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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민주화 25년, 반성과 재충전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6월 항쟁, 6·29선언, 헌법개정, 직선대통령선거로 숨 가쁘게 이어진 정치드라마가 이른바 1987년 체제를 출범시킨 지 4반세기, 25년째를 맞고 있다. 1987년 한국 사회가 직면했던 일차적 과제를 권위주의체제로부터의 해방, 즉 정치적인 자유의 획득이었다면 우리는 일단 민주화의 성공을 자부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부 권력에 의해 정치활동이나 자유로운 의사표시가 제한되고 있다는 불평은 예전과 비교할 때 현저히 적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최대과제로 당면하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는 어떻게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독재를 무너뜨리는 민주화의 성공이 안정된 민주국가체제의 확립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랍 세계를 휩쓸었던 민주화의 봄이 아직도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혼란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기에 두 번의 여야 정권교체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한국 민주정치의 전개과정은 국제사회에서 비교적 성공적 사례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시아 이웃 나라에 비해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는 매우 불안한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음에 대해 국민들은 일찍부터 걱정해 왔다. 동일본 대지진이란 극심한 자연재해와 지속적 경제 불황 속에서도 민주적인 의회정치 절차를 안정적으로 지켜가는 일본 정치의 성숙도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 달 전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도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국민당과 대만독립을 강력히 추진하는 민진당 사이의 쉽게 타협하기 힘든 이념적 골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한 선거절차와 선거결과에 대한 깨끗한 수용으로 민주정치문화의 성숙도를 보여주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치르게 되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상대적으로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87년 체제의 출범 이후 다섯 대통령이 예외 없이 임기 말에 탈당하거나 이를 권유받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단임제 대통령이 그를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킨 정당과 결별하고 퇴임 후 홀가분하게 사저로 돌아간다면 5년 집권기간의 국정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간단히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정당이,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대통령무책임제’가 어떻게 국민에게 민주적 책임정치를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25년의 민주정치실험을 돌이켜보면 한국 정치는 헌법적 차원에서 심각한 제도적 결함을 안은 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선거경쟁, 즉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함정에 빠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는 애초부터 민주주의의 교과서적 원칙은 적용시킬 수 없다’는 손쉬운 체념보다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에 못지않게 권력은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18대 국회에서 186명의 의원이 초당적으로 참여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헌법개정초안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헌법적 차원에서의 제도보완 가능성이 보이는 듯싶었지만 각 당 지도부의 무관심과 비협조로 무산되고 말았다. 모두들 청와대로 향한 권력집중을 비판하면서도 다음 기회에 대통령이 되어 단숨에 권력판도를 바꾸고 총체적 변화나 개혁을 시도하겠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데서 한국의 헌정문화는 마냥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민주화 25년째인 올해를 민주정치발전의 역량을 재충전하는 역사적 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까지는 못 가더라도 헌법을 가볍게 무시하거나 우회해 버리는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실천방안이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국민과의 약속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조항은 총리에 대한 신임의 이중성을 처방한 것인데, 즉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은 대통령과 국회의 뜻을 동시에 존중하며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 원칙은 역대정권에서 뚜렷한 논란도 없이 무시되어 왔다. 헌법87조에 명시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이 전혀 존중되지 않던 잘못된 관행이 올해 선거를 계기로 시정된다면 극도로 비대해진 대통령의 권력을 적절히 분립시키는 동시에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와 정당의 정상적 위치를 제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정치가 지속적인 난맥상을 표출하고 있는 것을 몇 사람 지도자나 정치인들의 자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적절한 제도화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겨온 미숙한 헌법문화의 결과임을 반성하면서 정치발전의 궤도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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