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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고 절망해도 계속 살더라, 그게 인간의 운명

전시장 모습
이불의 스튜디오는 서울 성북동 북악스카이웨이 아래 양지바른 산마루에 있었다. 크기가 제각각인 벤치와 니퍼, 각기 다른 모양의 자그마한 반짝이, 수십 개 플라스틱 실패에 감겨 있는 각종 미니 쇠사슬이 잘 정리된 철물점을 연상케 했다. 설 전날 출국해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6일 밤늦게 귀국했다는 그는 “이제야 홀가분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전시를 개막한 소감은.
“나이도 젊은데 회고전이라 붙이긴 부끄럽고요. 보여줄 만해서 보여준다기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었어요. 사실 그때그때 작업하고, 전시하고, 바로 컬렉션으로 가면 다시 보긴 어렵거든요. 각국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에게 연락했는데, 못 빌린 것도 있고 뺀 것도 있죠. ‘히드라’ 시리즈는 너무 커서(높이가 6~8m) 제외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다 모인 건 처음이에요.”

유령 Apparition’(2001). 300x100x150㎝. Photo: Atsushi Nakamichi/ Nacása & Partners.Courtesy: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다시 보니 느낌이 어떤가요.
“당시엔 열심히 했지만 지금 보면 부끄럽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초기에는 오로지 알 수 없는 에너지와 저항하려고 하는 힘밖에 없었죠. 단계단계 발전시켜 왔는데,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지도는 없는 거죠. 그런데 지금 보니 상당히 지도를 그리면서 왔더라고요. 그렇게 부끄럽게 살진 않았구나, 이런 생각을 조금은 해요.”

-결국 무슨 얘기를 해온 겁니까.
“20년 전엔 제가 뭘 하는지 스스로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작품들을 죽 보니 아, 내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옛날엔 사회적 이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줄 알았죠.”

작품 ‘사이보그’ 앞에 서 있는 이불 작가.
-그 ‘인간의 조건’이란 게 무엇입니까.
“저는 인간이 조건과 한계와 운명에 저항하는 방식이 어떤 이미지로 표현되는가, 그것을 온전한 양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간은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듭 반복해 왔어요. 그런데 실패하면 절망하고 삶을 그만두는가-. 그런데 계속 살잖아요. 뭔가 다시 힘을 발휘하거든요. 저는 그 역학관계를 찾아냈어요. 인간은 실패한 것들을 다른 곳, 일종의 미지의 영역으로 넣어버린다는 것을. 실패해서 다시 보기 싫은 점도 있지만 뭐 달리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상대적 개념을 만들어 반대편 빛의 세계에 끝없는 희망을 기대하며 에너지를 공유합니다. 그게 인간의 운명일 테죠.”

-힘을 갖고 싶었나요.
“힘을 갖는다기보다 불편함, 고통, 불합리에 대한 저항이었죠. 사회제도는 물론 아름다움 같은 기존 관념에 대항하고 싶었어요.”

-저항하는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분노요. 20대가 맞닥뜨리는 것은 자기가 만들지 않은 세계잖아요. 부조리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내가 한 건 아닌데. 그럼 여기서 나는 뭘 해야지? 이걸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작업 초기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해선 생각이 달라졌어요. 설사 세상이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계속해서 그 노력은 이뤄져야겠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그 좌절과 실망감에 대해서라도 언급해야 합니다. 출구가 없을 때는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적극적 행위고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일 텐데 왜 예술을 택했나요.
“80년대는 격동기였죠. 사회구조적으로 계급이 나뉘어 있고 진입이 불가능한 사회였고요. 예술은 그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계급에 속하지 않아야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노하다 보면 금세 지치지 않나요.
“해결되지 않으니 지칠 수밖에요. 건방진 얘기지만 미술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으니까. 그렇게 1년여를 보냈는데, 어느 날 방 청소를 하다 보니 뭘 잔뜩 만들어 놨더라고요. 일기처럼. 절망하고 좌절하면 논리적으로 멈춰야 하는데 나는 뭔가 생산하고 있었다니, 역설이죠. 나는 이걸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드로잉을 매우 성실하게 한다면서요.
“10년 동안 자고 일어나면 무조건 생각나는 것을 그렸어요. 영감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한다는 것, 그리고 벽에 붙여 놓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면서 발전시킨다는 것이 중요했죠.”

그의 작품에는 유독 반짝이는 작품이 많다. 구슬, 거울, 유리, 크리스털, 찰랑이는 쇠사슬 등을 자주 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소재를 고집하진 않는다. 소재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매체를 찾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구슬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남다른 데가 있다.

