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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의 불편한 진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다. 잘 만든 영화였다. 국민배우라는 안성기씨의 ‘선량한 교수’ 연기는 훌륭했다. 배우 이경영은 양심의 가책에 흔들리는 판사의 표정을, 배우 문성근은 냉혹한 ‘골통 판사’의 역을 잘 소화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법정 영화 중에선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20년 전 만들어진 미국 영화 ‘어 퓨 굿맨’ 같은 팽팽한 긴장감과 극적 반전(反轉)은 없었다. ‘저항과 조롱’의 톤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미스터리와 약간의 신파를 버무려 예상된 결론으로 갔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다. 벌써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었고 많은 수익도 올렸다. 이유가 뭘까.

내가 보기엔 두 가지다. 첫째,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다. 석궁을 발사한 교수와 재판 담당 판사 등 관련 인물들이 모두 실존이다. 워낙 엽기적인 사건이어서 “대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거야” 하는 궁금증을 영화로나마 보고 싶은 생각이 적지 않다. 만일 이 영화가 실화에 근거했다고 선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관심을 끌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둘째, 이 영화는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배합했다. 거의 수준급이다. 일반 관객은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당최 알기 힘들다. 영화에선 ‘재판 과정은 90% 사실에 입각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교묘한 보험회사 약관 같다. 별생각 없이 다른 모든 걸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선량한 교수 안성기’가 남자 재소자로부터 성폭행 당하는 장면에선 훌쩍이는 관객들도 있었다. 명색이 신문사 국장인 나도 화가 치밀어 “저 교도소 취재하라고 해야겠다”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게 영화적 장치라는 이름의 허구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취재 여기자가 다른 부처로 쫓겨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회사로 돌아와 “대체 그 정신 나간 신문사가 어디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영화 속 변호사가 노동자들을 돕다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사연도 진짜처럼 여겨졌다.

영화를 좀 아는 후배에게 “실화에 바탕했다더니 이렇게 관객을 속여도 되느냐”고 불평했더니 “그건 영화일 뿐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어리석고 상대방이 고단수라는 걸 알겠다. 한데 왠지 찜찜한 기분이다.

‘부러진 화살’에 대해 진짜 어처구니 없는 건 따로 있다. 나는 사법부의 고압적 태도에 대한 이 영화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법조기자를 하면서 나도 그런 생각 많이 했다. 하지만 비판과 진실 왜곡(정지영 감독의 표현으론 굴절)은 별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판사가 석궁을 안 맞았는데 나중에 자해를 해 상처를 냈고, 그걸 숨기려고 재판부가 온갖 짓을 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생긴다. 영화는 재판부에 왜 혈흔 검사를 안 해 줬느냐,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느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그건 정당한 문제제기다. 당시 재판부는 선배 판사가 관련된 사건일수록 더 신중하게, 꼬투리 안 잡히게 재판했어야 한다. 현장에서 증거물인 화살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경찰의 초동 수사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비명소리를 듣고 현장에 달려갔던 아파트 경비원 김모씨는 최근 jTBC 기자와 만나 영화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김씨는 “현장에 갔더니 판사님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었고, 옷을 들추자 피가 흐르고 있었다”며 “영화 제작자들은 왜 나한테 와서 한번도 당시 상황을 물어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부러진 화살의 행방에 대해선 “당시 주변에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고 어수선했는데 그 와중에 어디로 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화에선 부러진 화살에 피가 안 묻어 있고 석궁을 맞은 판사도 손으로 배를 가린 채 씩씩하게 걸어나온다. 석궁을 맞지 않았다는 강력한 암시다. 그런 토대하에서 영화의 나머지 논리는 정당화된다. 하지만 만일 경비원의 증언이 맞다면, 애초부터 영화는 성립이 안 된다.

이 영화는 사법부에 대해 “미리 결론을 내놓고 재판했다”고 따지고 있다. 영화를 본 뒤 나는 혹시 정지영 감독이 애초부터 결론을 내놓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예술과 선동, 자유와 책임, 창작자와 수용자의 교활함과 어리석음 등 묵직한 주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단지 영화 자체보다는 그 이후의 진행과정을 통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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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