에서 이익이 약간 훼손되었다고 쳐도 우리가 애써 타결한 FTA를 발효시키지 못할 때의 기회비용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분석한 바로는 FTA 발효로 GDP 5.66%가 늘어난다. 추가협상 결과를 반영한 수치다.”

-재협상이 안 되면 폐기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폐기는 한·미 FTA로 누릴 이익을 포기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신뢰와 국격은 땅에 떨어진다. 한ㆍ미 FTA가 한일병합 조약이나 을사늑약처럼 우리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인가. FTA 폐기를 운운하려면 한ㆍ미 관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거친 뒤에 해야 한다.”

업계와 학계에서도 민주당 주장에 대한 반론이 거세다. 허완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무는 “민주당이 자동차 부문 추가협상을 문제 삼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빨리 FTA를 발효시켜 달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허 상무는 “추가협상으로 3000㏄ 미만 완성차의 관세 철폐가 2016년으로 늦춰진 것은 아쉽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당 비율은 미국에서 현지 생산하기 때문에 실제 타격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가 당장은 존재해도 4년 후면 어차피 없어지고 부품 관세는 발효와 동시에 철폐된다”며 “왜 이런 막대한 혜택을 발로 차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특히 FTA 폐기론은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관리는 “현실적으로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민주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때 가서 또 말을 바꾸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국제 조약의 폐기는 정부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이후 다른 국제협약을 맺기 힘들고 특히 통상조약은 세계적으로 폐기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우리 정부의 신뢰가 한번 훼손되고 나면 향후 거대 경제권과의 FTA 협상 진행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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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