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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새 음반 『올드 아이디어스』로 돌아온 77세 레너드 코헨

‘I’m Your Man’ ‘Suzanne’ ‘Bird on the Wire’ ‘Famous Blue Raincoat’….

 ‘음유시인’이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데, 그 안에 담긴 미묘한 멜로디와 시어(詩語)로 귀 기울이게 하는 사람.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가수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코헨 얘기다. 그가 돌아왔다. 새 음반 ‘올드 아이디어스(Old Ideas)’를 들고서. 팔순을 앞둔 나이, 만 77세에 말이다.

 이번 음반은 정규앨범으로는 8년 만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의 신문은 물론 주간지 타임(TIME) 등 많은 미디어 매체가 그의 근황과 새 앨범에 대한 리뷰 기사를 앞다퉈 실었다. 최근 미국 뉴욕의 이스트빌리지, 새 음반을 소개하는 자리에 나타난 그가 “나 말이오, 양복을 차려입은 게으름뱅이에 불과하지”라며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리는데도 기자들은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왜? 레너드 코헨이니까.

이은주 기자

 

1934년생인 코헨은 캐나다 몬트리올 퀘벡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0대에 어쿠스틱·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의 작품에 심취했다. 대학(맥길대)에서는 학생 토론회(Debating Union) 회장을 지냈고, 대학 졸업 전인 스물두 살의 나이에 첫 시집을 발표했다. 맥길대 로스쿨,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등을 다녔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만뒀다. 시와 소설 창작에 매달리다가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주디 콜린스는 66년에 그의 곡을 가장 먼저 부른 아티스트로, ‘Suzanne’은 콜린스의 음반에 먼저 수록됐다. 이후 코헨은 시인의 기질을 살려 낭독시와 같은 음악을 만들었고, 철학적이고 신화적인 은유와 상징을 담은 노랫말로 주목받았다. 그에게는 문학을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코헨은 지난 50년간 마약(drug), 술, 여자, 그리고 여러 개의 종교를 전전했다. 그에 따르면, 자기회의(self-doubt)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마약은 약물에서부터 정신적인 것까지 다 해봤다고 말한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을 복용한 적도 있다. 프로작은 한때 최고의 기분을 선사했으나 성욕을 앗아갔다. 그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마약으로 좌선(坐禪: 고요히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꼽는다. 한편 많은 여성들과의 염문으로도 유명한 코헨은 항상 여성들과 “플라토닉한 관계였다”고 주장해왔다. 10년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를 가리켜 ‘레이디즈 맨’(바람둥이)이라고 쓴 기사를 보며 웃고 말았다. 뭐가 웃기는지 아는가. 그런 명성을 갖고 있는 사나이가 실제로는 숱한 밤을 홀로 보낸다는 거다. 하도 씁쓸해서 웃었다”고 말했다.

 코헨은 자신을 “소유 개념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은행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며 살아왔단다. 덕분에(?) 몇 년 전 파산 지경에 이르는 위기를 겪었다. 은퇴를 준비하던 그는 96년과 2001년, 자기 음악의 저작권을 소니뮤직에 모두 팔고, 대가로 받은 1000만 달러를 매니저에게 맡겼다가 모두 날렸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돈을 받지는 못했다. 빈손이 된 그는 음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 중요한 것은 돈 잃고 음악을 새로 시작한 일 자체가 코헨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0~15년 동안 은둔자처럼 살아왔다.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와야 할지 망설였다. 글은 계속 써왔지만 그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했다.” 음악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는 얘기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에 나온 ‘올드 아이디어스’를 가리켜 “가을색(秋色)의 음반”이라고 소개했다. 삶의 기억을 쓰다듬는 노시인의 스산한 내면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평생 매달려온 주제, 즉 사랑·욕망·배신·용서·구원 등에 대한 사색은 더욱 깊어졌고, 읊조리는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이번에 기자들을 만난 코헨은 ‘은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만들어 놓은 곡이 다음 앨범을 채우기에 충분하다고만 했다. 언제까지 음악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언젠가 때가 오면 돌아간다네, 어머니와 같은 대지로….”

j 칵테일 >> 그가 만든 곡 ‘할렐루야’ … 갈수록 인기 높아져

레너드 코헨의 곡 중에서 뒤늦게 급부상한 곡 중의 하나가 1984년에 발표한 음반 ‘배리어스 포지션스’에 수록된 ‘할렐루야(Hallelujah)’다. 그가 처음 불렀을 때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91년 존 케일이 리메이크해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뉴욕 타임스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이 곡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200명의 가수가 각기 다른 언어로 불러 녹음했다”고 전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08년까지 이 곡이 수록돼 판매된 음반이 500만 장을 넘는다. 2008년 말 영국에서는 두 가지 다른 버전의 곡이 인기차트 ‘Top 10’ 가까이 올랐다. BBC는 ‘할렐루야’가 애니메이션 ‘슈렉’을 비롯, 수많은 영화와 TV프로그램에 실린 것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곡은 지금도 미국의 아이돌 스타를 포함해 많은 가수에 의해 계속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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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