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길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고영수, 어니언스의 옴니버스 앨범과 김현식 3집. 사진 가요114 제공
길은 늘 보일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점을 치겠는가. 과연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정해진 길이란 게 과연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서일 것이다. 명리학 공부를 꽤 오래 열심히 해서 웬만한 점쟁이들을 우습게 보는 내 친구는 인간에게 정해진 미래가 없다고 했다.

처음 사주 공부를 할 때에는 모든 것이 아주 명확하게 보여서 쉽게 단언하며 미래를 예언하곤 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미래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중 어느 요소가 강하게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조건이란 게 있으니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조건 안에서도 천양지차의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중가요 속의 길은 늘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고 보이지 않아 답답한 길로 노래된다.
“돌아가는 저 길에 외로운 저 소나무/ 수많은 세월 속을 말없이 살아온 너/ 돌아가는 저 길에 네가 좋아/ 나 여기 찾아와 쉬노라/ 철새들 머무는 높다란 언덕 위에/ 비바람 맞으며 홀로 서 있어/ 내 인생 외로움을 말해주렴아.”(어니언스의 ‘외길’, 1절, 1973, 김정호 작사·작곡)

1.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갯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후렴)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 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2.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 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후렴).”(김현식의 ‘가리워진 길’, 1986, 유재하 작사·작곡)

차분한 사색이 주특기인 포크의 특성상 꿋꿋이 서 있는 ‘소나무’에 위로받으려 하기도 하지만 혼자 인생길을 걷는 외로움은 창작자 김정호의 병색 짙은 얼굴과 절절한 목소리만큼이나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외길’은 어니언스의 ‘사랑의 진실’ 등과 함께 발표된 작품이다. 이후에도 김정호는 ‘작은 새’ ‘외기러기’ 등에서 쉴 곳을 찾아 혼자 헤매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처지를 끊임없이 노래했다.1980년대의 젊은이도 마찬가지였다. 유재하의 화려한 음악에도 불구하고 “그대여 힘이 돼주오”라고 간절하게 간구할 정도로, 자기 앞에 놓인 길은 오리무중이다.

남들이 각자 길을 떠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제 갈 길을 찾았나’ 하는 부러운 생각도 들고 혼자 남은 외로움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답답하고 외롭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원래 길이란 게 그런 거니까 말이다.심지어 확신 있는 표정으로 깃발 들고 나갔던 운동권 젊은이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종종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의 역사를”(‘길’, 김남주 작시, 변계원 작곡)이라고 확신 있게 노래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한 발 한 발 내딛기란 매번 얼마나 힘들고 불안했던가. 그러니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누가 나에게 이 길을’, 조호상 작시, 김성민 작곡) 같은 노래가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그리 확신도 없었고 지금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찌하다 보니 자기 혼자 맨 앞에서 깃발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이 황당함이란!

급기야 90년대 중반의 학생들은 화려한 록 사운드와 함께 이렇게 선언해 버린다. “길은 없다 청년이여/ 이제 그 누구도 열어주지 않아/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청년시대’, 장석주 작사·작곡). 겉으로 꿋꿋한 척해도, 길 앞의 불안함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GOD의 ‘길’, 1절, 2001, 박진영 작사·작곡)

겁 없이 막 사는 것처럼 보였던 신세대 ‘중딩’들도 이 노래의 진정성에 빠져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을 웅얼거리고 다녔다. 수십 년 동안 청소년들이 노래한 길의 고민은 너무나도 닮았다.나이를 먹으면 뭐가 좀 보이냐고? 천만에. 그저 살 날이 그리 길지 않아 고민을 덜하는 것일 뿐이다. 뭔가 아는 척 폼 잡고 있지만, 젊은이들이여 믿지 마라, 그거 다 ‘뼁끼’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 대중가요 관련 저서로『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광화문 연가』등이 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