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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급' 미모 과시하던 여성운동가, 결혼거부하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여권 신장과 양성평등 실현은 세계 모든 여성의 오랜 숙원이다. 아직도 “여성은 남자의 반”이란 주장을 펴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세계 각지에서 여권은 크게 신장됐다.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지만 대다수 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에게 선거권·피선거권을 부여했다. 자유·평등사상의 요람이란 프랑스도 그랬다. 모범적 민주국가인 스위스는 1971년이나 돼서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이슬람권은 터키를 제외하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권에 관한 한 지구상에서 가장 완고한 사우디아라비아마저 2015년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초기 여성운동 리더는 대부분 유대인
유대인 사회는 전통적으로 여성 우위가 인정돼 왔다. 특히 유대인의 정체성을 말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냐는 것이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비유대인이어도 자식은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된다. 그리고 전 세계를 통틀어 결혼 후 처녀성(Maiden Name)을 그대로 쓰는 것도 유대인과 우리밖에 없다.

여성운동이 본격화된 시기는 20세기 초 러시아 공산혁명 태동기였다. 이 시기에 많은 동유럽 출신 급진 여성운동가들이 미국 또는 서유럽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여성 운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여성운동 지도자 대부분이 유대인이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아나키스트 에마 골드만, 최초의 여성기구 NOW(전국여성기구)를 설립하고 여성의 신비란 베스트셀러를 낸 독일-폴란드계 미국인 베티 프리단, 그리고 70년대 프랑스 사회·보건장관을 지낸 시몬 베일 등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사진)은 진보 성향의 유대인 여권 운동가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스타이넘은 34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태어났다. 폴란드-독일계 유대인 가계다. 열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는 정신병 요양소에 가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명석한 두뇌로 학업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고교졸업 후 미국 명문 여자대학 스미스 칼리지를 장학생으로 다녔고 또 1등으로 졸업했다. 60년부터는 프리랜스 리포터로 여러 매체서 일했다. 스타이넘은 선배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단이 쓴 여성의 신비에 큰 감명을 받았다. 68년부터 신좌파 성향 여성운동을 벌였다. 베트남전 반전운동 그리고 여성의 인공 임신중절 결정권을 위한 투쟁도 벌였다. 62년 에스콰이어 매거진에 낙태 문제 관련 특집기고를 해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또한 여배우 제인 폰다와 함께 당시 국제사회의 관심사인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일명 ‘아파타이드’ 퇴치운동도 전개했다.

71년 12월 그녀는 ‘미즈’(Ms)지를 창간했다. 남성은 결혼 여부에 불구하고 미스터로 불리는 데 반해 여성은 결혼 전엔 미스, 그리고 결혼 후엔 미시즈로 불리는 것을 양성 불평등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그래서 ‘미즈’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이제 미즈는 보편적 용어로 정착됐다. 72년 1월 10만 부로 창간호를 낸 미즈지는 매년 부수가 늘어 80년대엔 75만 부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83년 그녀는 한 여성잡지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인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스타이넘은 여성운동가가 주는 일상적인 이미지를 탈피했다. 당시 미국의 여성운동가 대부분이 용모엔 관심 없이 남성화된 풍모에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인상을 주는 것에 반대했다. 그녀는 미니스커트에 긴 생머리 또 큰 테의 선글라스 등으로 모델 수준의 미모를 과시했다. 평생 많은 남자 친구를 사귀었으나 결혼은 거부하던 그녀도 66년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동지인 남아공 태생의 연하 애인과 2000년 66세 나이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3년 후 남편이 병으로 사망해 다시 독신으로 돌아왔다.

2002년, 2011년 두 차례 방한
스타이넘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포르노 영화에 대해 극심한 반감을 보였다. 2010년 미국 포르노 영화의 전설적 배우 린다 러브레이스의 일대기를 주제로 매슈 와일더 감독이 만든 영화 ‘러브레이스’가 나왔다. 이 영화엔 포르노 추방운동을 벌인 스타이넘이 등장한다. ‘섹스 앤드 더 시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대인 여배우 새라 제시카 파커가 스타이넘 역을 맡았다.

스타이넘도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다. 우선 그녀는 대학 졸업 후 50~60년대 CIA의 위장 전위단체로 알려진 한 연구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60년대 플레이보이 바니 걸로 분장하고 뉴욕 플레이보이 클럽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녀는 취재 목적의 잠입이라고 주장했지만 바니 걸 복장의 스타이넘 사진은 한동안 가십지에 게재돼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스타이넘은 2002년 그리고 2011년 두 차례 방한했다.

우리도 최근 여권이 크게 신장됐다. 그런데 사실 오래 전부터 한국 여성은 실질적 권력을 행사했다. 조선시대 주자학을 도입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제도적으로 격하시켰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왕이 궐위돼 마땅한 후사가 없을 때 왕을 지명한 사람은 대왕대비였다. 왕이 나이가 어리면 발을 치고 수렴청정도 했다. 그리고 과거 우리 가정 경제권의 핵심인 쌀 뒤주 열쇠도 할머니가 갖고 있었다. 여성단체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여권은 이제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니 우리 여성도 이제는 남성을 타도 대상이 아닌 더불어 공존하고 협조할 동반자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것은 또한 진보 여성운동가 스타이넘의 일관된 지론이기도 하다.

박재선 전 외교부 대사 jayson-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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