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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연초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영국 일간지 파인낸셜 타임스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특집칼럼을 연재했고, 1월 말 열린 다보스 포럼의 주요 의제도 자본주의의 위기와 해법이었다. 지식과 경륜을 갖춘 인사들이 논하는 견해는 다채롭고 흥미롭다. 이들 견해의 공통점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가 지속되어서는 안 되나 이를 대체할 마땅한 대안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논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도국이 선진경제를 추격할 때나 유효한 제도라는 것이다. 무너진 지 20년밖에 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를 다시 거론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영국의 저술가 노먼 에인절(Norman Angell)은 당시 유럽의 베스트셀러였던 『위대한 환상(Great Illusion)』(1910)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제 전쟁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군국주의(militarism)는 끝났다고 했다. 19세기 후반에도 전신, 전화, 철도, 증기선 등 통신·운송수단의 혁명으로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고 상품 교역뿐 아니라 자본·인력의 국경 간 이동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처럼 각국 경제의 상호 의존도가 심화된 상황에서 상대방을 파괴하는 전쟁은 스스로의 피폐를 가져올 뿐이라고 단언한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세계는 제1차 대전으로 치닫게 되었으며 곧 이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상자를 낸 2차 대전으로 빠져들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20년 전 『역사의 종언』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인류는 오랜 사회문화적 진화를 거쳐 드디어 더 이상 좋은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그 시장경제 시스템이 오늘날 도마에 오르리라고 그는 상상하지 못했다.

 역사의 종언이란 없다. 태양이 식고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인류의 역사는 갈등하고 모색하며 진화를 계속할 것이다. 인생 70~80년은 자신의 시대에 일어난 일로 역사를 예단하기에 너무 짧다.

 시장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자극해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인류사회의 빠른 진보를 이루어낸 제도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의장이 최근 그의 글에서 적시했듯이 시장경제 체제는 지난 두 세기 동안 지구촌의 1인당 실질소득을 10배 증가시켰고 평균수명은 배로 늘렸으며 6배 이상의 인구가 지구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물질적 풍요는 다시 학술 연구와 예술 진흥을 가능케 했고 인류의 생활을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보다 풍요롭게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약 4반세기 동안 우리가 해온 ‘시장경제’에 대한 해석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시장의 원조 주창자인 애덤 스미스도 자유시장을 위한 정책과 기존 업자들을 위한 정책은 다른 것이라 했다. 그는 특정 상인단체나 기업집단이 추구하는 이익은 자주 공공의 이익과 상반되는 것이라 보았다. 따라서 그는 “기존 업계에서 나오는 어떤 제언도 신중하고(scrupulous) 때로는 경계심(suspicious attention)을 가지고 긴 시간에 걸쳐 검토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오늘날 시장경제의 문제점은 기득권을 가진 시장세력에 의해 시장경쟁의 룰이 왜곡돼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친시장’과 ‘친기업’을 자주 혼동해 왔다. 대기업 집단은 언론과 여론 주도층 그리고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정책과 제도를 그들의 경쟁력을 지속·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결정되게 함으로써 경제력 집중, 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심화시켜 왔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장경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주는 일이다. 시장이 신규 진입자나 중소업자들에게도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이 되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면서 국가정책과 경제제도는 시장권력의 영향력에 쉽게 포획될 수 있는 취약성을 늘 안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강해져야 한다. 공정한 경쟁의 법칙을 만들고 엄정한 집행자가 돼야 한다. 언론이 스스로 기득집단과 한패가 돼 운동장으로 뛰어들지 말고 관객석의 냉철한 비평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이 경계심과 의식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한다. 올해는 두 번의 중요한 선거가 있는 해다. 그 결과는 향후 4~5년뿐 아니라 긴 시간 한국 사회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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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