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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 女변호사 "우울증, 성폭행 아닌…"

“버지니아 울프처럼 익사하고 싶어요. 나는 요절하고 싶어요. 화려하게 죽고 싶다고요!!”

 그는 절규했다. 극심한 우울증이 삶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했고, 20대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 후로 20년.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워첼(45)은 현재 뉴욕의 변호사다. 왕성하게 책을 쓰고, 페미니즘 전문가로도 이름이 높다. 우울증과의 싸움에서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이 모든 얘기가 남의 얘기처럼만 들리는가. 어쩌면 현대인은 마음의 병에 너무 무관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 체념했거나…. 자신의 슬픔과 분노, 외로움에 한순간도 순응한 적이 없는 보통의 싱글녀, 워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오후 11시쯤이 가장 좋겠다고 했다.

글=이소아 기자


●늦은 시각인데 괜찮나.

 “전혀 상관없다. 보통 자정이 넘어서 잔다. 늦은 밤에 TV를 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한다.”

●방금 전에도 TV를 보고 있었나.

 “지난해 ‘타임(TIME)’지를 보고 있었다. 타임이 뽑은 지난해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은 ‘시위자들(protestors)’이다. 흠…정말 흥미롭지 않나? 한국에도 시위자들이 많나? 주로 무엇에 대해 시위를 하나?”

 한밤중이었는데도 목소리는 높고 카랑카랑했다. 그녀가 쓴 책들은 유난히 표현이 과격하고 거침없다. 우울증 회고록이자 극복기인 『프로작 네이션(Prozac Nation)』과 새로운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비치(bitch):나쁜 계집』은 출간되자마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치』라는 제목과 달리 정작 그녀는 아주 친절했다.

●20대까지 우울증으로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 기분이란 게 원래 기복이 있지 않나.

 “맞다. 살면서 희로애락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감정이나 느낌, 반응, 흥미가 전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로 평생을 사느니 그냥 죽고 싶은 거다.”

●이제 완전히 나은 건가.

 “우울증은 개선될 수는 있지만 100% 없어지진 않는다. 나도 어떤 때는 좀 나아지다가도 다시 심해질 때도 있다. 이건 정말 ‘평생에 걸친 전쟁’ 같다.”

●우울증은 한국에서도 큰 이슈다. 자살하는 연예인도 늘고…. 왜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 많은 걸까.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 사이가 멀어진다고 본다. 인터넷이 우울증에 한몫하는 거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울려서 지내는 시간을 줄이고 아주 외롭게 만들어 버린다.”

●무슨 소리인가. 페이스북(facebook)은 인터넷으로 4.7단계만 거치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거의 잘 모르는’ 사람은 수천 명이 넘을지 모르지만 ‘정말 잘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나. 내가 정말 우울할 때 곁에서 위로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되나. 정말 서글픈 일이다. 누구든 진정으로 ‘당신을 아는’ 사람이 중요한 거다.”

●돌이켜보면 당신이 겪은 우울증의 진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뭔가 아주 나쁜 일을 겪어야만 우울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일 때문에 우울해지면 적잖이 당황한다. 우울증은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아주 심하게 얻어맞거나, 세 살 때 성폭행을 당해야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그저 좋지 않은 타이밍에 좋지 않은 일들을 맞닥뜨린 거다. 당신은 아주 작은 것을 계기로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고, 또 아주 작은 계기로 바른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우울증, 어떻게 극복했나.

 “난 언제나 누군가 꼭 나를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모두가 감당하기 어려워해도 ‘나 좀 도와달라’고 발악을 했다. 의사들은 늘 ‘이보다 더 나은 약이나 치료는 없다’고 했지만 나는 희망이 있었고, 나아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조금씩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한다고 들었다.

 “맞다. 아주 큰 로펌은 아니고 전일(full-time) 근무를 하지도 않는다. 운 좋게도 아주 좋은 상사를 만났다. 내가 우울증 전력이 있다는 걸 알고 날 고용했기 때문에 계약 내용도 좀 다르다. 물론 일반적인 뉴욕의 변호사들은 일을 극단적으로 많이 한다. 한국에도 워커홀릭이 많다던데? 미국 로펌 서울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놀랍다.”

●변호사는 왜 하게 됐나.

 “법 자체보다도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법이 적용되는 게 재밌다. 책을 쓸 때나 기고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지금 맡은 일은 캘리포니아의 ‘동성애 결혼’ 사건이다. 게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농구 선수가 농구리그를 고소했는데 그 선수를 변호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들은 다른 나라보다 더 할 일이 많다(웃음). 아무래도 미국 법원이 다른 곳보다 더 창의적인 것 같다.”

워첼은 똑똑한 학생이었다. 우울증으로 자해와 약물중독, 돌발행동 등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지만 하버드대에 들어갔고, 재학 시절 ‘하버드크림슨’과 ‘댈러스 모닝뉴스’에 글을 썼다. 1986년에는 롤링스톤 대학 언론상을 탔다. 졸업 후에도 뉴요커와 뉴욕 타임스 등에서 편집자와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그는 “난 내 상태를 관리하는 법을 알았다. 안 좋아질 때를 대비해 기분이 좀 나아지고 몸이 괜찮아질 때 모든 걸 다 해 놓는 거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우울증 전력을 낱낱이 책으로 공개하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인생을 쓰는 거니까. 창작이 어려운 거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요즘엔 페미니즘을 한물간 용어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럼 새로운 건 뭔지 묻고 싶다. 페미니즘을 대체할 만한 게 뭔지 말이다. 한국이 얼마나 힘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통받고 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적어도 여성들은 아니다. 모든 남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인류의 절반만이 모든 주도권을 쥔 결과 이런 비극이 생겼다는 얘기다.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가 모두 필요하듯, 모든 것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할 때 훨씬 결과가 좋다.”

