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양선희의 시시각각] ‘있는 그대로’ 전시회

양선희
논설위원
미술 작품 보러 다닌다고 시간깨나 바친 적이 있었다. 하나 어떤 대가의 작품에서도 느끼는 정서적 반응이 ‘감탄’을 넘은 적은 없었다. ‘감동’하지 못하는 것은 작품 탓이 아니라 지진아 수준인 내 감성 탓이다. 그러다 최근 한 전시회를 보고 난생 처음 울컥하는 감동을 느꼈다. ‘있는 그대로’(아산정책연구원 1층 갤러리)라 이름 붙은 전시회에서였다. 이곳에 전시된 100여 점은 요즘 많은 화가들이 따라 하는 아동화 기법의 그림들이다. 밝고 선명한 색상의 조화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그림들. 복잡한 계산도 철학도 번뇌도 담지 않는 그 무념무상의 그림들이 문득 마음에 짠하게 파고들며 울컥하게 했다.



 이 그림을 그린 세 명의 화가는 2~3급 지적장애인이라고 했다. 장르는 비슷한데 서로 완벽하게 다른 그림들을 그려 내놨다. 김대현(24) 작가는 천재라 불릴 만했다. 완벽하게 이미지를 표현했고, 색깔 활용도 능란했다. 최원우(31) 작가는 구상작품으로 면과 색깔의 활용이 돋보였다. 김형태(28) 작가는 드로잉 기법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미리 지적 장애인의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가서 알았지 몰랐다면 그냥 여느 재능 있는 화가의 그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곳에 가게 된 연유는 이랬다. 늘 후배 감성이 더 메마를까 걱정해주시는 화가 선배가 지난주부터 “꼭 한 번 봐야 하는 전시회가 있다”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더니 지난 월요일 오후엔 아예 회사로 와서 나를 태워 전시회장으로 데리고 갔다.



선배는 지난해 서울시가 주최한 전국지적장애인전람회에서 이들 그림을 처음 봤다고 했다. “이 그림을 봤을 때 나는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보는 느낌이었어. 레슨도 안 되는 이들이 순전히 자기 감각만으로 그려내는 그림이 이토록 완벽한데 소름이 돋더라고. 60년 동안 그림만 그린 내가 이젠 붓을 꺾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 선배는 그 이후 이들 모차르트를 위한 살리에르의 헌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중 천재적 재능이 있는 이들 3명의 작품 전시회를 준비한 것이다. 그냥 자신의 전율과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단다. 외진 곳에서 열리는 무명 작가의 전시회는 늘 그렇듯이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선배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한 화가청년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 “한 달에 100만원 벌고 싶다”고 하더란다. 이들은 지적장애인 미술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했다. 이들이 노트와 엽서, 달력 등에 그림을 그려주고 번 돈으로 나눠 갖는 월급은 12만원 정도다. 또 전시회를 하려고 그려놓은 그림들을 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하더란다.



그들의 가난한 집엔 그림 쌓아둘 공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한데 그림을 통해 본 그들의 세상은 무사태평하고, 강렬하고, 천진난만했다. 생활고에 대한 분노와 번민 같은 건 그곳에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지적장애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그래. ‘도가니’를 알고 있다. 또 며칠 전 신문에서 광주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8년간 철장에 갇혀 지냈다는 지적장애 소녀에 대한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들의 사연은 대부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고, 가혹행위에 저항도 하지 못하는 슬프고 분한 모습이다.



일반인들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생각났다. ‘도가니’ 광풍에 판사 신상까지 털어가며 욕하면서도 동네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온다면 피켓 들고 나가 거품 물고 반대하는 모습 말이다. 그들 중에 레인맨이, 포레스트 검프가, 천재화가가 있어 우리 메마른 삶에 촉촉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한 적이 있나. 그들도 월 100만원은 벌어야 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라는 걸 생각한 적이 있나. 그들의 평범하고 천진난만한 세상을 우리 안에 ‘있는 그대로’ 품어보고자 고민한 적이 있었나. 오랜만에 ‘사람다운 사람’의 생각을 하게 해준 전시회에 다녀왔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