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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피임 제친 인류 최대 아이디어 1위는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
존 판던 지음, 강미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456쪽, 1만6000원


피임, 하수도, 양자이론, 커피, 복지국가, 명예, 결혼을 한 권에 다루는 책이 가능할까. 백과사전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언뜻 연관성이라곤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한데 이 책에선 그렇게 했다. 원제가 ‘지상 최대의 아이디어: 인류를 변화시킨 50가지 위대한 발상’이기에.

 이전에 비슷한 책은 많았다. ‘세계를 바꾼’ 발명품·사건·인물·책·디자인 등을 50가지, 100명 하는 식으로 꼽은 책이 숱하게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은 별나다. 발명품과 제도, 과학이론, 관념을 아우르는 ‘아이디어’를 주제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아·연애 같은 추상적인 것에서 은행·자본주의·일신교를 거쳐 불·바퀴·문자·전화 등이 망라됐다. 이런 키워드만 일별해도 인류문명사를 관통할 수 있게 된다.

2010년 수천 명의 영국 네티즌이 선택한 ‘아이디어 랭킹 50’에는 여성해방 이념인 페미니즘(feminism)도 19위에 올랐다. 페미니즘이란 용어는 대담하게 더 나은 대우를 주장하면서 투표권을 요구했던 여성을 비하할 때 사용된 프랑스어 ‘feministe’에서 유래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독특한 서술방식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영국 최고의 지적 모험가로 꼽히는 지은이의 폭넓은 지식이 유감 없이 발휘된 덕분이다. 예를 들어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1위로 꼽힌 인터넷 항목에선 1960년대 냉전시대의 공포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면서 월드와이드웹(www.)과 하이퍼텍스트 전송 규약(http)의 ‘발명’을 설명한 뒤 임박한 ‘클라우드 컴퓨팅’의 개발까지 조망하는 식이다.

여기에 각주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합병한 ‘구글존’이라는 회사가 전 세계 인터넷과 미디어를 장악하는 가상현실을 그린 영화 ‘환상특급’, ‘논리폭탄’을 이용한 사이버 전쟁을 다루면서 82년 미국 CIA가 조작해 놓은 컴퓨터 통제시스템을 훔쳐간 구 소련에서 일어난 대형 가스관 폭발 사고를 예시하는 식으로 읽는 맛을 더했다.

 자, 그럼 사랑의 변주곡인 결혼, 연애, 피임의 순위는 어떻게 될까. ‘성관계의 무한경쟁을 종식시킨 낭만적 족쇄’ 결혼이 50위로 꼴찌다. 여기선 결혼이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업상의 거래로 변질되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서구에서 신앙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계몽주의 시대 들어서야 떠올라 자유와 자아실현을 가져다 준 연애의 별”은 33위를 차지했지만, 3위를 차지한 피임에 비하면 훨씬 순위가 낮다. 피임은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개혁자 메리 생어가 노동계급의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주창한 이후 60년대 피임약이 개발되면서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면서 여성의 사회진출 물꼬가 트이는 등 사회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아이디어 랭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인류학자·수학자·경제학자 등 학계 전문가 17인이 참여해 50가지 아이템을 선정한 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 투표로 순위를 정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랭킹은 영국 네티즌들의 의견에 불과한 셈인데 그렇게 치면 한자를 간결하게 만든 중국어 간자체가 29위에 오른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래도 “명예는 영혼의 속옷이다. 맨 먼저 걸치고 가장 나중에 벗는 속옷 말이다”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크나톤의 말이 인용된 ‘명예’가 45위로 꼽힌 것은 이 책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혜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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