●그런데 결혼은 안 하나.

 “보다시피 여전히 싱글이다. 결혼에 반대하지 않지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신문에서 재미있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25세 신부에게 왜 결혼을 이렇게 일찍 했느냐고 물으니 ‘35세까지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더라. 내 눈엔 그녀가 35세에 이혼할 가능성이 더 많아 보였다. 남성도 여성도 결혼 전에 충분히 성숙해져야 한다.”

 워첼은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번엔 결혼이라는 제도를 의심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제목이 『아니오(I don’t)』다. 이 제목은 결혼서약 때 ‘○○○를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란 질문에 ‘네(I do)’라고 답하는 결혼서약을 비꼰 것이다.

 “혼자 사는 게 최선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니 한국 여성들에게 독신을 권할 수도 없다. 어쩌면 ‘타협’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타협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독신은 외롭다. 아마 내 인생은 외로울 거다(웃음).”

●설마 뉴욕에서도 ‘노처녀’라고 눈치를 주나.

 “하하하. 여기서도 마흔이 넘어가면 약간 예외적으로 본다. 하지만 30대에 처음 결혼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이제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국은 어떤가.”

●독신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

 “건강이다. 자신을 스스로 좀 더 소중히 돌볼 줄 알아야 한다. 행복해지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력, 즉 직업이다.”

●당신에게 행복이란 뭔가.

 “내 마음의 평화다. 때론 세계평화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머리와 마음이 평화롭다면 정말 행복하고 멋질 것 같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었겠다.

 “지난해 9월께 너무 아파서 10㎏이 빠졌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직장에도 복귀했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 모두 편안한 밤 되시길. 굿 나잇(Good Night)!”


우울증 앓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

우울하지 않은 척하며 감추지 마세요
의학적 병 … 치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프로작(Prozac)’은 한 시대를 풍미한 약이다. 1970년대 미국의 일라이 릴리사가 개발한 이래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적의 알약’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엘리자베스 워첼은 약을 복용하며 우울증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 약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성분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삶을 마주하려는 본인의 ‘의지’란다.

●우울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열쇠가 없는 짐승의 우리다. 거대한…검은 파도나 안개 같기도 하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우울증이 찾아온 첫 계기는 뭐였을까.

 “아마 부모님의 이혼이었을 거다. 내가 두 살 때 이혼하셨는데 어머니는 어떤 때는 사랑이 넘치다가 어떤 때는 차가운 독재자가 됐다. 아버지는 결국 가족을 버렸다. 지금도 플로리다에 사는 어머니와는 대화를 많이 하지만 아버지와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자살 시도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죽으려고 했을 때, 얼마 뒤에 대학교 수업에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웃음). 죽기를 원치 않는다는 걸 분명히 깨닫게 된 거다. 난 기묘한 방법으로 내 우울증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우울증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내 고통뿐이라고 느꼈다.”

●부모님도 힘드셨겠다.

 “어머니는 내가 울면 같이 울었다. 그리고 ‘엘리야, 네가 불행하단 걸 절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창피한 일이고, 내 미래에 장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우울증은 절대 감춰선 안 된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들이 다 겪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울하지 않은 척하는 게 창피한 일이다.”

●아직도 프로작을 복용하나.

 “지금은 다른 약을 먹는다. 그중엔 신경안정제도 있다. 약을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전문가와 함께 내 상태를 더 낫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건 중요한 일이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첫째, 환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해서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실제로 아주 괜찮은 치료법이 많고, 그중에 뭔가 하나는 분명 당신에게 맞아서 효과가 있을 거다. 둘째, 가족들은 의사 노릇을 해선 안 된다. 우울증은 병이지, 단순히 ‘기분이 안 좋은 것’이 아니다. 가족들이 대화로 고칠 수 없다. 신장이나 간이 안 좋은 것처럼 오직 의사나 심리상담치료사만이 이 병을 고칠 수 있다.”


‘섹스앤더시티’ 뺨치는 워첼의 말말말

워첼의 말들은 당장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 번외편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뉴욕에 사는 30~40대 여성들의 삶을 솔직하게 그린 이 TV 드라마는 1998년 처음 방영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음은 싱글 여성들의 삶과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그녀의 말말말.

▶ “여성에게 독신으로 남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선고일 뿐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독립적이고 굳건하고 때론 고독해 보이지만, 남자 없는 여자들은 그저 고독할 뿐이다.”

▶ “여성의 인생은 시간의 노예 같다. 남자들에게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젊을 때 짝을 찾지 못하면 평생 배우자를 찾기 힘들어진다. 심장이 고동치고 있어야 할 가슴속에 째깍거리는 시계를 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남자들은 모른다.”

▶ “여자가 금성에서 오고 남자가 화성에서 왔다면, 화성인에게 말 거는 법을 배우려 드는 쪽은 언제나 금성인이다.”

▶ “여기에 세상 어떤 사람보다 착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가 ‘난 자유롭게 내 인생을 살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람은 그녀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얼마나 드세고 이기적인지 떠들어댈 것이다. 저 ‘비치(bitch·나쁜 여자) 좀 봐!’라고.

▶ “페미니즘은 누가 설거지를 하고, 누가 빨래를 갤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감정’이다.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 갈지, 내가 혹시 바가지를 긁는 건 아닌지, 남자를 지치게 하는 건 아닌지, 권태기는 아닌지….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건 모두 여자의 일이다. 페미니즘은 이런 지옥처럼 피곤한 감정의 불균형에 대한 문제다.”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지켜가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세상과 타협해선 안 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인 척해야 하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그동안 수없이 해봤지만 언제나 실수였고, 결국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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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