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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떠난 노숙인들, 강남서 어떻게 사나보니

14일 오후 4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2번 출구 앞. 밸런타인 데이인 이날 대로변 카페와 편의점 앞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민 초콜릿 선물이 즐비했고, 팔짱을 낀 연인들로 붐볐다.

인파 속을 홀로 통과하고 있는 한 남성의 행색이 눈길을 끌었다. 빛바랜 군복 바지에 낡은 회색 점퍼, 때가 탄 파란색 운동화…. 손에는 담요와 신문지를 구겨 넣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손톱 밑은 새까맣고 손등은 추위에 곱아 갈라터졌다. 노숙인 김모(51)씨였다.

김씨는 “서울역·영등포역의 노숙인은 서너 명, 많게는 10명이 무리지어 다니는데 나는 그 무리에 끼이지 못해 괴로웠다”며 “강남에서 생활한 지 꽤 된다”고 말했다.

 ‘부촌(富村)’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 일대에 노숙인이 모여들고 있다. 서울역·영등포역 일대가 노숙인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집단생활에 염증을 느껴 이탈한 이들이다. 노숙인지원단체 ‘거리의 천사들’의 조정희 팀장은 “강남에 노숙인이 모습을 드러낸 건 4~5년 전께부터”라며 “2010년 10여 명이던 강남 노숙인 수가 계속 늘어 현재는 5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남의 노숙인들은 모두 홀로 생활하는 ‘프리랜서형(型)’이었다. 신논현역 인근을 배회하던 노숙인 이모(60)씨는 “서울역의 노숙인은 무리 안에 서열이 있다. 텃세를 부리고 빵·소주 상납까지 요구해 3년 전 강남에 왔다”고 말했다.

 노숙인이 강남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많아서다. 부유층이 사는 반포동·논현동 주택가에서 고가의 물품·의류를 주울 수 있는 데다 강남 사람들이 적선하는 금액이 강북보다 크다는 얘기다.

15일 오후 반포동 주택가에서 만난 노숙인 이모(49)씨는 낡은 자주색 모자에 해진 군복 바지를 입었지만 점퍼는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다. 그는 “주택가를 뒤지다 보면 새것이나 다름없는 장갑·양말·등산화를 심심찮게 발견한다”고 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노숙인 오모(58)씨는 “강남역은 유동인구가 워낙 많다. 한 번에 1만원 이상 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대형 건물이 많은 강남이 오히려 잠자리를 찾기 쉽다고 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노숙인 김모씨는 “건물의 지하주차장은 밤에 (차량통제용) 차단기만 있어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식사 때는 지하철을 타고 무료급식소가 있는 서울역·용산역으로 ‘식사 원정’을 떠나는 노숙인이 많다.

 강남에 노숙인이 늘면서 크고 작은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코엑스 대형서점에서 한 노숙인이 책을 보던 사람에게 망치를 휘두르다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송파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노숙인이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 노숙인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별도의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지 현황을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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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