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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폐기, 미국과 한판 붙자는 건데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꺼내들며 한국 사회의 민심을 자극할 때마다 한·일 어업협정 폐기론이 등장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였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체결된 신(新)한·일 어업협정은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의 거센 비판을 등에 업고 한나라당은 정치적 호재로 활용했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신중했다.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던 2005년 정세균 열린우리당 대표는 어업협정 재협상론에 대해 “당 차원에서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2008년엔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폐기론을 주장하자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일 어업협정은 폐기 선언을 하면 그만이다. 제16조에 ‘어느 일방이 통보하면 6개월 후 종료된다’는 근거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도 협정 폐기에 나서지 않았다. 폐기 이후를 생각하면 고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일본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넘기자’고 나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양국 협상을 지켜보던 중국이 한·중 어업협정을 다시 시작하자고 요구하면 뭐라 할지 전후좌우를 다 살펴야 했다. 2010년 12월 한국의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을 놓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양국 어업협정에 따르면 이 해역에서 (한국 해경은) 자국 어선만 단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민주통합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사실상의 총선·대선 공약으로 꺼내들었다. 재협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권 뒤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국제적 신뢰 상실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우려한다. 현재 야당인 민주통합당이야 표심을 좇아 내질러도 부담이 덜할 수 있다. 폐기론 주장에 국익을 염두에 둔 전략과 고민까지 담겼는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그래서 묻고 싶다. 한·미 FTA 폐기 이후 미국의 무역보복조치가 불어닥치면 우리는 미국과 한판 붙을 자신이 있는가. FTA는 무산됐는데 몇 년 후 미·일이 FTA나 다름없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맺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국내 여론을 명분으로 한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권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으로선 적어도 이런 고민까지 챙겨 봐야 한다. 북한 변수 역시 중요하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강성대국 진입에 실패한 김정은 체제가 요동치거나 대남 강경책을 구사할 경우 한·미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FTA 파기로 불편해진 양국 관계가 잘 굴러간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은 요즘 정권을 탈환한 것처럼 들떠있다. 그렇다면 책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FTA 폐기론엔 폐기만 있을 뿐 폐기 이후의 국익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통합당이 총선·대선을 앞두고 눈앞의 여론을 의식해 폐기를 밀어붙인다면 무책임한 행보다. 중산층을 우(右)클릭하게 만드는 패착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집권을 하더라도 첫해부터 FTA 폐기론의 뒷감당을 하지 못한 채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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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