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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 패티 김의 퇴장 … “일그러진 사진은 싣지 마세요, 호호”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은퇴회견을 연 패티 김.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멋진 모습으로 스스로 내려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 바로 뒤로 가수 데뷔 직후인 20대 시절 그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온 천지를 신비로운 붉은 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석양으로, 즉 가장 아름다운 태양의 모습으로 여러분 기억에 남고 싶어요.”



6월 ‘이별’ 투어 끝으로 54년 무대 내려오는 ‘대한민국 디바’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로 반세기 넘게 무대를 누볐던 가수 패티 김(74·본명 김혜자)이 내년에 마이크를 놓는다. 패티 김은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월 시작할 은퇴 기념 투어 ‘이별’을 끝으로 무대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1958년 미8군 무대에서 린다 김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지 54년 만이다.



 그는 59년 가수 페티 페이지(Patti Page)처럼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름을 패티 김으로 바꾸고 본격 ‘가인(歌人)’의 길에 들어섰다. 최근까지도 ‘영원한 현역 가수로’ 불려왔다.



 이날 은퇴 회견은 화려한 퍼포먼스였다. 오후 2시 정각,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세 개의 스크린에 김씨가 부른 ‘마이 웨이(My Way)’가 흘렀고, 그의 당찼던 과거가 흑백 화면으로 지나갔다. 61년 10월 23일 김씨가 국군방송 위문열차 1회에 출연해 ‘사랑의 맹세(Till)’를 부른 육성도 공개됐다.



 이어 패티 김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입장했다. 새빨간 하이힐에 청바지, 화려한 금색 목걸이까지 74세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방송인 임성훈이 진행한 회견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아직 건강에도 문제가 없고, 노래도 잘 한다. 하지만 가장 당당한 모습으로 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고 싶어 10여 년간 은퇴를 고민해 왔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인 것 같아 마음을 정하고 발표하게 됐다. 마음으로는 5년, 10년 더 노래하고 싶지만, 이렇게 건강한 상태로 무대를 떠나는 게 가장 패티 김답다”고 했다.





 -건강상 이유로 은퇴하는 건 아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제가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수영 1500m는 쉽게 하고 매일 4~5㎞를 걷는다. 건강 이유는 절대 아니다. 건강 때문이라면 앞으로 10년도 더 자신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기억을 절대 팬들에 남기고 싶지 않다.”



 - 무대 오를 때마다 늘 긴장감이 컸다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 얼마나 긴장되고 초조한지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우리가 나이 먹으면 몸도 늙고, 성대도 늙어간다. 그런데 팬들은 예전과 같은 모습, 그 음성 그대로를 기대한다. 압박감이 컸다.”



 -가수로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각각 공연했을 때다.”



 김씨는 늘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해방 이후 일본 정부가 공식 초청한 최초의 한국 가수(1960)’ ‘대중 가수 최초 리사이틀이란 표현 사용(1962)’ ‘국내 첫 개인 이름을 내건 쇼 프로그램 진행(1967)’ 등등. 78년 대중가수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그래픽 참조>



패티 김(오른쪽)과 그의 첫 번째 남편이자 음악적 동지였던 작곡가 길옥윤. [중앙포토]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30대다. 가장 아름답고 체격도 좋았던 것 같다. 노래로 본다면 50대다. 가장 성숙한 ‘골든 보이스’였다.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제 음성은 좋고 성량도 풍부하다.”



 -개인적으로 명곡으로 꼽는 곡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영원히’ ‘가시나무새’ ‘빛과 그림자’ 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가는 노래는, 크게 히트하진 못했지만 ‘9월의 노래’다.”



 사회자 임성훈의 요청으로 패티 김은 ‘9월의 노래’를 즉석에서 무반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6월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1년간 국내외에서 은퇴 기념 투어 ‘이별’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올해, 내년 모든 공연에 집중을 하고 은퇴 뒤엔 자연환경 보호 분야에 힘쓰고 싶다. 어린 후배들과 앨범도 하나 같이 내고 싶다.”



 -마지막 무대는 어떻게 꾸미나.



 “히트곡 25곡 정도를 부를 것이다. 첫 곡은 데뷔곡 (사랑의 맹세), 마지막 곡은 공연장에 와서 확인해달라.”



  -은퇴 뒤 계획은.



 “깊이 고민하진 않았다. 은퇴하고 나면 평범한 김혜자 할머니로 돌아가서 나비같이 훨훨 날면서 딸, 손주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패티 김에겐 첫 남편 길옥윤(95년 사망)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녀 최정아(43)씨와 현재의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 사이에서 낳은 차녀 카밀라 게디니(34), 손주 둘이 있다.



 -오늘 눈물을 참았다. 언제 흘릴 것 같은지.



 “일생을 노래하다가 노래 안 한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다. 그러나 저는 행복하다. 제가 걸어온 50년 이상 노래 인생이 정말 행복했고 만족한다. 슬픈 마음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무대를 떠날 것이다. 저보다도 ‘이별’이라는 타이틀로 노래하면 팬들이 울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울 것 같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패티 김이 기자들에 다가와 부탁했다. “일그러진 사진 같은 건 실어주지 마세요. 74세가 됐어도 미를 강조합니다. 호호.”



 은퇴 공연 타이틀 ‘이별’은 후배 조용필이 추천했다고 한다. ‘라스트 커튼’ ‘아듀’ 등을 두고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그와 50여 년을 함께해온 팬들이라면 나중에 ‘이별’의 다음 대목을 흥얼거리지 않을까.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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