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뉴스분석] 한은 총재 ‘실종 사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9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다음 날 열릴 일본 금융청·증권업협회 공동주최 회의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이날 오후 일본으로 출국했다. [연합뉴스]

김빠진 회의였다.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여덟 달 연속 기준금리를 연 3.25%로 묶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다. 골드먼삭스·씨티그룹 등 해외 금융사는 올해 내내 동결 행진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금통위는 지금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다. 수출 감소와 소비 부진으로 경고등이 켜진 경기를 생각하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물가가 눈에 밟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올랐다. 지난해 말 4%대 급등에 비하면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간 워낙 오른 데 따른 기저효과다. 전달과 비교하면 0.5% 뛰어 지난해 12월(0.4%)보다 오름폭이 되레 커졌다. ‘진퇴양난’은 금통위가 자초했다. 지난해 물가가 치솟을 때 미적거리면서 기준금리를 덜 올리는 통에 금리정책을 펼 공간을 스스로 좁혀놨다. 시장에선 “성장률을 챙겨야 할 정부 눈치를 본다”는 말이 돌았다.

 맥 빠진 회의와 대조적으로 금통위 의장인 김중수 한은 총재는 바빴다. 오전 중 회의·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서둘러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날 열릴 일본 금융청·증권업협회 공동주최 회의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서다. 4박5일의 홍콩·필리핀 출장에서 돌아온 지 만 이틀이 안 돼 다시 출국했다. 올 들어 네 번째, 취임 후 34번째 해외출장이다. 취임 2년이 채 안 됐는데 전임자인 이성태 전 총재의 4년간 해외출장 횟수(29번)를 훌쩍 넘겼다.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의 중심에 각국 중앙은행이 서 있으며, 이들과의 협조·정보공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도 “집안 단속이 먼저”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은의 한 팀장은 “중산층 이상에서도 ‘장 보기가 겁난다’는 말이 나온다”며 “물가를 책임지는 한은이 ‘국제 공조’만 외치면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국·실장급의 한 간부는 “총재가 자리를 너무 비워 보고를 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여당에서마저 날 선 공격이 나온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김 총재가 우선순위를 단단히 잘못 짚고 있다”며 “취임 후 물가안정을 위해 대체 뭘 했느냐”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한은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시장의 신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 총재가 계속 정부와의 ‘거리 좁히기’에 나선 결과다. 김 총재 취임 후 한은은 청와대에 ‘VIP 보고서’를 보내고, 기획재정부와 월례 거시정책협의회를 시작하는 등 전례 없이 ‘공조’를 강화했다. 김 총재는 이에 대해 1951년부터 19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을 인용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가 아니라 ‘정부 안에서’ 독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마틴은 트루먼 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을 지냈다. 하지만 FRB 의장이 된 뒤 자신을 임명한 트루먼 대통령에 맞서 강력한 물가안정 정책을 폈다. 트루먼은 퇴임 후 우연히 마틴을 만났을 때 “배신자”라며 치를 떨었다. 김 총재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통위원 자리 일곱 개 중 하나를 2년 가까이 비워놓고 있다.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통위의 권위에 단단히 금이 갔지만 김 총재의 입은 닫혀 있다. 시장에선 ‘한은 실종’ 상태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 경제연구소의 금리 담당 연구원은 “기준금리를 전망하려면 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이 아닌 재정부의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을 봐야 한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재가 국민·시장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발표한 커뮤니케이션국 신설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 일색이다. 한 채권 딜러는 “쓸데없이 조직만 만들지 말고 금리 조정에 대한 시그널(신호)이나 똑바로 보내라”고 말했다.

금융통화위원회<.strong>

한국은행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한은 총재·부총재 등 당연직 위원 2명과 기획재정부 장관, 한은 총재, 금융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장의 추천을 받는 임명직 위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임명권자는 모두 대통령이다. 물가 동향과 국내외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큰 업무다. 2010년 4월 박봉흠 전 위원 이 퇴임한 뒤 2년 가까이 후임자를 선임하지 않아 현재는 6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