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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춘화도 김태희도…한 해 100만명 찾는 그곳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의 사서들이 8일 도서관 3층 서고에서 장서들을 살펴보고 있다. 조용철 기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2006년 철학 박사가 된 가수 하춘화는 이곳을 “희귀한 대중가요 자료를 찾으며 뿌듯한 기쁨을 느꼈던 배움의 응원자이자 후원자”라고 불렀다. 가수 최백호에겐 이곳이 부친(2대 민의원 최원봉)의 의정 활동을 확인하는 역대 국회의원 편람을 발견한 장소였다. 개그맨 출신 ‘박사 1호’였던 이윤석에겐 공부방이자 자료방이었고, 한국 연극계의 중견배우 이주실에겐 “작고한 부친과 함께 족보를 찾았던 기억이 서린” 추억 보관소였다. 구상문학상 젊은문학상을 수상했던 소설가 김주앙은 이곳을 “하루라도 찾지 않으면 금단 증상에 시달리게 만드는 집필실”로 불렀다. 3년 전엔 탤런트 김태희도 매니저ㆍ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들렀다. 서울 여의도의 국회도서관이다.
지난 9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2층 최신자료실. 평일인데도 좌석 123석의 3분의 2인 80여 석이 채워져 있다. 자료를 찾던 대학원생 황인성(32)씨는 “전공하는 환경 분야의 전문 서적이 대거 구비돼 있는 데다 인터넷 속도도 다른 도서관보다 훨씬 빨라 이용하기에 편하다”고 했다. 방송작가 김모(35ㆍ여)씨는 “아이템을 찾으려면 신문도 읽고 관련 서적도 찾아야 하는데 국회도서관만큼 편리한 곳이 없다”며 “노트북을 펴 놓고 찾은 자료를 정리하기에도 편하다”고 했다. 지금 국회도서관은 장서 435만여 권을 갖춰 한 해 97만7000여 명(2011년 기준)이 방문하는 정보의 허브다.

대출 책자엔 여의도 정치 속내 담겨
위 1952년 2월 20일 전시수도 부산에서 개관할 당시의 국회도서실 건물. 경남도청 내 ‘무덕전’이다. 아래 1960년대 서울시 중구 태평로 국회의사당(현서울시의회)에 설치됐던 국회도서관의 현판.
국회도서관은 대한민국 지식보급소인 동시에 여의도 정치의 은밀한 속내를 보여주는 풍향계이기도 하다. 국회도서관만의 특징이다. 국회의원실에서 대출하는 서적의 10위 이내 상위 순번을 들여다보면 정치권의 생각이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한 2002년엔 『대통령 선거전략보고서: 97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와 1997년 대선 당시의 DJP 연합의 공동 정책공약인 『21세기로 가는 길』이 각각 대출 4, 8위였다. 민주당 쪽의 ‘승전 분석서’가 국회의 관심 책자였다. 노무현 후보의 인터넷 파워를 실감한 2003년엔 『인터넷과 TV 시대의 선거전략』이 집중 대출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의 갈등이 노골화된 2005년은 『네오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이 주요 대출 서적으로 등장한다.

3ㆍ1절 골프 파동으로 이해찬 총리가 사퇴하는 등 노무현 정부의 암운이 시작된 집권 4년차 2006년의 대출 1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했는가』였다. 이 책은 한나라당이 집권에 성공하는 2007년 대선의 해에도 국회 열독서였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며 전ㆍ현 정부의 갈등이 첨예화된 2009년엔 『권력의 조건: 라이벌까지 끌어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십』이 9위로 떠올랐다. 다음 해는 트위터 바람이 불며 『트위터, 140자의 매직』등이 국회를 달구더니 지난해는 보수의 위기를 반영하듯 『진보집권플랜』이 주요 대출 도서가 됐다.

국회도서관엔 한국 헌정사의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도서관은 6ㆍ25 전쟁 시기인 52년 2월 20일 전시수도였던 부산의 경남도청 건물 ‘무덕전’을 빌려 직원 1명이 관리하는 ‘국회 도서실’로 초라하게 출발했다. 당시 국회의 ‘도서실 설치 결의안’은 “단 한 칸의 도서실이라도 설치해 국내외 신문이라도 입수토록 한다”였다. 힘들었던 시대였다. 책이 부족해 존 무초 주한미국 대사로부터 도서 700권을 꿔오기도 했다.

