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기생들이 스님에게 소리 배우러 왔다가 그만…

동주 스님의 범패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깊은 명상에서 우러나오는 불교음악 범패의 매력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산사의 새벽을 깨우는 고즈넉한 염불소리. 선승(禪僧) 특유의 쉰듯한 저음이 단정한 목탁 소리와 함께 아련하게 울려 퍼지면 어느덧 시공간은 세간(世間)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나’조차도 실체가 없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전하는 음악. 범패(梵唄)다.


이런 범패의 매력에 빠져 평생을 바친 스님이 있다. 서울의 서쪽 끝 가양동의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도심포교당, 홍원사(弘願寺)의 회주(會主·사찰의 최고 어른)를 맡고 있는 동주(東洲·66) 스님이다. 범패는 다른 말로 어산(魚山), 범패의 최고봉은 어장(魚丈)이라 부른다. 스님은 조계종 유일의 ‘어산 어장’이다.

 동주 스님은 1960대 후반 구한말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박영효의 친손자이자 당대 최고의 어장이었던 송암(松岩) 스님으로부터 범패를 전수받았다. 원래 선승이 되려고 했으나 어느 날 문득 범패에 눈을 뜨고 선방을 뛰쳐나왔다. 이후 지금까지 45년간 집전한 범패 행사는 3000여 회. 73년 불국사 복원, 2006년 최규하 대통령 국장, 지난달 지관 전 총무원장의 영결식 등을 치렀다.

 스님에게 최근 경사가 생겼다. 홍원사 정문 한쪽에 ‘한국불교 전통의례 전승원’ 간판을 달았다. 총무원 인가를 받은 정식 범패 교육기관이다. 다음 달부터 교육에 들어가는 스님과 마주앉았다.

 - 범패, 단어는 익숙하지만 내용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불교의 수행법은 참선·간경(看經)·염불·주력(呪力) 등 크게 네 가지다. 범패는 염불에 포함되지만 특수한 분야다. 일반적인 염불과는 다르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고 치성을 드리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음성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 한번 듣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사람이 많다.

 “범패는 선정(禪定·집중되고 맑은 마음 상태)의 극치에서 나오는 소리다. 모든 번뇌가 사라져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 그런 상태에서 부를 때 소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옛날에는 기생들도 범패에 반해 가르쳐달라고 어장 스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30분쯤 지나면 대개 포기했지만.”

 - 어려워서였나.

 “그렇다. 이게 듣기는 쉬워도 배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 글자를 10분까지 늘여 부르기도 한다.”

 스님은 이 대목에서 시범을 보였다. ‘이’자 한 글자를 ‘이∼에∼오아∼후어’ 하는 식으로 늘여 2분 30초 가량 부르는 방식을 보여줬다.

 - 스님도 배우기 힘드셨겠다.

 “재주 없는 사람은 10년 배워도 제대로 못한다. 나는 남들보다 서너 배 더 노력해 4년 반 만에 가장 규모가 큰 범패인 수륙재를 익힐 수 있었다.”

 범패는 곡목 숫자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종류가 복잡하고 규모가 방대하다. 길게는 4일까지 이어지는 불교행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스님은 스승으로부터 악보도 없이 따라 불러 배운 범패를 전부 부르려면 수십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 남은 숙제라면.

 “젊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한문 문장을 한글화하는 게 숙제다. 각 분야 권위자들이 동참해야 한다.”


◆범패=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다 ‘인도(梵)의 소리(唄)’라는 뜻이다. 물고기 마저 뛰어 놀게 할 만큼 훌륭한 음악으로, 삼라만상 피조물을 구제한다 하여 어산(魚山)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에는 늦어도 8세기 무렵 전래된 이후 절에서 각종 재(齋)를 올릴 때 써왔다. 범패에 출중한 범패승을 어장(魚丈)이라 부른다. 어장은 영산재(靈山齋) 같은 큰 규모의 재를 올릴 때에 장부(丈夫), 즉 지휘자 역할을 맡는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