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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환갑상에도 오른 ‘보약’ 뭔가 보니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조선 왕조에서 간행된, 음식과 관련된 『의궤』를 연구한 지도 근 30여 년이 된 필자는 이를 통해 조선 왕조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패류는 전복과 홍합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왜 이렇게 홍합을 선호했을까.그것은 홍합이 가진 약성(藥性)에서 찾을 수 있지 싶다. 즉 성(性)이 온(溫)하고 맛이 감(甘)하며 오장과 요각(腰脚·허리와 다리)에 좋고, 허손(虛損·폐결핵)·산후의 피가 뭉쳐 생기는 복통·대하증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양사(陽事·남자의 방사 房事)에도 좋은,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식품이다. 이들 약성에서 부인들에게 더욱 이롭다 하니(『산림경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좋은 식품인 듯싶다.

홍합은 동해와 남해 연안, 일본의 홋카이도 등에 분포한다. 1월에서 3월까지가 산란기다. 살이 붉은빛을 띤 적등색(赤橙色)이라 하여 홍합(紅蛤)이라 한다. 이패(貽貝)·해폐·희패(姬貝)·섭조개라고도 불린다. 북해 것은 크고 살쪘지만 맛과 약성은 크기가 작은 동해산이 으뜸이라 했다(『규합총서』). 조선시대에는 강원도와 경상도의 동해에서 나는 홍합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홍합을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 했다. 말려 건조한 것은 담채(淡菜·바다에서 생산된 것은 모두 짜지만 홍합만이 홀로 싱겁다는 뜻)라고도 했다. 자기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로 해삼만큼 귀하게 여겼다.

조선 왕조는 생홍합은 강원도의 간성·강릉·삼척·고성, 전라도의 강진·광양·나주·보성·순천·영광·영암·장흥·진도·해남, 경상도의 거제·하동, 함경도의 함흥·단천·덕원·영흥에서, 건홍합은 강원도의 강릉·삼척·통천, 경상도의 간성·곤양·사천·창원, 함경도의 감영·북청·안변에서, 열건홍합(裂乾紅蛤·찢어서 말린 홍합)은 경상도의 칠원·경주·영해에서 민호(民戶)에게 부과시켜 진공케 했다(『여지도서(輿地圖書)』, 1757). 진공된 홍합은 홍합초·홍합탕·삼합미음·홍합젓갈 등 다양한 찬품으로 만들어졌다.

정조 대왕은 1795년(정조 19) 윤 2월 9일 주갑(周甲)을 맞는 어머님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아버님 사도세자가 묻혀 계신 수원에서 올려 드리기 위해 어머님을 모시고 창덕궁을 떠나 수원으로의 원행(園幸·원은 사도세자의 묘, 행은 정조의 거동을 가리킴) 길에 올랐다. 이 장엄한 행사는 윤 2월 16일의 환궁으로 끝이 났는데, 원행 중 어머님께 올린 미음에 ‘삼합미음(蔘蛤米飮)’이 들어 있다.건해삼을 검은 빛깔이 없어지도록 깨끗이 씻고, 동해산 건홍합은 물에 불려 털을 없앤 후 기름이 없는 소 우둔육 한 덩어리를 합한다. 이 모두를 커다란 그릇에 담아 물을 부어 은근한 숯불에서 물러지도록 곤다. 여기에 찹쌀을 넣어 걸쭉하게 쑨 것이 삼합미음이다. 이것에 3년 된 간장을 곁들여 먹으면 노인과 병든 사람에게 매우 좋은 보약이 된다 했다.

삼합미음은 붕어로 만든 곰국과 각색정과(各色正果, 산사·연근·감자·유자·배·생강·도라지·모과로 만든 정과와 전약)를 한 조가 되게 하여 차려 올렸다. 미음·곰국·정과를 한 조로 차린 미음상은 연세 드신 어머님의 여행길에 건강을 염려하여 마련한 그야말로 약이성(藥餌性) 미음상이다. 그런데 홍합은 미음에만 쓰인 것이 아니었다. 윤 2월 13일 환갑연인 진찬(進饌)을 차려 올렸다. 찬품단자(饌品單子·식단)에 홍합 130개, 쇠고기 1근, 후춧가루 5 숟가락, 간장 1 1/2 숟가락으로 만든 ‘홍합탕(紅蛤湯)’이 들어 있다. 궁중에서 홍합이 가진 약성을 이렇듯 충분히 살려 찬품단자를 짠 예는 이때가 가장 전형이었다. 어쨌든 제철인 2월의 생홍합 진공을 제외하고, 건홍합 진공은 탄일과 명일에 집중되고 있으니 홍합은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경축 식품의 하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도문대작』(1611), 『산림경제』(1715), 『규합총서』(1815), 『시의전서』(1800년대 말께) 등의 양반가에서 낸 책에도 홍합은 약성의 식자재로서 등장하면서 경축 식품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밥반찬에서 우의정의 역할을 했던 우간남(右肝南·주인공의 남쪽 오른편에 차려지는 가장 핵심적인 밥반찬)에 ‘홍합초(紅蛤炒)’가 올랐다. 궁중 음식의 영향을 받아 반가음식화한 ‘홍합초’는 물에 담가 불린 건홍합에 다진 쇠고기와 양념을 넣고 볶아 위에 잣가루를 뿌린 형태였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향연이 연회라면, 돌아가신 분을 위한 향연이 제사다. 이때 우간남의 하나로 볶은 홍합에 육수를 부어 끓여 계란지단으로 교태(交胎, 장식·웃기·고명)한 ‘홍합탕’이 올랐다. 『시의전서』이후 1924년 나온 조리서 『조선무쌍신신요리제법』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홍합탕(紅蛤湯·淡菜湯):홍합은 흰 것이 암컷이요 붉은 것이 수컷이다. 암컷이 맛이 달고 좋다. 맑은 장에 끓여 먹으면 사람에게 대단히 이롭고 부인에게 더욱 유익하다. 건홍합을 맑은 장물에 많이 넣고 푹 끓여 익혀 먹는다’.이렇듯 홍합은 부인에게 유익한 식품이나 중요한 손님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밥반찬이 되어 조선왕조 전기(全期) 동안 군림하고 있었다.


홍합탕
마른 홍합을 맑은 장물에 넣고 푹 끓여 익혀 먹는다.1924년 나온 조리서 『조선무쌍신신요리제법』에는“사람에게 대단히 이롭고 특히 부인에게 유익하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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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