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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조바고’ 납신다, 무대 살리러

구원투수 등판이 임박했다. 250억원짜리 초대형 뮤지컬 ‘닥터 지바고’ 얘기다. 한국·미국·호주의 유명 프로듀서가 공동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올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혀온 작품이다. 개막 직전 주지훈의 갑작스러운 하차로 위기를 맞았지만 뮤지컬계 최고의 블루칩 조승우가 뒤늦게 합류를 결정해 상황이 반전됐다. 1월 27일 개막 이후 ‘가창력 종결자’ 홍광호가 단독 주연으로 이끌고 있는 무대는 대체적으로 밋밋하다는 평이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상황에 휘둘리는 역사의 목격자로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유리 지바고’의 캐릭터가 강렬한 존재감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14일부터 공연에 나서는 ‘카리스마 지존’ 조승우의 등판에 구원을 점치는 이유다.

원작의 심오한 깊이까지 무대에 요구한다면 지나친 욕심. 비약과 함축을 전제로 시청각적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뮤지컬의 본질이라면 이 무대 자체는 성공적이다. 방대한 원작이 무대에 잘 압축될까 싶지만, 오마 샤리프 주연의 4시간짜리 영화(1965년작)보다 오히려 압축이 잘됐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미묘한 심리를 에둘러 표현하는 원작을 이해가 쉽고 공감이 잘 되도록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영화에서 납득하기 힘들었던 라라와 파샤, 코마로브스키의 행동들은 각각 동기를 드러내는 명확한 장면들로 설득력을 부여받았다. 전쟁의 와중에 불륜에 빠지는 유리와 라라 두 사람의 감정을 제3자의 편지를 통해 교류하는 반복 기법도 유리가 시인임을 감안한 영리한 압축의 묘수로 보였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두 축을 확실하게 세워 양쪽을 오가는 빠른 전개는 장황한 드라마에 긴장감을 유지해 줬다. 원작의 스케일이 거대한 만큼 유리와 라라가 인연을 맺는 주요 장면 위주로 전개된다. 인연의 조각 사이사이에서 전쟁을 묘사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우유부단한 의사이자 고뇌하는 시인 유리에게 마초적 매력이 결핍된 대신 라라에 대한 파샤의 분노에 찬 사랑과 코마로브스키의 강한 집착이 임팩트를 준다. 전투 장면에서 군가풍 합창을 박진감 있게 소화해 내는 앙상블은 가슴을 뛰게 한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대사가 객석의 호흡과 어긋나 1막에선 간간이 실소가 터지기도 하지만 2막의 공들인 장면들은 버릴 것이 없다. 5중창 ‘Love Finds You’는 엇갈린 다섯 남녀의 사랑과 분노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명장면이다. 삼각관계만도 심란한데 5명이 얽히고 설킨 감정의 실타래는 자칫 산만하기 쉽지만, 저마다 애처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은 덕에 리얼한 인간적 감동으로 다가왔다. 빨치산 캠프를 탈출해 전장을 헤매는 클라이맥스 장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극한에 처한 개인의 고통을 노래하는 솔로곡 ‘Ashes and Tears’는 도무지 튈 일이 없는 유리의 캐릭터를 노래로 살려준 뮤지컬만의 미덕이 됐고, 홍광호의 호소력 짙은 음색은 제몫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감수성 충만한 시대의 목격자라는 연약한 정체성으론 서정적 흐름보다 강렬한 ‘한 방’을 찾는 한국 관객의 눈에 들기에 역부족이다.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유리 지바고 캐릭터에 극적인 보완으로 힘을 실어줄 묘수가 더 필요하다. 라라를 떠나보내고 싱겁게 죽음을 맞는 엔딩 부근에 그 여지가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만나 심장이 마비되는 영화의 엔딩은 아니더라도 이별 장면에서 다시 한번 힘을 주는 마무리는 어떨까. 애절한 사랑을 부르짖는 솔로로 마지막 절정을 보여준다면 사랑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여운이 길어질 터다. 캐릭터의 태생적 약점을 가리고 주인공을 부각시킬 연출의 묘를 기대해 본다.




닥터 지바고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7년 발표한 장편소설.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전쟁 속 로맨스를 그려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으나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수상을 거부했다.1965년 영화화돼 5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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