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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겪은 일본인들에게 큰 의미

1 책에 둘러싸인 난조 관장의 사무실. 컴퓨터에 붙여 놓은 ‘I □ Judd’ 스티커에 대해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를 좋아한다. 빨간 네모가 시각적으로 하트로 읽히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은 지금까지 사회를 위해 그려온 미래상을 재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상적 사회를 탐구해 온 이웃나라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중요한 참고가 될 겁니다.”

모리미술관(森美術館) 난조 후미오(南條史生ㆍ63) 관장의 말이다. 이불 개인전을 계기로 그와 따로 만났다. 3일 모리타워 50층 집무실에서다. 넓지 않은 사무실은 그림 한 점도 없이 책으로 가득했다. 공간이 답답하지 않은 것은 등 뒤 통유리창으로 도쿄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 접견실엔 물방울 무늬의 핑크색 강아지, 빨간 상자가 놓여 있었다.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현대미술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아트 상품이다. 이날 맨 넥타이도 회색 바탕에 검은 물방울 무늬였다.

질문에는 망설임 없는 유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커미셔너, 98년 영국 터너상 심사위원, 2006ㆍ2008년 싱가포르 비엔날레 아트디렉터 등을 지낸 ‘스타 큐레이터’의 내공이 느껴졌다. 취미를 묻자 “요즘 오래된 검은 포르셰를 몰고 있다”고 말했다.

2 모리타워의 야경. 모리미술관은 이 건물 53층에 있다.
-이불 외에 관심 있는 한국의 미술가는.
“최정화와 여러 번 일했다. 모리미술관 밖 롯폰기힐스엔 최정화의 ‘로보로보로보’라는 로봇 설치작품도 있다. 미술관에선 서도호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잘 알릴 수 있을까.
“모리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라, 하하. 미술관 간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동급 작가들끼리의 교류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일이니까.”

-연간 관람객이 200만 명에 달한다.
“많은 꼼수가 있다, 하하. 미술관 바로 아래층에 전망대가 있어서 사람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입장권을 사 갖고 온다. 평소 미술관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전망대에 온 김에 현대미술을 본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미술관에 방문하도록 교육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관람객을 늘리려면 난해한 현대미술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피카소, 인상파 같은 것 위주로 전시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어렵지 않다. 어렵다는 건 사람들의 생각이다. 아들이 프랑스에서 자랐는데, 하루는 교사가 인권에 대한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냈다. 뭘 그릴까? 헌법? 정부의 인권 문제? 아이는 신문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을 때리는 이미지를 보고 그걸 오려 붙이고 문구를 적었다. 개념미술 같지 않나. 그렇게 어려서부터 시각적 표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배운 아이들은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일본은 지난해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천재지변, 경제침체, 양극화 등 이 어려운 세상에 미술이 무슨 힘이 있을까.
“(긴 한숨 끝에) 나도 그걸 알고 싶다. 예술에 무슨 힘이 있을까. 아트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아트는 철학이다. 구체적으로 뭔가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쓰나미로 흘러간 집에서 살아남은 남자애가 있었다. 커서 뭐가 되려느냐 물었더니 예술가가 되고 싶다더라. TV에서 본 장면이다. 죽음과 삶의 체험을 하고 나니 ‘살아있을 때의 시간, 그것을 예술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예술이란 바로 그런 거다.”

-게이오대 경제학과를 나와 다시 미학ㆍ미술사를 공부했다.
“단순히 말해 미술이 좋아서였다. 사람의 본질, 현실에 대한 통찰. 그런 면에서 넓게 보면 미술과 경제학은 결국 같은 걸 추구하고 있다.”

-간단히 답해 보자. ‘난조에게 미술은 □ 다’라고 말한다면.
(망설임 없이)“미술은 ‘무엇’이 아니라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을 더 창조적으로 만드는 게 미술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이들은 예술가다. 독일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가 이미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회를 바꾸는 것도 예술이다.”

-그럼 ‘미술관은 □다’라고 묻는다면.
“미술관은 미술에 대해 생각하는 플랫폼이다. 미술관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며, 큐레이터는 에디터, 미술은 미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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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