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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기타 치던 내가 자전거 페달 밟는다 느리게, 느리게 세계의 도시 떠돈다

예술가가 여행하는 법
데이비드 번 지음
이은선 옮김, 바다출판사
411쪽, 2만2000원


제목만으로 보면 거창하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예술가의 여행법은 이렇게 수준이 높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토킹 헤즈’의 리드 싱어로 유명한 데이비드 번의 자전거 여행기. 코스모폴리탄인 저자가 세계 여러 대도시를 자전거로 주유한 기록이다.

 예술가의 여행이 ‘거창’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의 예리한 시선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아름다운 풍광이나 관광명소가 아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도시의 내적인 일상과 리듬,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도시인의 삶과 욕망이다. 그에게 도시가 매력적인 탐구 대상인 이유는, 개개인이 아닌 ‘우리’라는 사회적 동물의 가장 뿌리 깊은 믿음과 무의식이 드러나는 곳인 까닭이다.

데이비드 번
 그의 시선을 벼린 것은 자전거다. ‘걷는 것보다 빠르고 기차보다 느리며 사람들보다 좀 더 위에 있는 위치’ 덕을 봤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도시를 자전거로 지나가는 것은 전 세계로 광활하게 퍼져 있는 신경 회로를 항해하는 것인 동시에 한 무리의 집단 심리 속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도시를 느린 시선으로 관찰한 그의 사색은 넓고 깊다. 정치와 사회, 문화와 예술, 세계화의 폐해 등을 넘나들며 촌철살인의 일격을 쏟아낸다. 세계 도시 곳곳에 판박이처럼 솟아오르는 마천루를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거대한 개념 예술 프로젝트’라고 비꼰다. 개성을 잃어가는 도시에 대한 안타까움을 돌려 말한 것이다.

 뉴욕의 정전에서는 자못 심오한 의미를 찾아낸다. 전력 공급이 재개된 뒤 주택지구와 브루클린 일부는 불빛으로 반짝이지만 이스트사이드 남쪽은 여전히 암흑 천지인 모습에 “전력도 정치”라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미국의 패권에 대한 신랄한 조소도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다. 교통 통제로 자전거 통행이 어려워지자 이렇게 말한다. “제국의 등장은 도심 근처에 볼 일이 있을 때 바리케이드와 우회 차량 행렬을 피해서 뱅 돌아가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채프먼 형제와 데미안 허스트, 에이미 와인하우스, 비행 청소년, 광적인 축구팬이 연출하는 극적 충격과 경악할 만한 꼴불견의 세계, 반대로 전형적인 영국식 연미복을 입은 과묵하고 정중하며 완벽하고 꼼꼼한 호텔 도어맨이 공존하는 영국의 극적인 대조. 이를 그는 “앞면이 넓으면 뒷면도 넓을 수밖에 없다.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고, 뒷면이 있으면 앞면이 있는 것이다”라고 정리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그가 밟는 페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을 것이다. 문득 자전거를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의 이 문장이 떠오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김훈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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