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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품 실미역은 아기상궁 차지

‘미역국 먹고 천장 쳐다본다’ ‘미역국 먹었다’는 속담이 있다. 각각 자기 할 일을 하고도(제대로 만든 국을 먹고도) 남에게 멸시를 당한다는 뜻과 어떤 직장에서 해임되거나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뜻이다. 왜 미역국을 두고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 그만큼 우리 식생활 문화가 미역국을 중요시해 왔다는 방증 아닐까.'본초강목'의 ‘미역’을 보니 “신라와 고려에서 나는 것은 잎이 가늘고 청흑색인데 기를 내리므로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여윈다. 고려에서는 미역국을 쌀뜨물에 담가서 짠맛을 빼고 국을 끓인다. 이 국은 조밥이나 멥쌀밥과 함께 먹으면 매우 좋다”고 적혀있다. ‘신라’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명나라 학자 이시진은 1590년 '본초강목'을 낼 때 자국까지 전해온 신라산 미역에 관해 전해들은 바를 기록한 것이 틀림없다.

신라에서의 미역 섭취 기록은 좀처럼 찾을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몇몇 등장한다. 고려 인종 원년(1123)에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바를 적은 '고려도경'에는 귀천 없이 누구나 즐겨 먹는 미역에 대해 언급하면서 오랫동안 먹으면 먹을 만하다고 했다.고려 왕실에서 소용되는 미역은 진공(進貢) 형태로 조달하기도 했겠지만 고려 왕실은 곽전(藿田·미역 따는 곳)을 자체 관리해 미역을 충당하기도 했다. 왕실 미역은 원(元)나라 황태후에게 보내지기도 했다.

조선왕조는 미역을 상곽(常藿·품질이 보통인 미역, 藿 또는 中藿이라고도 함)·조곽(早藿·일찍 따서 말린 미역, 햇미역)·분곽(粉藿·품질이 좋은 미역, 실미역)· 곽이(藿耳·미역귀, 미역대가리) 등으로 분류했다. 상곽은 강원도의 감영에서, 조곽은 강원도 간성·강릉·고성·삼척과 경상도 경주·기장·김해·남해, 그리고 전라도 강진·광양·낙안·진도·제주에서, 분곽은 강원도 강릉·고성·삼척과 경상도 기장·연일·울산·진주, 그리고 전라도 보성·순천·영암·장흥에서, 곽이는 경상도 고성·남해·사천·연일·웅천과 전라도 제주·진도에서 진공케 했다('여지도서(輿地圖書)', 1757).

(低潮線·24시간 중에 가장 낮은 물높이까지 빠져나간 때의 썰물 수위) 이하의 바위에 떼지어 붙어 사는 갈조류(褐藻類)에 속하는 바닷말인 미역은 가을에서 겨울 동안 자란다. 갓 돋아나는 동지 때에 따는 미역을 조곽이라고 했다. 허균도 '도문대작'(1611)에서 “삼척 것이 상품”이라고 했으니, 덜 자란 보드라운 미각은 강원도 것이 으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1423년(세종5)에도 명나라 사신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강원도민에게 미역을 바치게 했다.일단 진공된 미역은 선혜청(宣惠廳)에서 수합했다. 선혜청은 이것을 소물(素物)에 포함시켜 의영고(義盈庫)로 보냈다. 의영고는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거쳐 1000년 동안 소물을 맡아보던 관청이었다.

이 진공미역은 적절히 몇 군데로 분배해 사용했다. 첫 번째는 수시로 청구해 오는 명나라 황제의 요구에 응했다. 1429년(세종11)의 경우 명 황제에게 조곽 500근, 상곽 1000근, 분곽 300근, 곽이 300근을 합해 2100근을 보냈다. 두 번째는 중국 사신 접대를 위한 소선용으로 썼다. 세 번째는 궁중 식구들의 탄일날 사용되는 미역국과 일상 반찬으로 제공됐다. 네 번째는 궁중 내 출산부의 식이요법을 위한 식재료로 사용됐다.

중궁전에서 아기를 양육하는 아기상궁(阿只尙宮·유모상궁)에게 보낸 식재료는 쌀·두부제조용 대두콩·비누제조용 팥·대두콩·깨·대구·준치·조기·청어·건숭어·새우젓·밴댕이젓·황각·상곽·분곽·다시마·김·소금·감장·참기름·식초였다. 아기상궁이란 젖을 먹이는 상궁이니 좋은 유즙 분비에 각별히 신경 쓴 결과다.건미역 100g을 기준으로 봤을 때 당질(35.3%)과 무기질(30.8%)이 가장 많이 들어 있다. 이어 단백질(15.0%), 수분(13.0%), 지방(3.2%), 섬유질(2.7%) 순이다. 무기질 속에는 칼슘(960mg), 인(400mg), 철분(7mg), 나트륨(6100mg) 등이 들어 있다.

‘미역국 먹었다’는 속담이 나올 정도로 미역이 미끈미끈한 것은 점질 물질인 다당류 아르기닌산과 후코이딘 때문으로, 미역이 가지고 있는 섬유질은 변비 예방과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옛 사람들은 미역의 자세한 성분은 몰랐지만 오랫동안의 경험에 의해 뭉쳐 있는 혹을 다스리고 부기를 빠지게 하며 피를 맑게 해주는 미역의 탁월한 효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식(素食)과 일상식의 찬이 되고 임산부나 수유부의 필수품이 됐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귀 빠진 날에는 어김없이 흰쌀밥과 함께 미역국 한 사발을 먹는다. 여전히 산부와 수유부의 필수품이 되고 있으며 아기를 원하는 여성은 삼신(三神) 할머니께 흰쌀밥 한 그릇과 미역국 한 그릇을 놓고 빈다. 또 미역귀김치·미역무침·미역볶음·미역쌈·미역자반 등은 고려시대에 이미 궁중에서뿐 아니라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귀천 없이 누구나 즐겨 먹었던 음식이니, 미역은 기록으로만 보더라도 약 1500년의 세월을 면면히 동고동락해 온 신(神)과도 통하는 식품인 셈이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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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