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새누리당 공심위원 된 공연계 ‘꼰대’ 박명성

박명성 대표
‘맘마미아’ ‘시카고’ 등을 제작한, 뮤지컬계 거물인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50)가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이 된 건 뜻밖이었다. 그가 정치권 주변에 있는 게 이상하다는 게 아니다.

 그는 전남 해남 출신이다. 지역색이 강한 인물이다. DJ 정권 시절엔 권력 핵심부 몇몇 인사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랬던 이가 ‘야권이 아닌 여권에?’라는 게 의외였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문득 ‘보수’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 대표는 어른을 잘 모신다. 힘이 세든, 약하든 관계없다. 그저 자기보다 나이 많으면 깍듯하다. 어른 잘 모신 덕을 보기도 했다.

 그는 30대 중반에 극단 대표가 됐다. 서열을 중시하는 연극계에선 풋내기였다. 버팀목이 필요했다. 극작가 고(故) 차범석(1924∼2006) 선생을 찾아가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차 선생이 전면에 나서자 복잡하게 얽힌 일도 풀렸고, 덩달아 박 대표도 연극계 주류가 됐다. 누군가는 “어른 내세워 호가호위 한다”고 깎아내리지만, 그의 진심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지금도 차 선생 유족을 친가족 이상으로 챙긴다.

 그는 서울예대 무용과를 나왔다. 배우를 꿈꿨다. 조연출도 잠깐 했다. 하지만 끼도 재능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기획 일을 했다. 말이 기획이지, 고(故) 김상열(1941~98) 연출가의 ‘가방 모찌’(수행비서)였다. 허드렛일하고 잔심부름을 했다. 무시도, 수모도 많이 당했다. ‘두고 봐’라며 이를 악물었을 게다.

 그는 “배우에게 쓴소리를 퍼부을 수 있는, 유일한 제작자”란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카리스마 있고, 달리 보면 ‘욱’하는 성질이라는 얘기다.

 강함은 반발을 사곤 한다. 얼마 전에도 유명 뮤지컬 배우가 TV에 나와 그를 실컷 씹어댔다. 생채기가 날수록 그는 더 배타적이 됐고, 늘 하던 배우·스태프하고만 작업을 했다.

 대표적인 이가 박칼린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음악감독 박칼린의 입지는 급격히 약화됐다. 그때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게 박 대표였다. 지금도 둘은 친남매처럼 살갑다.

 박 대표는 3년 전 자서전을 냈다. 출간기념회도 성대하게 열었다. 지난해엔 대학교수(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도 됐다. “프로듀서 명함 버리고, 이젠 교수 명함만 쓰고 있다”고들 주변에서 말한다. 타이틀과 명예에 얽매이는 건 혹시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그는 소위 빽도, 줄도 없이 몸뚱어리 하나로 현재의 성공을 일궈냈다. 그만의 억척스러움, 성공을 향한 집요함 덕이다. 그건 폐허 속에서 ‘잘 살아보겠다’란 열망 하나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1960~70년대 대한민국의 얼굴이기도 하다. 일부 과오가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위대하듯, 박명성의 불우하고 힘겨웠던 청춘 역시 영예로운 현재만큼 자랑스러운 과거다.

 그가 진짜 정치를 할까. 이미 공연프로듀서연합회장·서울연극협회장 등 리더를 해 봤던 그를 정치판에서 그냥 둘 것 같지 않다. 조만간 ‘정치인 박명성’이란 명함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이들은 그가 공연계에 있기를 바란다. 집을 담보로 하더라도 줄 돈은 반드시 챙겨주고, 약속을 철썩같이 지키며, 후배들에게 쓴소리 마다하지 않는, 고집스럽게 작품 올리는 제작자가 이 바닥에도 있었으면 싶기 때문이다. 깐깐한 ‘꼰대’가 한 명쯤은 있었으면 싶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