“연좌제 때문에 부모님이 취직할 수 없으셨어요. 어머니가 집에서 동네 분들과 구슬 꿰는 가내수공업을 하셨죠. 오만가지 색을 보며 자란 덕분에 그때 제 컬러 감각이 형성됐다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흔히 비즈나 구슬이 사치나 소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게 불쾌하더라고요. 그렇게 소비되기까지 그 안에 숨겨진 노동의 의미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크리스털의 경우도 ‘그냥 예쁘다 샹들리에 같아’ 하고 끝낼 게 아닙니다. 근대 초기의 많은 건축가가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투명한 크리스털 궁전을 제안했었죠. 하지만 당시엔 그런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지막지한 콘크리트를 사용했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곳곳에 투명한 유리빌딩들이 지어지고 있잖아요. 그런 흐름이나 역전 현상이 제겐 무척 흥미롭습니다.”

-비추거나 비치는 것에 관심이 많군요.
“그런 조각들의 무수한 반사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나요.
“많은 사람이 여러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추구해 왔죠. 결과적으로 디스토피아가 되는 경우도 너무 많았잖아요. 자기 확신에서 이상향이라고 제안하지만, 결국 인간의 오만함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유토피아’ 시리즈는 이상향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이상향을 제시했던,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거나 실패한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제가 이상향을 제안할 수 없다는 걸 이젠 느껴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제 삶의 의미랄까 저항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죠.”

-일본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촉수물이나 ‘기동전사 건담’의 이미지가 느껴지는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미지를 갖고 설명할 때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는 것 같아요. 일본의 대중문화는 하이테크놀로지를 잘 구현했죠. 지금은 너무나 불안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

-모리미술관이 왜 당신을 택했을까요.
“제 생각인데, 지금 일본 같은 경우 쓰나미·지진·핵 때문에 인간의 오만에 대해, 또 이상을 꿈꾸는 행위에 대해 매우 진지하면서 큰 질문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아마 전시가 몇 년 전에 열렸다면 완전히 의미가 달랐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산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든 게 다 잘되던 때였으니까. 이제 한 인간이 질문을 던지고 그것으로 고민하는 것에 대한 게 관객에게 먹힐 것이다, 더 적절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질문도 많이 받으셨죠.
“이런 시점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등 무거운 질문이 많았어요. 저는 먼저 한숨을 깊게 쉬었죠. 그리고 말했어요. 그것은 항상 제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고, 그걸 모색하는 과정의 흔적이 저 작품들이라고요. 아직도 희망적인 대답은 못 찾고 있지만 어쨌든 그런 질문을 계속하겠다고요.”

-전시장 마지막 코너의 신작 ‘비밀 공유자’가 압권입니다.
“제 야심작이죠. 15년간 키우던 황구가 있었는데 2년 전쯤 죽었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옆에 앉아 창밖으로 시내를 보다가 어느 순간 먹은 걸 토하더라고요. 알아봤더니 개들은 자기가 먹은 걸 소화시킬 수 없을 땐 이파리 같은 걸 먹고 일부러 토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그 개는 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냈던 거예요. 이 의미와 모습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센티멘털한 시선을 거두고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거기에 살아온 궤적과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밤에 보니 도쿄의 화려한 야경에 전혀 밀리지 않고 빛을 발하더군요.
“그 방에서는 세상 꼭대기에서 현대 도시를, 모던을 바라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작가가 설치를 원했는데 큐레이터가 말렸대요. 도시가 갖는 어마어마한 파워 때문에 작품이 힘을 잃을 거라면서. 저는 그럼 도시와 싸우지 말고 풍경까지 작품으로 끌어들이자 생각했죠. 전 세계가 크리스털화되면서 인간까지 몰락한다는 SF소설 ‘크리스털 월드’를 떠올렸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한 메시지가 나온 거죠. 단순히 토하는 게 아니라 처절히 부서지는. 이 방의 유리창을 완전히 오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래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은 거라 생각해요.”

-작업에 가장 도움을 준 사람은.
“제가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데, 남편이 무수한 영감과 심리적 안정을 주었어요. 사실상 2인전입니다.”

-다음 작업은 어떤 것입니까.
“준비하면서 절대 다음 일을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저도 모르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당신에게 미술은 무엇입니까.
“그걸 답하는 순간부터 제가 제 발등을 찍을 것 같네요. 한 가지 아닌 것은 압니다. 예술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저는 예술을 추구했던 적은 없습니다. 어떤 추구의 결과로 흔적처럼 나왔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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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