‘교육 입국’을 외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 태평로 국회도서관에 ‘책은 국민의 것’이라고 쓴 친필 서액을 걸며 도서관을 키웠다. 국회도서관법도 제정됐다(63년). 그래도 신임 도서관장이 서가를 둘러본 뒤 “책들이 삐뚤빼뚤하게 꽂혀 있다. (분류 기호를 따르지 말고) 크기에 맞춰 다시 정렬하라”고 했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선 찬바람을 맞았다. 81년 국회도서관법은 아예 폐지됐다. 국회도서관 관계자는 “신군부의 국회 권한 약화시키기의 일환이었다”고 회고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을 앞두곤 사서들의 책상에서 송곳ㆍ칼까지 회수하고, 국정연설 당일엔 보안상의 이유로 창문에 커튼을 쳐 바깥을 내다보지 말라는 지침도 내려왔다”고 말했다.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국회도서관법이 부활되며 활력을 찾은 국회도서관은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으며 ‘삼겹살 시대’에 접어든다. 김대중 정부는 고학력 실업자 대책 차원에서 장서ㆍ논문의 DB화 작업을 시작했고 이게 전자 도서관 구축의 기반이 됐다. 홍정순 정보관리국장은 “당시 낡은 책들을 꺼내 일일이 DB화를 하다 보니 목에 먼지가 끓어 일주일에 한 번은 삼겹살을 먹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국회도서관이 20일로 개관 60주년을 맞는다. 장서 3000여 권으로 출발했지만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10여 년 전 시작한 DB 작업으로 ‘디지털 강자’로도 탈바꿈했다. 원문을 볼 수 있는 DB는 현재 75만여 편의 석ㆍ박사 논문과 135만여 권의 학술지 등 1억 3494만여 페이지에 달한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심리에 맞춰 ‘30분 대출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 등 작지만 중요한 편리함도 갖춰 놓았다. 국회도서관엔 마치 자동화된 공장처럼 도서관 1층 대출대와 옆 건물 지하의 서고 간에 컨베이어벨트가 만들어져 있다. 대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서고 단말기에 대출 목록이 뜨면 사서가 책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곧바로 대출대로 이동한다. 기다리는 이용자들을 위해 대출 자료가 나오는 즉시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도 보내준다. 직장인들을 위해 휴관일(둘째ㆍ넷째 주 토요일, 국정공휴일)을 제외하면 토ㆍ일요일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영주 사서사무관은 주말엔 가족단위 이용객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이 입소문을 타면서 도서관 이용객은 매년 증가 추세다. 10년 전인 2002년 31만여 명과 비교하면 지난해는 세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국회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의원은 누구일까. 도서관 관계자들은 홍재형 국회 부의장,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 등을 꼽는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도 보좌관 시절 도서관의 단골 손님이었다. 한 관계자는 “보좌관 시절 차 의원은 급하면 슬리퍼를 신고도 도서관에 들이닥쳐 자료를 요청하곤 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뭐라 해도 도서관 지킴이는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이다. 최다선인 7선의 조 의원은 도서관 5층 의원열람실에 살림을 차렸다. 오전 11시면 도서관으로 출근해 약속이 없으면 점심 식사도 구내 식당에서 해결한다. 지난해 365일 중 218일을 다녀갔다. 9일에도 의원열람실에 나타난 조 의원은 “의원회관 사무실에 있으면 방문객도 많고 전화도 계속돼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 의원 이전엔 강신옥 변호사가 출근 도장을 찍었다. 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그는 지금도 한 달에 한두 차례 국회도서관을 찾는다. 한 도서관 직원은 “당시 ‘의원님, 이렇게 자주 오면 선거에 떨어진다. 선거판에도 관심을 좀 가지시라’고 말했지만 영 듣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책 날라 시간 절약
몇 년 사이 국회도서관 풍경에선 회색이 늘었다. 젊은 층 위주였던 이용자에 ‘그레이 세대’인 노년층이 가세했다. 고인철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장은 “5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며 “현재 하루 3000명 안팎의 이용자 중 20% 정도가 60대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도서관을 찾은 김모(78)씨는 “요즘 어딜 나가도 시끌벅적해 우리 같은 사람은 불편함을 느낀다”며 “하지만 국회도서관에선 장시간 조용히 신문도 책도 읽을 수 있고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도 좋아 국회도서관은 안식처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성모(80)씨도 “국회도서관 1층 구석에 있다가 최근 사라진 커피 자판기가 아쉽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며 책도 읽고 여유도 느끼니 이곳만 한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채병건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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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